팀엘더本部長
✡「勝利한 아벨이 되자」
全體30分中의 後半15分
https://youtu.be/JCzxXFSgj6U
一世(실세)들은 저를 包含(포함)해서 入敎(입교)할 때는 家庭(가정)과의 關係(관계)를 끊고 들어왔죠.
저는 지난週 日曜日(일요일)는 여기에 參席(참석)하지 못했습니다마는 그것은 왜냐하면 저희 아버지가 日本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葬禮式(장례식)에 參席(참석)하기 위해서 갔었습니다.
저는 벌써 74年에 入敎(입교)했으니까, 아버지하고는 50年 넘게 統一敎敎理(통일교교리)가 맞다 틀렸다를 가지고 討論(토론)을 해온 狀況(상황)입니다.
그 분이 監理敎牧師(감리교목사)이시거든요. 그리고 日本의 宣敎師(선교사)로 1948年에 건너가시고 지금까지 계속 日本에서 宣敎活動(선교활동)을 하다가 70몇 年 동안 한 건가요?
물론 原理冊(원리책)도 보내드리고 그리고 다른 많은 冊(책)도 보내드리고 그런데 그리고 좀 오래된 일이지만 또 韓國(한국)에 와서 李載錫會長(이재석회장)도 만나고 그런데 다 效果(효과)없었어요.
그런데 돌아가시기 조금 前(전)에는, 제가 갔을 때는 病院(병원)에서 만나고 있으니까 아버지가 「監理敎(감리교)하고 統一敎神學(통일교신학)하고 뭐가 다르냐」 이러는 거예요.
그때는 제가 무슨 말을 해야 되는지. 아버지가 받아들일 수 있는 內容(내용)을 말해야 돼요.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어떤 아주 낮은 次元(차원)에서라도 原理를 받아들이는 條件(조건)을 제가 만들어줘야 돼요. 그것이 아벨로서의 立場(입장)이었어요.
「우리는 個人의 救援(구원)보다는 家庭(가정)의 救援(구원)을 强調(강조)합니다. 特(특)히 家庭이라는 것은 同性(동성)이 아니고 異性(이성), 異性의 父母(부모)를 中心(중심)한 家庭(가정)을 말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을 하니까 그 部分(부분)은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對答(대답)을 아버지가 하셨어요. 그러니까 돌아가시기 전에 그 原理(원리)의 조그마한 部分(부분)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條件(조건)을 아버지가 그때 세웠다고 생각합니다.
事實(사실) 天聖經(천성경)을 봐도 아버님이 그런 말씀을 하세요.
우리 原理(원리)하고 基督敎會(기독교회)의 큰 差異(차이) 하나가 뭐냐면 우리는 個人救援(개인구원)보다도 家庭救援(가정구원)을 强調(강조)한다.
그런 天聖經(천성경) 말씀이 있고 제가 조금 전에 그걸 訓讀(훈독)했었거든요. 그러니까 訓讀(훈독)이 重要(중요)한 거예요. 제가 訓讀(훈독)을 안 했었더라면 그런 內容(내용)도 읽지 않았을 것이고,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다시 한 번 아버님께 感謝(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벨은 카인이 하나님과 하나님을 連結(연결)할 수 있는 條件(조건)을 만들어 주는 機會(기회)를 주는 것이 아벨의 責任(책임)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例(예)를 지금 많은 家庭(가정)에서는 夫婦(부부)사이에도 한쪽은 생추어리가 되어 있고 한쪽은 家庭聯合(가정연합)에 있고 그런 問題(문제)가 있고, 또 父母(부모) 子息(자식) 사이에도 父母는 아버님과 連結(연결)되어 있지만 子息(자식)들은 아니다. 이런 것이 다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우리가 다 이런 아벨 카인의 方式(방식)에서 하는 것이 저는 重要(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카인이라면 항상 카인을 사랑하고 품어주고 그리고 참사랑으로 說得(설득)하고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과 아버님께 連結(연결)해주는 그런 心情(심정)을 우리가 항상 가지고 있는 것이 重要(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지금 세 남매 있는 中에 아들 하나는 連結(연결)되어 있지만, 딸 둘은 連結이 안 돼 있어요. 社會結婚(사회결혼)을 해버렸어요. 그 딸이 墮落(타락)했다는 消息(소식)을 제가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습니다. 그때 그러나 火(화)는 안 나더라고요. 벌써 火를 내봐야 늦었다 이런 생각이 들으니까.
結婚(결혼)을 하고 지금도 祝福(축복)을 안 받고 있습니다만 저희 夫婦(부부)는 그 아이들을 위해서 每日(매일)每日 祈禱(기도)를 합니다. 夫婦(부부)와 함께 祈禱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기들이 스스로의 決斷(결단)으로 祝福結婚(축복결혼)을 받을 것이다 라는 것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믿고 있어요.
原理(원리)는 不變(불변)합니다. 그리고 原理(원리)를 받아들이는 本心(본심)은 人類(인류)에게 있습니다.
金正恩(김정은) 마음속에도 本心(본심)은 있고, 習近平(시진핑) 마음속에도 本心(본심)이 있고, 아버님을 떠났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우리 子息(자식)들 마음에도 있습니다.
이 本心은 하나님께서 授受作用(수수작용)할 수 있는 本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도 더 그런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리고 지금 그런 아이들하고 스스로 授受作用(수수작용)을 하고 계시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自尊心(자존심)도 있고 그러니까「나는 敎會 싫다. 絶對 祝福 안 받겠다」 하지만은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하나님을 이긴 사람은 적습니다. 적어요. 사탄까지도 지금까지 聖經(성경)의 年數(연수)로는 六千年(육천년), 實際年數(실제연수)로는 數十萬年(수십만년), 하나님하고 鬪爭(투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탄도 結局에는 지겠습니다. 그때가 이제 復歸攝理(복귀섭리)가, 救援攝理(구원섭리)가 끝나는 날이 되겠습니다.
좀 더 아버님의 말씀을 봅시다.
하나님은 當場(당장)이라도 사탄이나 人間(인간)을 全部 (전부)다 쓸어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할 수 있는 能力(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되겠느냐. 하나님의 全能性(전능성)이 깨져나간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쓸어버리면 元來(원래) 人間(인간)을 만들 때 그러면 잘못 만들었다는 뜻이냐. 그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오히려 쓸어버리면 全能性(전능성)이 깨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이 하나님을 對(대)해가지고 말하기를 당신은 全能(전능)하신 분이 아니요. 이러한 罪 때문에 하나님은 깨져나가는 분이에요. 하고 嘲弄(조롱)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화살을 쏘게 된다면 하나님은 언제나 물러간다는 것입니다.
좀 異常(이상)하죠? 全能하시기 때문에 물러가야 되는 거예요.
예수께서 十字架上(십자가상)에 계실 때 왼편에 있는 强盜(강도)가 뭐라고 했어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自己自身(자기자신)도 救援(구원)하고 우리도 救援(구원)하지 그래요. 그렇게 해서 예수님을 嘲弄(조롱)하고 그리고 당신이 全能(전능)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거기 왜 十字架에 걸려 있느냐 이런 식이에요.
그런데 그것은 全能하시니까 사랑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대로 無抵抗主義(무저항주의)로 예수님은 十字架上(십자가상)에서 그대로 가신 것입니다.
얼마든지 避(피)할 수 있었어요.
베드로 弟子(제자)도 그랬잖아요. 예수님이 이제 나는 얼마 後(후)에는 죽어야 된다고 하니까 베드로는 그러지 마세요.
洗禮(세례)요한도 廣野(광야)에 나가서 자기들 조그만 集團(집단)을 만들고 살고 있었잖아요. 예수님도 그럴 수 있었을 거예요.
그렇게 하면 예수님은 살 수 있지만 人類(인류)가 죽는 거예요. 사탄이 救援(구원) 받을 길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 不正(부정)한 死刑宣告(사형선고)를 받아들이고 그리고 스스로의 肉身(육신)을 祭物(제물)로 바치고 十字架上(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人類(인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2000年 동안 다시 再臨(재림)하기 위한 期待(기대)를 만들기 위해서 努力(노력)을 해오셨고,
또 1920年 陰曆(음력) 1月 6日 平安北道(평안북도) 德彦面(덕언면) 上思里(상사리)에서 참 아버님께서 聖誕(성탄)하실 수 있는 條件(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2000年 동안 役事(역사)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님께서 16歲가 되시니까 復活節(부활절) 아침에 아버님 앞에 나타나시고 또 아버님께 이 使命(사명)을 맡아 달라고 했고 그리고 지금까지 아버님과 함께 해오신 예수님이십니다.
全能(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렇게 화살을 쏘게 된다면 물러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픔이고 또 하나님의 恨(한)인 것이고 이런 恨과 이런 아픔을 解放(해방)해 드리기 위해서 참 아버님께서는 지금까지 役事(역사)해 오신 것입니다.
네 힘을 다하고 네 모든 것을 다 하더라도 結局(결국)은 내가 지은 版圖權內(판도권내)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立場(입장)에 세워야 될 것이 아니냐. 참을 수 없더라도 참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하나님의 權威(권위)가 생겨나고 그러므로 하나님다운 자리, 하나님의 全能性(전능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른다고 한번 뒤집어 박았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러면 宇宙(우주)는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創造(창조)의 偉業(위업)도 다.
하나님이 생각을 다시 해서는 안 되는 그런 悲慘(비참)한 하나님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런 것을 우리는 생각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忍耐(인내)가 얼마나 貴(귀)한 걸 알았을 것입니다.
忍耐(인내), 忍耐가 어렵죠? 우리도 抑鬱(억울)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嘲弄(조롱)을 당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지만 참아야 되겠고 忍耐(인내)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忍耐(인내)가 얼마나 貴(귀)하냐 이렇게 보게 되면 忍耐는 再出發(재출발)의 動機(동기)요, 再創造(재창조)의 動機가 될 수 있다 하는 것을 發見(발견)할 것입니다.
忍耐(인내)를 하니까 다시 出發(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우리를 嘲弄(조롱)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嘲弄해도
그것을 사랑으로 품으시고 그리고 忍耐(인내)를 하니까 그 사람들이 언젠가는 다시 出發하고 다시 이제 하나님께 올 수 있는 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저런 거 한다고 그러면 그 사람과의 關係(관계)를 끊어버리면 그러면 누가 그런 사람을 救援(구원)합니까? 누가 길을 열어줍니까? 누가 그 사람을 引導(인도)해 줍니까?
忍耐(인내)는 再創造(재창조)의 動機(동기)가 될 수 있다 하는 것을 發見(발견)할 것입니다. 참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容恕(용서)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언제나 저기를 占領(점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結局(결국)에는 우리가 사탄 世界(세계)를 占領(점령)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을 수 없는 것도 참고 忍耐(인내)할 수 없는 것도 忍耐하고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을 우리가 消化(소화)함으로써 勝利(승리)된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제 이 世上(세상)에 대해서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먼저 이제 二代王任(이대왕님) 앞에서는 勝利(승리)한 가인이 되어야 되고, 또 勝利(승리)한 가인의 立場(입장)에서 우리가 周邊(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는 아벨이 되고, 그 사람들을 이제 참 아버님께 連結(연결)하는 그런 아벨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우리가 다시 한 번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나가서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讚頌歌(찬송가)를 들을 때마다 예수님께 感謝(감사)하고 그리고 언젠가는 世上 사람들이 365日中에 하루만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날마다 예수님을 생각하고 아버님을 생각하고 그리고 이제 救援(구원)의 길을 갈 수 있는 날이 오겠다는 것을 우리가 確信(확신)하면서 이번 크리스마스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前半(전반)15分은 編輯中(편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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