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年12月8日訓讀會
📝康賢實참어머님 回顧錄推薦文
강현실 참어머님 회고록 추천문
(韓國語 8分半)
https://youtu.be/yikl1QTMYAY
天基(천기) 16年 11月
推薦文(추천문)
世界平和統一聖殿(세계평화통일성전)
韓國總會長(한국총회장) 李相烈(이상열)
康賢實(강현실) 참어머님의 回顧錄(회고록) 再版(재판) 出版(출판)을 祝賀(축하)드리며, 推薦(추천)의 글을 쓸 수 있는 榮光(영광)을 주신 恩賜(은사) 앞에 眞心(진심)으로 感謝(감사)드립니다.
참아버님께서 北韓(북한) 共産黨(공산당) 地下(지하)에서 獄苦(옥고)을 치르시던 中(중), UN軍(유엔군)의 도움으로 解放(해방)되시어 南下(남하)하신 뒤 原理原本(원리원본) 執筆(집필)을 마치시고 하나님께 「이제 믿음 깊은 弟子(제자)를 보내주십시오」 하고 祈禱(기도)하신 날, 康賢實(강현실) 참어머님께서 釜山(부산) 토담집으로 찾아가 再臨主(재림주)로 顯現(현현)하신 참아버님의 말씀을 듣고 入敎(입교)하셨던 첫째 弟子(제자)이십니다.
康賢實(강현실) 참어머님은 篤實(독실)한 基督敎(기독교) 家門(가문)에서 出生(출생)·成長(성장)하셨습니다. 特(특)히 康(강)참어머님의 父親(부친)은 神社參拜(신사참배)를 拒否(거부)하여 投獄(투옥)되신 後(후), 解放(해방)을 보지 못하고 殉敎(순교)의 길을 가신 분이셨습니다.
그런 先親(선친)의 遺志(유지)를 받들어 神學校(신학교)에 入學(입학)하시고 傳道師(전도사)로 公的(공적)인 길을 가시던 康참어머님이었기에, 참아버님의 첫째 弟子(제자)로 부름받으신 뒤 數많은 苦難(고난)과 迫害(박해)를 이겨낼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康참어머님은 참아버님께서 南韓(남한)에서 傳道地(전도지)로 派送(파송)하신 最初(최초)의 傳道師(전도사)였습니다. 그 말씀을 傳(전)하기 爲(위)해 大邱(대구)에 到着(도착)하여 하나님께 祈禱(기도)하셨을 때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니 强(강)하고 擔大(담대)하게 敎會(교회)를 세워라」는 音聲(음성)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참아버님가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特別(특별)히 康賢實(강현실) 참어머님은 1953年(년)부터 1959年까지 全國(전국) 基督敎(기독교)와 聖堂(성당) 그리고 神靈(신령)한 團體(단체)들을 訪問(방문)하여 이 땅에 再臨主(재림주)로 顯現(현현)하신 文鮮明(문선명) 참아버님를 証據(증거)하시는 일을 하셨고,
1959年부터 1966年까지 서울의 心臟部(심장부)라 할 수 있는 파고다 公園(공원)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路傍講義(노방강의)를 7年(년) 동안 하셨습니다.
참아버님께서「너의 講義(강의)가 멈추면 全國(전국)에서 活動(활동)하는 傳道(전도)의 音聲(음성)이 멈춘다」하셨기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목이 쉬면 손짓 발짓으로라도 講義(강의)를 하셨다고 합니다. 말씀을 宣布(선포)하고 傳(전)하는 最一線(최일선)에서 살아오신 것입니다.
참아버님께서는 늘 가장 가까운 弟子(제자)로서 康賢實(강현실) 참어머님를 찾으셨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眞父母(참부모님)의 말씀 選集(선집)에 「姜賢實」(참어머님)의 尊名(존함)이 記錄(기록)된 것만 해도 880 段落(단락), 1971回(회)에 달합니다. 그리고 1251回나 참아버님께서 康참어머님를 찾으셨습니다. 1950年代(년대)부터 모든 말씀이 記錄(기록)되었다면 더욱 많은 記錄(기록)이 나왔을 것입니다. 더불어 康賢實(강현실) 참어머님께서 받으신 사인만 40餘回(여회)라 하니 얼마나 아끼셨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山(산)이 높으면 谷(곡)이 깊듯이 사랑와 恩惠(은혜)가 크면 試驗(시험)도 큰 法(법)입니다. 많은 弟子(제자)들이 참父母(부모)의 사랑을 받은 뒤 試驗(시험)에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康賢實(강현실) 참어머님은 入敎(입교) 후 60年(년)을 變(변)함없는 忠節(충절)의 마음으로 살아오셨습니다. 그런데도 참父母님께 責任(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罪悚(죄송)하다며 늘 고개를 숙이시는 康참어머님이었습니다.
康賢實(강현실) 참어머님께서는 누구보다 心情(심정)이 깊으시기에 食口(식구)를 만날 때마다 어머니처럼, 누이처럼, 姉妹(자매)처럼 챙겨주시고 다독여 주시곤 합니다.
참父母님의 心情(심정)과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傳(전)하고자 努力(노력)하시는 참어머님의 生活(생활)은 聖和(성화) 때까지 絶對信仰(절대신앙), 絶對愛(절대사랑), 絶對服從(절대복종)의 삶으로 一貫(일관)하셨습니다. 그러한 康참어머님의 삶은 하나님과 참아버님의 所望(소망)이셨고 統一敎會(통일교회)의 자랑이자 祝福家庭(축복가정)의 기쁨이었다 할 것입니다.
참아버님 聖和(성화) 이후 하나님의 祖國(조국)과 故鄕(고향)인 大韓民國(대한민국)에서 追放(추방)되어 曠野(광야)로 나가시며, 孤兒(고아)와 같은 입장에서 죽음을 걸고 敎會(교회)의 每月(매월) 300萬圓(만원) 支援金(지원금)과 無料(무료) 住居(주거) 등을 버리시고, 어느 것 하나 保障(보장) 없는 曠野(광야)에서 참아버님의 부르심을 받들어 「죽어도 참아버님 앞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가서 죽겠다」하시며 혼자 걷기도 불편하신 몸)로 2016年 12月 21日 온갖 逼迫(핍박)과 嘲弄(조롱)을 견디시고
曠野(광야)인 펜실베니아로 나가셨습니다.
陽曆(양력) 2017年 9月 23日, 펜실베니아 聖殿敎會(성전교회)에서는 靈界(영계)에 계시는 참아버님와 康賢實(강현실) 참어머님의 天地人(천지인)참父母 完成祝福聖婚式(완성축복성혼식)이 이루어지는 歷史(역사)가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처음 文亨進(문형진) 二代王(이대왕)께서 참아버님의 말씀을 받들어 康賢實 참어머님께 祝福聖婚(축복성혼)의 뜻을 傳(전)하였을 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참아버님께서 直接(직접) 말씀하신 뜻을 이루어드리지 않겠는가」라는 말씀 앞에 順從(순종)하시겠다고 決心(결심)하시며 그 말씀을 받들고 聖和(성화) 때까지 絶對服從(절대복종)의 道理(도리)를 다하신 참어머님이셨습니다.
이 책은 康賢實(강현실) 참어머님의 삶의 記錄(기록)으로서 個人的(개인적)인 回顧錄(회고록)이 아니라 統一敎會(통일교회) 草創期(초창기) 歷史(역사)에 대한 証言(증언)입니다. 孝道(효도)와 忠誠(충성)을 다해 오신 康賢實(강현실) 참어머님의 信仰路程(신앙노정)을 本보기로 삼아, 天一國(천일국) 王國時代(왕국시대)에 勝利的(승리적)인 天一國王國(천일국왕국)의 主人(주인)들이 되시기를 祈願(기원)합니다.
臺灣世界宣敎本部(대만세계선교본부)에서
世界平和統一聖殿(세계평화통일성전)
韓國總會長(한국총회장) 李相烈(이산열).
…………………………
天基16年11月
(西暦2025年12月)
推 薦 文
臺灣世界宣教本部
世界平和統一聖殿
韓国總會長 李相烈
(イーサンヨル)
チャムオモニム回顧録再版出版を祝賀し、推薦の文を書く栄光をくださった恩賜(おんし)の前に心から感謝します。
チャムアボニムが北韓共産党の地下にて牢獄で苦労されていた中、UN軍の助けで解放され、南下された後、チャムアボニムが原理原本の執筆を終えられ、ハナニムに、「今から信仰深い弟子を送ってください」と祈禱された日に、康賢實(カンヒョンシル)チャムオモニムが釜山(プサン)ボンネッコルの小屋を訪ねて再臨主として顕現されたチャムアボニムの御言葉(みことば)を聞いて、再臨主を信じて入教された最初の弟子であられます。
康賢實(カンヒョンシル)チャムオモニムは、篤實(とくじつ)な基督教の家門に生まれ成長されました。特に、康(カン)チャムオモニムの父親は、神社参拝を拒否して投獄された後、解放を見ることができず、殉教の道を行かれた方(かた)でした。(第二次大戰の終戦前に殉教されました)
その父親の遺志(いし)を受け継ぎ、神學校に入学、傳道師(伝道師)として公的な道を行かれていた康賢實(カンヒョンシル)チャムオモニムでしたので、チャムアボニムの最初の弟子として召(め)された後、数多くの苦難と迫害に勝ち抜くことができたのです。
康(カン)チャムオモニムは、チャムアボニムが南下された韓国で傳道地(伝道任地)に送られた最初の傳道師でした。その御言葉(みことば)を伝える為に大邱(テグ)に到着してハナニムに祈禱された時、「私がお前と共にいるので、強く大胆に教会を立てよ」という声を聞かれたと言います。
かたくなに康(カン)チャムオモニムはいつでもどこでも誰よりも強く大胆にチャムアボニムを再臨主任(チェリンジュニム)として證據(証拠)する生(せい)を生きて来られました。小ぢんまりした体躯(たいく)の女性であるにも拘(かかわ)らず、御旨の道の最前線で60年統一教の歴史の生き証人として来られたことは、正(まさ)にチャムオモニムと共に役事して来られたハナニムとチャムアボニムがおられたからです。
特別に康賢實(カンヒョンシル)チャムオモニムは1953年から1959年まで全国の基督教と聖堂、そして神靈団体を訪問し、この地に再臨主任(ジェリンジュニム)として顕現された文鮮明(ムンソンミョン)チャムアボニムを證據(証拠)する業(わざ)をされ、1959年から1966年までソウルの心臓部と言えるパゴダ公園にて一日も休まず路傍講義を7年の間、されました。チャムアボニムは、「お前が講義を止めれば、全国で活動する傳道(伝道)の声が止まる」と言われたので、雨が降っても、雪が降っても、声が枯れれば、手振り足振りで講義をされたと言います。御言葉を宣布して伝える最一線で生きられたのです。
チャムアボニムはいつももっとも近い弟子として生きた證人(証人)として康賢實(カンヒョンシル)チャムオモニムを呼ばれ、愛されました。チャンプモニム マルスム全集に康賢實(カンヒョンシル)チャムオモニムのお名前が記録されただけでも、880段落で1971回にもなります。1251回もチャムアボニムが康(カン)チャムオモニムを呼ばれました。1950年代からすべての御言葉が記録されていたならば、より多くの記録が出ていたでしょう。さらに、康賢實(カンヒョンシル)チャムオモニムにくださったサインだけでも40回余りと言うので、どれだけ康(カン)チャムオモニム大切にされたか推(お)し量(はか)ることができます。
山が高いと谷が深いように、愛と恩恵が大きければ、試験(=試練)も大きいという法則があります。事実、多くの弟子達がチャンプモニムの愛を受けた後、試験(=試練)に入ることもしました。しかし、康賢實(カンヒョンシル)チャムオモニムは、入教後60年の生(せい)を変わりない忠節(ちゅうせつ)の心で生きて来られました。それでもチャンプモニムに責任を尽くすことができず、申し訳ない思いだけだと頭を下げる康(カン)チャムオモニムを見るごとに信仰人の真(まこと)なる姿勢を体で教えてくださるようで尊敬の思いを持ちます。
康(カン)チャムオモニムはチャンプモニムから受けた愛を食口達に分け与えることを喜ばれました。誰よりも深い心情を持っておられるので、食口達に会うたびに、母のように、姉のように姉妹のように対してくださりもしました。チャンプモニムの心情と愛を少しでもより伝えようと努力されるチャムオモニムの生活は聖和されるまで絶対的な信仰、絶対愛、絶対服従の生(せい)で一貫されました。そんな康(カン)チャムオモニムの人生はハナニムとチャムアボニムの希望であり、統一教会の誇りであり祝福家庭の喜びといえるでしょう。
チャムアボニム聖和以後、ハナニムの祖國と故郷である大韓民国をから追われ、曠野あらの)に出て行かれて孤児のような立場で死を恐れず康(カン)チャムオモニムは教会からの毎月300万ウォンの支援金、聖和の時まで無料の家などを捨てて、何一つ保障のない曠野(あらの)にチャムアボニムのお呼びを受けて死んでもチャムアボニムの前に一歩でもより近く行って死のうと、一人で歩くには不便な体で、2016年12月21日、三代王權に侍る為にすべての迫害とを受けながら荒野であるベンシルベニアに出て行かれました。
陽暦2017年9月23日ペンシルベニア聖殿教会では靈界におられるチャムアボニムと康賢實(カンヒョンシル)チャムオモニムの天地人チャンプモニム完成祝福聖婚式が成される役事が繰り広げられ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
初めに文亨進(ムンヒョンジン)二代王(イデワン)がチャムアボニムのマルスムを奉じて、康賢實(カンヒョンシル)チャムオモニムにチャムアボニムとの祝福聖婚の考えを伝えたとき、到底、受けることはできないと言われました。しかし、[チャムアボニムが直接言われた御心を成して差し上げられないのか」」と言われた時、「マルスムの前に順従します」と言われて、その御言葉を奉じられ、聖和の時まで絶対服従の道理を尽くされたチャムオモニムであられました。
この本は康賢實(カンヒョンシル)チャムオモニムが生きてきた人生の記録であり、チャムオモニムの個人的な回顧録ではなく、統一教会の初創期の歴史についての證言(証言)です。チャムオモニムの生(せい)は愛と犠牲、奉仕、仕えの見本を見せてくださり、孝道と忠誠を尽くして来られた感動を感じられるでしょう。
子羊の宴(うたげ)の最後の新婦、ヨハン啓示録19章、康賢實(カンヒョンシル)チャムオモニムの信仰路程を見本として、天一國王国時代の信仰の道標(みちしるべ)として勝利的天一國王国の主人達になられることを祈願します。
天基16年11月、臺灣世界宣教本部にて
世界平和統一聖殿韓国總會長
李相烈(イーサンヨ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