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30

■이슬람의 胎動



基督教長老会李マンソク宣教師
●이슬람의 태동
イスラムの胎動
(日本語字幕,11分半)


■2017年8月23日水曜日 킹즈리포트

▼ティムエルダー世界本部長

李マンソク宣教師は、ソウル長老会綜神大学院卒業、イラン宣教師派遣、イランテヘラン韓国人教会担任牧師、それがイランの唯一の外国人教会でした。そしてイランで最初に賛頌歌(さんしょうか=賛美歌)公会を設立しました。韓国の福音聖歌を直接イラン語に翻訳。本人独唱のCDテープは制作、全世界のイラン人に普及、愛唱されています。

イスラム教では歌を歌わないそうですね。

(音楽がないということです。幼稚園から大学まで、クラスに「音楽」「ミュージック」というレッスンがないということです)

その理由は、ムハンマドが歌を歌わなかったからですね。

(ムハンマドがする通りにしないといけないから)

旺盛な宣教活動により、イラン政府から、在留延長許可が出ないので、韓国に帰国後、韓国イラン人教会を建て、担任しながら全世界を周り、神学校教団、老会(長老会)、宣教団体、教会集会を通じてイスラムの正体を知らせ、世界教会を目覚めさせる為に、英語・イラン語で事役(じえき=御業)をしている。

著書は、
「私の愛するイラン」、
「イラン語福音聖歌百曲集」、
「ペルシャ語実用会話」、
「イスラムハンドブック」、
「ムハンマドの啓示はなぜいつも変わるか」。
「ベイルを脱いだイスラム」

現在は、4him.or.krのサイトに行けば、この方のコラムも出ていて、イスラム教を正しく知る内容がたくさん出ています。

きょうは、ユーチューブの5つある中の4番目、それも1時間以上話された内容ですが、最後の20分だけ、皆さんに紹介しようと思います。題目は、「イスラムの胎動」。2016年7月5日に講義された内容です。

▼李マンソク宣教師

メッカから迫害によりメディナに逃げた年、622年、これがイスラムという宗教が生じた年です。ムハンマドが、メッカからメディナに移動、移住、移民、つまり、「ヒジュラ」したこれが、イスラムの胎動です。イスラムはいつできたのか、622年にできました。何を契機にできたのか。ムハンマドとその一団がメッカからメディナに引っ越しして
できました。移住のことをヒジュラと言います。それがイスラム暦の元年になりました。

622年に引っ越しをするとき、ムハンマドが徹底した律法を定めて自分に従う者たちにメディナ憲章というのを作って、ムハンマドに徹底して服従する、ムハンマドが「行って死ね」と言えば行って死ぬ。ムハンマドが「戦え」と言えば戦う。そうして、軍人のように
サッサーと動くように作ったのです。

ヤスリブという町の名前をメディナという先知者の都市に変えて、そこですべての政策を変え始めたのです。

そこで定着して18カ月の間、見たら、周辺にユダヤ人の部族たちが多いのです。そのユダヤ族たちを自分たちに引き込もうと、

それで、「私が啓示を受けた内容は、聖經(せいけい=聖書)にある内容と同じである」、「私が仕えるアラーはお前たちの神様と同じ神である」と言いました。

ユダヤ人が一日に三回ずつエルサレムに向かって祈祷するのを見ました。それで(ムハンマドが)、「私たちも同じ神に仕えるからエルサレムに向かって祈祷する」とムハンマドがエルサレムに向かって祈祷しました。

それで、人たちが、「あれ、どうしてエルサレムに向かって祈祷しますか」と言ったら、「無条件従え」と言って、エルサレムに向かって祈祷しました。

첫째, 유대교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알라와 같은 신이다.
(코란29:46, 코란3:64)

둘째, 신구약 성경은 진리이다.
자신은 새로운 계시를 가지고 온
사람이 아니며 다만 신구약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아랍지역에 확증시켜
주기 위해서 알라께서 자신을 보냈다.
(코란46:9, 12)

셋째, 예루살렘 성전은 창조주께서
지상에 지정하신 유일한 성소이기
때문에 자신을 따르는 무슬림들은
기도할 때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라고 했다.

18カ月の間、「同じ神だ」「同じ経典だ」「同じ聖殿に向かって祈祷する」と言っても、ユダヤ人たちが(ムハンマドの)啓示を受けたという内容を聞いたら、聖經の内容とまったく違う内容を言うので、「彼(ムハンマド)は神の聖者ではない」と排斥をするのです。

(ムハンマドは)18カ月でメディナの総統治者となったので、力(ちから)が生じたのです。経済的な力も生じ、軍事的な力も生じ、宗教指導者として霊的な力も生じて、だれを恐れることもない途方もない力を持った統治者となったのです。

それで、「ユダヤ人たちを排斥せよ」という啓示が降りたというのです。その時はコーランという本はなかったのです。啓示を受けたという話だけあったのです。

「私(ムハンマド)が受けた啓示と彼ら(ユダヤ人)が持っている経典と、差異がある理由は、彼らは原本を忘れて、経典を堕落させたので、それで差異が出てくるのである」

「私が持っている原本は、天の持っている原本を啓示受けたものである」。ムハンムドはこのように言いました。「今から私たちがお前たちを保護してやるから税金を納めよ」

彼らはびっくりしました。「私たち(ユダヤ人)は今まで数百年間この地に住みながら、誰も侵略したことはないし、誰も攻撃されたことはないのに誰から私たちを保護すると言うのか」。

…というとムハンムドが、「私が殺さないから税金を出せ」というのです。「三つのオプションをやろう。第一は、私に はむかって死ぬか。第二は、税金を出して平和に暮らすか。第三は、この地を去るか。三つの中の一つを選べ」

彼(ムハンムド)らたちは重武装して来ているから、(ユダヤ人たちは)「私たちが去ります」と答えました。

(ムハンムドは)「去るなら、武器を持たずに去れ。手に持てる物だけ持って行け」。そうして平和に暮らしていた(ユダヤ人の)ナディル(Nadir)族がその地を去りました。その周辺のユダヤ人部族に行って、いっしょに暮らしました。

その周辺にクライザ(Qurayza)族というユダヤ人部族がありました。そこに行って話をしたら、クライザ族が、「ムハンムドがいつ私たちを苦しませるかもしれないから、私たちがアラビア半島の最強のクライシ族と同盟を結ぼう」と同盟を結びました。

同盟を結んだという話をムハンマドが聞いて、
「このままではだめだ。あいつらを燼滅(じんめつ)させなければ」と。

そこでは、クライシ族とクライザ族は距離が離れているので、「突然、襲いかかって、男子をみんな殺して、女子たちはお前たちの勝手にしろ」と、攻撃を命じました。

男子たちを捕まえて、穴を掘らせて、大きな深い穴の前に立たせて一人ずつ首を切って突き落としました。一人ずつ一人ずつ穴の手前で首を切って穴に入れてしまいました。穴の中には首が切られた死体が血だらけになってもつれているのです。

その女子たちは生かして捕まえてありますから、女子の中で一番きれいな二人を選びました。その一人の女子に、「穴を回って見よ」。

その女子が穴を見たら、自分の夫や父や兄弟がみんな死んでいるのです。だからその女子が座って頭を叩きながら、土をかぶって慟哭(どうこく)をしたのです。ムハンマドは、「サタンの女を消せ」と言って殺させました。

そして二番目の女子に、「お前も一度回って見よ」。その女子は回って泣いたら死ぬということがわかっていたので、泣かずにただ回りました。

そしたら、ムハンマドは、自分の上着を脱いで、その女子にかぶせて着せて、「この女子は私の物だから触らずに、お前たちは適当にくじ引きで分けよ」と言ったので、くじ引きで分けました。

この女子にムハンマドが言いました。「お前は奴隷なので、殺すこともでき生かすこともできるし売ってしまうこともできる。私の思いのままである。しかし、特恵を与えよう。お前がもしユダヤ教を捨ててイスラムを受け入れるなら、奴隷の身分から自由人の身分に身分を変えてやろう。そして終身、私の妻にしてやろう。そうするか?」

自分の夫を殺し、自分の父を殺し、自分の兄弟を殺した張本人が、自分を妻にするという話に、その女子は、「私はできません」と言いました。

殺すにはもったいない美貌を持っていたのか、「だったら、いつも寝床の横にいて、呼んだらいつでも上がって来い」。そうして性奴隷としました。その女性の名前は、レイハナ(Raihana)と言います。「レイハナという名の者がムハンマドの家で一生、性奴隷として暮らした」…歴史の記録です。

とにかく、イスラムという宗教が、こういうふうにして、ムハンマドが結局、軍人1万人を率いて、メッカに入って占領し、メッカの中に入っていた360個の偶像をみんな壊して、そしてこれはただアラーの神殿であると宣言したのが630年です。

そうしてムハンマドが632年に死にました。632年に死んだ時に、その時にコーランという本はありませんでした。

しかし後で、ムハンマドが啓示を受けた内容を覚えている人がよく戦場で死ぬので、このままではコーランがなくなってしまうと、覚えているものを集めてムハンマドが死んで数十年過ぎて、コーランという本が編集されたのです。

それで、イスラムという宗教が生じたのですが、イスラムという宗教がどれほど虚構的な宗教で、どれほど残忍な邪悪で刀で占領しながら、勢力を広げてきたかを皆さんが知っていれば、備えるのに助けになると信じ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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ムハンマド(570年頃 - 632年):
무함마드

イスラーム教の開祖。モハメッド、マホメットなどと呼ばれることが多かったが、近年では標準アラビア語の発音に近い「ムハンマド」に表記・発音がされる傾向がある。なお、「ムハンマド」はムスリム(イスラム教徒)の典型的な名前でもあるため、区別のため「預言者ムハンマド」と呼ぶ場合がある。

イスラム教:(日本の)高等学校世界史教科書では「イスラーム」の表記が用いられることが増えた。

ムスリム:イスラム教に帰依する者(イスラム教徒)





2021/03/29

노병 김인호가 증언한 뜻밖의 ‘감방 동기’ 2명

 노병 김인호가 증언한 뜻밖의 ‘감방 동기’ 2명



https://youtu.be/iv6yooBFFrw

노병 김인호가 증언한 뜻밖의 '감방 동기' 2명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9118

지난 주 저는 위대한 순교자 김화식 목사 이야기를 전해드린 바 있다. 지금도 그런 분을 소개했다는 게 가슴 뿌듯한데, 오늘은 문재인 출생 의혹 문제와 관련해 등장한 제2의 제보자인 김인호 선생이 알려준 또 다른 뜻밖의 인물 두 분을 소개할까 한다. 이젠 김인호 선생을 모르시는 분은 없을텐데 그래도 짧게 소개를 하자면, 국군 방첩부대원으로 남북을 오가며 첩보활동하셨던 진정 숨어있는 노병이고 문재인의 아버지 문용형이 흥남지역 공산당 거물이라는 걸 폭로하신 엄청난 분이다.

저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만일 그 분이 좌익이었다면 이미 좌파는 그 분을 영웅으로 만들고도 남았을 것이다. 사실 비전향 장기수도 그렇고, 탤런트 문근영의 외할아버지인 빨치산 출신 류낙진조차 영웅으로 통일운동가 따위로 띄워온 게 바로 저들 아니냐? 그에 비해 예우는 그 다음이고 기억해주는 이조차 드문 게 김인호 선생의 케이스이지만, 어쨌거나 그 분의 감방동기는 김화식 목사, 그 한 분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 중 평양교도소에서 만났던 조영창이라는 분도 있는데, 그는 북한의 민족지도자로 저명한 고당 조만식 선의 아들이었다. 그 조영창은 인품이 뛰어났다. 순교하신 김진수 목사를 위해 밤새 철야기도를 올리는 등 진지한 태도는 결코 흔한 게 아니었다.

공자에서 세익스피어까지 오가는 인문학적 지식도 대단했고, 간혹 배꼽 쥐게 만드는 유머감각도 있었는데 한 번은 그분이 눈에 띄게 시무룩하기에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간밤에 아버지 조만식의 꿈을 꿨는데, 영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건 예지몽이었는데, 그 며칠 뒤 북한 로동신문에 기사가 떴다. 당시 평양에 왔던 백범 김구가 조만식 선생을 모시고 서울에 가겠다는 얘기인데, 그 기사를 본 뒤 조영창 씨가 한 마디로 잘라 말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왜? 오로지 북한 주민들만 생각하는 분이 어떻게 그들을 버린 채 남한 땅으로 갈 수 있을까란 걱정이었다.

그렇게 부심하던 조영창 씨와는 끝내 헤어졌는데, 김인호 선생이 평양교도소에서 흥남교도소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훗날 얘기를 들었다. 조영창 씨는 끝내 아오지탄광으로 끌려갔다는 것이다. 자 그런데 조영창보다 더 관심있는 게 또 다른 뜻밖의 재소자인 통일교 문선명씨다. 문선명에 대한 언급은 <능라도여관>이란 책에는 나오지 않고, 그것보다 30년도 더 전인 그러니까 1985년에 나온 ‘서울로 가는 길’에 등장한다. ‘서울로 가는 길’에는 나오던 내용을 왜 <능라도여관>에는 뺐습니까? 라고 제가 김인호 선생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나 “너무 중요한 대목이라서 따로 활용할까 싶어서 그랬다”고 밝히셨다.

자 문선명에 대한 언급을 짧게 하겠다. 내 관심은 기독교에서 하는 이단이다 삼단이다 하는 논쟁과 달리 그 분이 개신교에서 나와 통일교로 가지쳐나가기 이전 모습이다. 그 초창기 모습이 책에 담겼다. 아는 이는 알 듯이 문선명은 평안북도 정주 출생이다. 1954년 서울에서 통일교를 창설했는데, 이건 순결함을 중시하는 가정윤리에 반공사상을 결합한 것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그런 문선명 특유의 반공사상은 지금부터 언급할 북한 교도소 생활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라고 짐작하고 있다. 자 그럼 책에 문선명이 어떻게 그려질까? 김인호 선생은 김화식 목사를 성자라고 표현했지만, 문선명도 “감옥 안의 성자”라고 또렷하게 표현했다. 직접 살펴보자.

“역시 남다른데가 많았다. 그는 항상 곧은 자세로 있었는데, 누구라도 피곤에 지쳐 서로 기대고 벽에 브스듬히 기디서 앉는 게 보통인데, 문선명 선생만은 항시 정좌를 하고 있어 앉음과 잠자리의 누운 태도가 분명했다. 심지어 그는 공산당 골수 간수들까지도 인정하는 모범수였다.” 교도소 작업도 군말 없이 잘 했지만, 새벽에는 두 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 묵상과 기도를 올리는 종교인의 모습도 한결같았다. 금쪽같다는 잠자는 시간을 그만큼 할애한 것부터 예삿일이 아니었다. 실은 문선명만의 새벽 냉수욕도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든 일이었다. 보통 재소자들은 탄광 일을 한 뒤 교도소에서 제공하는 그 더러운 물에 어쩔 수 없이 목욕을 해야 했는데, 문선명은 그걸 거부했다. 대신 먹는 물을 아껴서 조금씩 모은 다음에 수건에 적셔뒀더가 새벽기도 뒤에 깨끗이 몸을 닦는 일을 반복했다.

당시 문선명은 3년 형을 언도 받았고, 죄목은 사회혼란죄로 그건 반동죄와 같은 죄목이었다는 게 김인호 선생의 회고다. 구체적으로는 1948년 북한지역 금지된 종교활동을 어겼던 것이 죄목이었다. 그런 문선명과는 김인호 선생은 함께 출소했다. 흥남지역이 수복된 직후 극적으로 함께 풀려난 것이다. 그렇게 풀려난 뒤 문선명은 서울에서 종교활동을 하면서 거물로 몸집을 불린 뒤 훗날 소련 고르바초프를 만나 그 앞에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무신론을 폐기하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1년 김일성을 만나서는 그 면전에서 주체사상을 내려놓으라고 충고를 했는데, 이 모든 게 흥남교도소 체험과 무관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김인호 선생이라고 하는 놀라운 기억력을 가진 노병 덕분에 위대한 순교자 김화식 목사가 어떻게 공산주의의 희생양으로 돌아가셨는가를 우리는 알게 됐다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문선명이라고 하는 또 다른 종교지도자의 젊을 시절 삶도 우린 알게 됐다. 어쨌거나 이번 방송으로 윤월 스님의 컴퓨터 기억력도 대단하시지만, 김인호 선생의 증언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사람들은 모두 없어지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