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31
이상열회장 「전부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2024년12월29일 일요일
2024/12/29
‘통일교’ 전 세계회장 윤영호씨 자택과 사무실 긴급 압수수색
(韓國)検察が「統一教」前世界会長尹煐鎬(ユンヨンホ)の自宅と事務所緊急押収捜索
▶배임·횡령 등으로 고발... 지난 대선 尹錫悅(윤석열)후보에 100억 지원설
▶背任・横領などで告発…尹錫悅(ユンソギョル)大統領に100億ウォン支援説
2024年12月27日, 검찰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 전 세계회장 윤모 씨의 자택과 사무실을 긴급 압수수색했다.이 소식은 다음 날 새벽, 통일교 신도들 단체 카톡방에 공유되었고, 27일 검찰이 압수수색에 들어가자 선문대학교 이모 명예교수는 “통일교 안에 이런 일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입장을 아래와 같이 공개적으로 밝혔다.
このニュースは翌日の未明、統一教会の信者たちのグループチャットで共有され、27日に検察が押収捜索を開始したことを受け、鮮文大学の名誉教授であるイ某氏が「統一教会の中でこんなことが!」というタイトルで以下のように自らの立場を公開的に表明した。
“통일교회 지도자 중에는 조직을 희생해서 자신의 명예와 권력을 구하는 자들이 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기업 혹은 기관장을 맡기면 서슴없이 맡는다. 선문대학교만 보아도 그렇다. 몇 년 전에 박사학위도 없고 교수 경험이 없던 사람이 총장을 맡아 선문대학이 정부의 구조조정 예정 대학까지 가게 한 적이 있다.
최근 선문대학교에 임용된 건학이념 부총창 겸 교목실장에 부임한 인사도 그렇다. 대학의 교수 경험도 없고 대학 행정 경험이라고는 대학 조교가 전부인 사람이 언감생심 대학 총장직을 요구하다가 부총장으로 임명된 사람이 있다...
그런데 필자가 예상했던 대로 취임 몇 개월이 지나 그 사람으로 인해 선문대학교 위상과 명예가 실추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주 금요일 난데없이 선문대학교에 서울 남부지검에서 선문대학교 부총장실과 교목실장 방에 압수 수색이 들어왔다. 이유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윤모 부총장이 선문대학교 부임 전 근무했던 조직에서 탈세 횡령을 했다는 것이다.
백주대낮에 파란 상자를 든 형사들이 신성한 대학 교정에 부총장실을 압수 수색한다고 활보하고 있으니 이 무슨 망신인가?...”
「統一教会の指導者の中には、組織を犠牲にして自らの名誉や権力を求める者がいる。自分が背負いきれない企業や機関のトップを引き受けると、何のためらいもなくそれを受ける。鮮文大学でもそのような事例があった。数年前、博士号もなく教授経験もない人物が総長を引き受け、鮮文大学が政府の構造調整対象大学に指定されるところまで追い込まれたことがある。 最近、鮮文大学に任命された建学理念副総長兼教牧室長に就任した人物も同様だ。大学での教授経験もなく、大学の行政経験といえば助手を務めた程度の人物が、身の程知らずにも総長の座を求め、副総長に任命された者がいる…。 案の定、私が予想したとおり、就任して数か月後、その人物によって鮮文大学の地位と名誉が失墜する事態が発生した。先週の金曜日、突然、鮮文大学にソウル南部地検が押収捜索に入り、鮮文大学副総長室と教牧室長の部屋が捜索された。理由は詳しくは分からないが、尹煐鎬(ユンヨンホ)副総長が鮮文大学に赴任する前に所属していた組織で脱税や横領を行っていたということだ。 真昼間に青い箱を持った捜査官たちが神聖な大学キャンパスで副総長室を押収捜索するとして歩き回るとは、一体何という恥さらしなのか…。」
통일교 피해자 단체에서는 “통일교 내부 비리와 관련된 것으로, 윤 씨가 한 총재의 측근으로 지난 대선 때 정치권에 거액의 불법 대선자금을 지원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문제가 불거질 당시, 해당 대선 캠프에선 부인하였지만 통일교 측에서 폭로 당사자들을 상대로 문제제기 하지 않았고, 그 자금이 다시 통일교로 회수되지 않았다는 것이 피해자 단체의 입장이다.
これとは別に、韓鶴子(ハンハクチャ)総裁の周辺人物に関する訴訟も進行中である。統一教会側がソ某元幹部を横領などで告訴した事件は、検察が警察に再捜査命令を出しており、これも警察での調査が進んでいる。
종교와진리「통일교 교주 신전 짓다가 빚쟁이들 찾아와 시위」 2024年11月21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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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2
📖 흥남감옥안의 성자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않고
風ニモマケズ
雪ニモ夏ノ暑サニモマケヌ
丈夫ナカラダヲモチ
慾ハナク
決シテ瞋ラズ
イツモシヅカニワラッテヰル
一日ニ玄米四合ト
味噌ト少シノ野菜ヲタベ
アラユルコトヲ
ジブンヲカンジョウニ入レズニ
ヨクミキキシワカリ
ソシテワスレズ
野原ノ松ノ林ノ
ノ小サナ萓ブキノ小屋ニヰテ
東ニ病気ノコドモアレバ
行ッテ看病シテヤリ
西ニツカレタ母アレバ
行ッテソノ稲ノ朿ヲ(負ヒ)
南ニ死ニサウナ人アレバ
行ッテコハガラナクテモイヽトイヒ
北ニケンクヮヤソショウガアレバ
ツマラナイカラヤメロトイヒ
ヒドリノトキハナミダヲナガシ
サムサノナツハオロオロアルキ
ミンナニデクノボートヨバレ
ホメラレモセズ
クニモサレズ
サウイフモノニ
ワタシハナリタイ
한국 이단의 산실, 통일교는 북한과 무슨 관계
編輯用資料(편집용자료)
문선명선생님의 20대는 어떠했을까요? 고(古)김인호 애국지사님의 책 "서울오는 길"에서 20대의 참아버님을 만나봅니다. ☺️
사진출처 "사진으로 보는 6.25 한국전쟁 자유와 생명의 기록" 월드피스 프리덤 유나이티드(The World Prace Freedom United)
식구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재림주 님 목격자 채널에 다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은특별한 재림주 님의 목격자를 여러분들께 소개시켜 드리려고 합니다참아버님의 흑남 감옥에서 같은 감방에서 있었던 친구 분이십니다김인호 애국 지사님이 오늘은 김인호 애국 지사님을 소개시켜 드리려고합니다 어 19살의 정치범으로 어 토대김인호 애국 지사님은 흥남 감옥에서 28살이 되신 참 아버님을 만나시게됩니다 사실 흑남 감옥에서는 당시 2명에서 25명 정도 한 방을 썼다고하는데요 그 흥남 노무자 수용소 그 같은 방에 바로 김인호 애국 지사님이참 아버님과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 계셨던 것입니다 정말 너무나 큰인연이 아 입니까 여기 책에서 보시면요 어 조금 흐릿하긴 한데서울로 오는 길이라는이 책에서 김민호 저자 이렇게 되어 있고요1985년도에이 책을 쓰셨습니다 그리고이 책 안에 흥남 감옥 안의성자 문선명 선생 이렇게 되어 있는 과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오늘 그과를 같이 읽으면서 어 참아버님께서 흑남 감옥에서 어떻게이 분과 같이수감 생활을 하셨 지 또 어떻게 모범이 되셨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같이책에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이 책 서두에서는 일본에서해방 받은 1945년 8월 15일 북한 평양을 그리면서 시작됩니다 당시에 고등학교1학년이었던 김인호 할아버지는 광복 소식과 함께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고합니다 그러면서 그때를 회상하기를 이렇게 책에 쓰셨습니다 16년간 얼마나 많은투사들이 혈기와 목숨을 바쳤던 ka 또 얼마나 많은 우국 지사들이 조국광복에 애달 푼 한을 품고 이영 말리의 타국에서 눈을 감았던 ka네그렇습니다이 김민호 애국 지사님은 사실 3배에 걸쳐서 독립운동을하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이 해방된 다음에도 일본이 떠난 다음에도 어북한에서 방공 운동을 계속 하셔 오셨던 분이었습니다 또 다시회상하시며 민족의 해방이라는 기쁨도 잠시 뒤로 하고 38선 이북에는소련군이 진두해안길1945년도 8월 달에 있었던 그 해방의 기쁨도 잠시 뒤로하고 벌써이북에는 소련과 중국군들이 일본이 이제 나간 공백의 권력을 다시 시잡으면서 강대국들이 이렇게 한국 이북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처음에는북한을 보호해 주던 척하던 러시아 군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밤이 되면닥치는 대로 도둑질을 하고 강도질을 자행하면서 평양 곳곳에서는 부여자이강간을 당하는 그러 사건들도 계속 있었다라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런가운데서 이제 김인호 애국 지사님은 어 김일성 정부와 러시아 합작으로점점 산화되고 있는 북한을 보면서 아 내가 어린 학생이지만 가만히 있을수가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면서 학생 신분으로 무엇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드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명의친구와 조양회관 그런 단체를 만들어서 어전단지 5천장을 찍고 그리고 방공 운동을 그 어린나이의 친구들 명과시작하셨다고 합니다 독립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혈통을 이어 받으셨던분이셨던 거 같습니다 김인호 애국지사는 어 2015년 한국 보훈처 애국자로표창장도 받으신 분이었습니다 이렇게 김인호 할아버지가 겪으신 기록은우리에게는 특히 통일 교회에게는 아주 소중한 자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참아버님께서 가장 비참하고 가장 어렵고 힘든 자리에 계셨던 때인 흥남 감옥에그때의 생생한 사건을 정말 좋은 필력으로 저희에게 알려 주시고 계시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김인호 할아버지께서 겪으신이 일들을 통해서요참 아버님께서 겪으셨을 일을 미리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어그렇게 찰나지만 참아버님께서 가장 낮고 비참한 자리에 계실 때참아버님께서 어떤 인격을 보여 주셨는지 애국 지사님을 통해서 어저희가 옥중의 성자 문선명 통해서 한번 여러분들과 만나 보도록하겠습니다 이때 이렇게 조양이 만들고 방공 운동을 이렇게 시작을 했다고방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방공 운동을 하다가 어 드디어 발각이 되어서 어 잡혀가게 되셨다고합니다 그래서 평양의 당시에 살고 있었는데요 어 자신과 함께 명의친구들은 평양 내무서원 그러면서 여러 가지 이제고문들을 당한 내용들이 나옵니다 어 참 아버님께서도1946년도 8월에서 11월까지 3개월 동안 평양 어 대동 보안소잡혀 가셨던 것을 저희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때 말을 들었던 것은 그때죄목은 어 나만의 스파이다 그리고 사회 문란죄 이제 복음을 전파했고때문에 사회 문란죄 공산 사회에서는 복음을 전파하고 어 방공 사상을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사회 문란죄 되는 것이죠 그렇게 아버님께서도 평양대동 보안서 들어가셨을 때 어 비슷한 시기에 김인호 애국지사 할아버지께서도평양 내무서원 받으시는 것이 나옵니다 참아버님께서도 여러 가지 이제 고문을 받으신 것을 저희가 이제 익히 들어서 아는데요 참 아버님께서도 평양 동보안서 끌려 가시고 어 3개월 후에 나오셨을 때 어 빈사 상태로 어무죄로 석방이 되셨습니다 그지만 아버님께서 나오시고 너무 고문이 심했었고 때문에 10일 동안 대하에계속 피를 이렇게 쏟으신 정도로 너무 상태가 안 좋으셨고 그때 당시에사람들이 회상을 하기를 아버님을 어디다 묻어야 될까를 논의할 정도로상태가 굉장히 안 좋으셨다고 얘기를 하는 것을 역사 고증에서 저희가들어서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어 김인호 할아버지께서도 평양이라는 같은도시에서 물론 다른 곳이었지만 여러 가지 고문을 받으신 부분이 있습니다그 부분을 한번 여러분들과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이 책은 책이 절판됐기 때문에 원본을 구하지 못하고 어 이렇게 카피본을 제가 오늘은 가지고 왔습니다 그렇지만 어 전체 책이수록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저도 쭉 읽어 보면서 처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책에서 발치해서 참 함기어려운 고문이라는 과에서 몇 가지를 어 이야기를 해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가지 이제 이때 고문 방식들이 있었는데요 고문 방식 중에서는 이제첫 번째 물을 먹이는 고문이라고 돼 있는데요 20분 이상이 고문은지속되고 어 코와 입에 호수를 연결을 해서 어 숨을 쉴 수 없도록 이렇게하는 고문이라고 합니다이 고문은 매지를 실컷한 다음에 이제 사람이 거의 기진맥진할 때이 고문을 가한다고합니다 입니다 또 비둘기 장 고문이라는 것이 있는데요이 고문은 보통 3일 정도 이루어지는데요이비둘기 장 그러니까 굉장히 작은 장이죠 사람이 몸을 쑤셔 넣어야지만들어갈 수 있는 강아지 한 마리가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작은 상자에 사람을 이렇게 집어 넣고 이제 절식을시키고 그다음에 이제 소량에 물을 주면서 밖에 추운 날 혹한에 방치하는겁니다 그러면 거의 동사 가사 상태가 되는 거죠 비둘기 장애 나왔을 때는오금이 펴지지 않고 몸이 마비가 되는 이제 그런 증상들이 있다고 합니다그리고 학춤이라는 고문도 있었습니다 춤이라는 고문은 한시간 이상 어지속이 되고요 그리고 식사 후에 어이 고문을 한다고 합니다 허리에 이제줄을 하나 매달아서 천장에다 매단 다음에요 엉덩이와 꼬리뼈를 세게 계속때리면서 몸 안에 있는 모든 음식을 개어내다 그런 고문이라고 합니다 고문들이 여러 가지가 조금 더 있는데요 조금 더 소개시켜 드리면요 심지 바퀴라는 고문은 죄수를 나체로 이렇게벗긴 다음에 사지를 이렇게 꽁꽁 묶고 남자의 생식기 부분을 빳빳한 얇은종이로 이렇게 끼워 넣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원기둥을 작게 만들어서요 그런다음에 생식기를 이제 꽉 쪼이게 되니까 그게 전체적으로 온 몸이이렇게 어 뼈마디가 쑤시고 고리 울리는 그런 고통을 느끼는 거 심지바퀴라는 그런 고문이라고 합니다 관절을 뒤틀어서 불구로 만드는 그런고문들로 있는데 그런 고문은 울퉁불퉁한 콘크리트 위에 육모 깔끔방망이를 무릎 관절 사이에 끼우고 어 사람을 이제 구두 발질을 하는 고문손가락 다섯 마디에 연필을 끼우고 조여서 어 이렇게 꺾는 그런 고문 또손톱 발톱을 다 뽑는 고은 어 고춧가루와 물을 콧구멍에 그런 붓는고문 몇 시간씩 나체로 얼음 눈덩이에 안게 하고 방치하는 영화 20도에평양은 아주 춥지 않습니까 그런 혹한 날씨에 이렇게 방치하는 그런 고문들이제 이런 고문들을 죄수들 시전을 한 것입니다 또한 감옥에 위생 상태는굉장히 좋지 않았기 때문에 상처로 인한 염증이라고 아니면 열병 전염병말라리아 이런 것들이 계속해서 어 돌기 시작했고 동상이 걸리면 어 그냥빨갛게 돼서 끝나는게 아니라 살이 썩기 시작합니다 왜냐면 치료를 제대로 못 하니까요 그러면 이제 이런 손가락그리고 발가락들이 잘라내면서 더 이제 상태가 악화되고 그곳으로 인해 많은어 죄수들이 돌아가시게 되는 그러한 일들도 비비지 했다 이런 것들이나옵니다 여러 가지 이제 이런 육적인 고통들은 아마 우리가 익히 들어보신분들이 많이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이 책에서는 어 조금 좀 특이한 고문도하나가 있어서 여러분들과 한번 나눠 보도록 하고 싶습니다 독방에서 사체와어 동침을 시키는 그런 고문이라는 과가 있어서 그 부분을 한번 읽어보도록 하고 싶습니다이 고문은 아마도 어 사람을 거의 정신적으로 어 미치게만드는 그런 고문이 두러 공포에 자기가 거의 자살하는 그런 수준의 어사람을 이제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는 것인데요 또한이 독방의 가두 전에아까 제가 미리 말했던 그런 여러 가지 육체적인 고문을 시전한 다음에바로이 고문을 하는 것입니다 김인호 애국 지사님도 이런 고문을 당하고여기에서 한 과을 이렇게 쓰셨습니다 한번 같이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어둠에 눈이 익숙해질 때에 기다려 살펴보니 나 이외에도 두 사람이 더있었다 둘 다 잠이 들었는지 불러도 꼼짝하지 않았다 기진맥 지난 나도스스로 잠이 왔다 덜컹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간수 두명이 들어선다 이들은 나를 본체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사람 중 하나를둘이서 질질 끌고 나간다 사지가 축 늘어진 채로 미동도 안고 끌려 나가는모습을 보니 문득 살아 있는 사람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이문이 다치고 누워 있는 다른 한 사람 옆으로 다가가 보니 역시 죽은시체였다 순간 머리카락이 오싸고 싹서는듯한 섬뜻한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감옥에서 수없이 많은 죽음을 보았기에 무서움도 잠깐 뿐이었다 무슨연고로 수용서 들어왔다이 모양이 됐을지 몰라도 죽음 그 자체가동정심을 일으키기엔 충분했다 비록 생전의 얼굴과 이름도 모르고 지냈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생과 살을 초월하여 수용소 동문이 종인도록 방안에 갇혀 있자니 작업을 나가는게 차 다는 생각이 들만큼 괴로웠다 눈을뻔히 뜨고 죽어 있는 시체는 흡사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고 여기저기기어다니는 벌레들은 더욱 징그러웠다 뒤로 뒤틀려 수갑이어진손으로 시체의 눈을 감겨주고 나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시체의배설물에 파리들이 날아다녔고 악지 또한 대단했으나 코는 곧 냄새에익숙해졌는지 그다지 역학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강이를 보니 군화에 채이고긁혀서 시뻘 거게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저녁 대가 되니 그래도 조금은서늘한 바람이 들어왔다구나 소리가 저벅저벅 들리더니 간방 문이 열렸다간수 두 명이 들 것에 실려 있던 사람을 내동댕이 치고는 사라졌다 또시체였다 팔이며 달이며 아직 따스한 걸 보니 죽은지가 얼마 안 되는모양이다 팔다리가 엉망으로 겹쳐진 시체를 똑바로 자리를 잡혀 놓으려꽤나 힘이 들었다 짙은 포르말린 냄새가 나는 것을 보아서 병사에서 곧장 이곳으로데리고 온 것 같았다 역시 눈을 부릅뜨고 죽어 있었다 아까 같이 눈을감겨 주니 좀 전에 험한 인상이 사라지고 평안한 인상이 되었다 한만은인들이다 저녁 식사 시간이 훨씬 지난 것 같은데 배식을 하지 않는다 이것도형인가 보 구두의 시체와 나란히 엎드려 있으려니 내 육신마저 죽처럼느껴진다 한참 어머니 걱정에 몰두하고 있던 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 옴을늦게 깨달았다 가만히 두기를 세우고 들어보니 벼라별 음향이 다 들렸다툭툭 졸졸졸 꾸룩꾸룩 탁탁 누가 벽을 두드리는가 싶으면 다시 시냇물 소리가들리기도 했다 별 요상한 일이 다 있나 싶어 몸을 간신히 일으켜 앉아서들어보니 소리가 나는 곳은 시체들였다 새로 들어온 시체의 길을데어 보았다 시체의 몸속에서 끊임없이 소리가 나고 있었던 것인데 갑자기 툭하고 시체가 미동 혼비 백산을 하고 물러났으나 별 다른 현상은없었다 짧은 당시의 소견으로는 신체의 각 부분이 완전히 정지되기 지의 과정으로 생각되었다 좌우지간에 시체들과 한방을 쓴다는 것은 애써 달리 생각해보아도 기분이 육쾌한 일은 못 된다 게다가 정들기 하면 드러내 가고 다른주검들이 들어오곤 했으니 그야말로 정들자 이별이었다 며칠을 지나니 그런 대로시체들과 친해지기도 하고 잘 지냈는데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새로운시체의 배를 천연덕스럽게 내가 배고 있는 것이다처음에는 조금 거림 했으나 사람의 배는 적당히 탄력이 있어서 몹이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주일이 됐구나 하고 생각하던 참에 간방 문이열리고 징계 해제라는 수을 풀어줬다 일시의 두 손이 자유로워져 기분 좋은김에 옆으로 휘둘렀다 팔에 심한 통증이 왔다 매를 심하게 맞은 뒤줄곧 비틀려서 묶여 있었던 탓이다이 부분을 읽으면서 참 공산당이 얼마나악한지 다시 한번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이렇게 정신적으로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고김인호 애국 지사님은 이것을 잘 지켜냈지만 주검으로 독방에서 나오는 사람들도 많았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정말 이런 방법들이 정말 악랄했다 생각을 다시 한번 해 봅니다 그리고이분이 이런 글을 통해서 또 아버님께서 그 당시에 겪으 야 할 고문들을 다시 한번 저희들도 생각해봅니다
참 아버님께서는 오구 6이라는 수관 번호를 받으셨죠 이분은 424호아는 그런 번호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정치 범서 아주 어린 나이의 교도소에 들어오게 되고 이제 겨우겨우평양네무소프트 이라는 단체가 북한 라디오 언론에서 대서특필 되면서 이것이대규모 남조선 침투 활동이라고 보도가 됐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도가 되면서자신들은 완전히 어 남한 스파이고문 한 극악한 정치 사범들이되어 있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또한 허위 선전이 되기를 대량 무기가이들의 학생들의 아지트에 발견되었다 물론 거짓이죠 그렇게 보도가 되면서이이 사건은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주 그 10대의어린 나이의 어 흑남 노무자 수용소로 보내지게 되는 이야기를 하시게 됩니다그리고 이제 거기에서 참 아버님을 만나시게 되셨죠 이번에 제가이 책을 읽으면서조금 흥남 공업단지 흥남 감옥 어 그것이 대체 무엇인가 리서치를 조금하게 되었는데요 사실 저희가 지금 생각하면 어 대한민국은 어 나만은지금 훨씬 더 잘 살지 않습니까 경제적으로도 세계 시비에 드는 그런 나라지요 그래서 북한하고 사실은비교가 할 수 없지요 그런데 1950년대 하더라도 북한은 남한보다훨씬 더 잘 살았다는 것을 여러분들 아십니까 왜냐면은 일본이 중국 대륙침략을 목표로 해서 북한의 여러 공업 단지들을 조성을 했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북한은 공업으로 유명했고 남아는 여러 가지 투자가 되어 있었지 않았기 때문에 농업을 주로 하고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굉장히 남한보다 잘 살았죠 19 1950년도에 북한은 전 세계질소량을 10% 그때 담당했었다 합니다 흥남 비료공장 즉 아버님께서바로 여기에서 노역을 하셨는데요 어 바다 부두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고일본 식민지 당시의 공업단지로 만들어졌던 흥남 공업 단지는 그일대의 다섯 개의 대규모의 공장들이 어 밀집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공업 단지를 어 이제 일본이 나갔지요 이제 일제 치하가 끝나면서 나가면서그 공업 단지를 이제 북한 김일성 정부가 압수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이 공업단지를 계속 돌릴 수있을까 생각한 것이 바로 이런 무고한 사람들을 정치범이라고잡아와서 여기에서 어 죽어 나갈 때까지 노역을 시킨 것입니다 그리고아버님께서는이 소 비료공장에서 어 북한 김일성 정부 치하에서 이렇게노역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어 그러면은 한번 흑남 감옥의 경험에대해서도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페이지는 72페이지 있니다 흑남 비료공장에 처음 김인호 할아버지가 오셨을 때 이야기입니다 긴 여행 탓인지심난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올리면서 간수들이 기상을 외치고 다녔다 일어나기 동무들 일어나기 새벽6시가 못된 시간이었다 2사 5방 이상 없나 곧이어 딸각거리는 소리가들리며 배식이 시작됐다 식사라 장기판 초나라에 한나라 만한 틀에 멀건시레기 소금국 1분이면 다 먹고 많은 식사 시간 30분 식사 시간이 끝나니이번엔 집합을 하란다 달래달래 모여드니 전날 보았던 얼굴들이히죽히죽 웃으며 아침이 인사를 나눈다 밤새에 별일 없었느냐는 인사도 잠시흑남 특별 노무자 수용소를 만든 목적은 노동력 부족으로 허덕이는 흑남비료 공장에 노동력을 충당함과 친절한 안내가 끝나자 작업조편성하였다 설치고 다니는 무장 간수와 이리저리 밀려 다니는 죄수들과 씨름이끝나자 고정 작업조 만들어졌다 명이 한조가 되었는데 묘하게 간수들이임명한 조장들은 모두가 잡범이 있다 열조의 작업 조가 한 반이 되며 한명의 반장이 작업반을 지휘하게 되었는데 작업 반장은 잡범 중에서도강도 살인 강간 등의 흉악범 들이었다 총검으로 무장한 경비와 간수들의감시를 받으며 6km 정도 떨어진 흥남 비료 공장에 걸어서 출력을나갔다 어 그래서 이분은이 다섯 개의 흥남에서 만들어진이 단지에서 처음에는어 봉궁 특별 노무자 수용소에 이제 감금이 되셨다가 나중에 흥남 노무자수용소로 옮겨지다 아버님도 사실 처음에 흑남 노무자 수용소로 곧바로가신 것이 아니라요이 다섯 개의 공업 단지 쪽에서 이렇게 조금씩 옮겨 다니시는 그런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6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하시죠 어 그래서 흑남 비료 공장에 이제 들어서게 됩니다 말로만 듣던흑남 비료 공장의 규모는 실로 엄청 나리만큼 대단했다 얽히고 설켜 있는기차 철도와 운반용 밀차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실세 없이 검은연기를 뿜어대는 굴뚝을 보니 정신이 다 혼란하다 첫날 우리들이 한 작업은비료를 가만히에 퍼담는 포장을 하는 것이었는데 한 작업 조에 명이 비료가만이 700개를 묻고 나서야 작업이 끝나는 것이었다 다시 걸어서 수소로돌아오려니 어느덧 하늘엔 성급하게 나온 별들만이 깜빡였다 수용소로돌아온 우리들은 인원 점검을 받고 일렬로 서서 간수들의 친절한 안마를받으며 한 명씩 통과했다 작업장에서 유리조각 담배꽁초 노은 성냥 등의범칙 숨겨 가지고 오는 것을 색출하기 위한 안마 있다 차례로 얼굴을 물칠한 번씩 하고 입방 하니 곧 저녁 식사 굶주린 창자를 달래가면서 한귀퉁이에 소금물 한 모금씩 아무리 천천히 씹어 삼켜도 분 이채 되지않는다 손끝이 싸하게 쓰려서 희미한 불빛에 살펴보니 손끝에 허물이 다벗겨졌다 거친 가마니와 독한 비료에 쓸려서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그랬다어 참 아버님께서도 흑남 감옥을 상하시지 비료가 너무 독해서 옷들이다 쓰러져서 오래 입을 수 없고 살것들이 다 벗겨졌다는 그런 이야기를 종종 하셨는데요 어 김인호 할아버지도똑같은 이야기를 하시고 계십니다 어 7시 30분 쯤 되자 독보회 아는구령이 떨어졌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간수가 각방마다 노동 신문을 한 부씩넣어 준다 글 읽을 줄을 아는 사람이 대표로 방 식구들에게 독보 해주라는것이었다 로동 식문 사설 란을 다 경청하고 나니 곧이어 토론회를 하란다뭘 토론하라 것인가 하고 멍청이들 있으려니 오늘의 작업에 대한 비판감옥에 들어오게 대한 죄과에 대한 비판 자아 비판이 그런 것이다그러니까 이것은 보통 이제 공산당들이 다 하는 거죠 문화 혁명이 중국에서 이루어졌을 때도 이제 자기 비판을하는 토론이라는 것을 통해서 주일 사람들을 분류하고 정제하고 공개 심판공개 처형을 하는 것들을 볼 수 있는데요 바로요 그 부분으로 아마 독보회이 제수들 사이에서도 시켰던것으로 보입니다 졸리 없고 피곤하고 배고픈 것을 참고 견디고 나니 9시사이렌이 울린다 점검하는 구령과 함께 간수들이 기둥과 같은 통나무를 들고다니며 벽이며 바닥 등에 쿵쿵 올려보는 것이다 혹시 땅굴이나 벽을파지 않았는가 하는 점검이다이어서 저모를 한 후 취침커다란 담요 석장을 바닥에 깔고네 명의 머리를 반대로 두고 담유 한장을 덮고 자는 것이다 8월 말이었지만 간방 아은 스산하고 습기가축축하고 추웠으나 피곤에 지친 나머지 모두들 눕자마자 코를 곤다 그리고다시 아침이다 기상 사이렌이 울리고 부산한 발걸음 소리 전날에 중노동탓인지 모두들 기운 없이 비칠 거린다 아침밥은 더더욱 알량 보이고 그나마살겠다고 먹어야 하는 신세가 눈물나게 처량해 한동안 밥덩이 바라보지만 하눈수 없이 먹는다 딸려나온 시레기 국을 한 모금 마시니 바닷물에 끓여 있는지 소태같았다 국물 먹는 것을 포기하고 건데기가 건져 먹을 유량으로 숟가락질을 하니 국담 씻기에 바닥에뭔가가 긁혔다 국그릇을 들고 살펴보니 국그릇 밑에는 돌멩이들이 죽 가라앉아있었다 참 이것이 사람을 먹으라고 주는 음식이란 말인가 젓가락으로시레기를 건져보니 썩은 이파리에 건 같은 것들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차라리 국 대신 먹을 물을 한 그릇씩 더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간절했다 집합 마당으로 주르르 나가는 수인들의 발걸음이 전날에 비해서 훨씬힘이 없어 보이는 것은 내 자신의 마음 타던가 픈 환자는 열 앞으로 나서라는소장의 지시에 거의 반수 이상이 열 앞으로 나간다 그러자 교독 간수들은커다란 몽둥이를 질질 끌고 다니며 증세를 물었다 전 워낙 허리가 아파서 일을못합니다 늘수 그래래 한 노인이 대답하자 동무들 아이되겠음 간수들은 모두 함경도 출신이었다 그렇게 말하며 사정도 없이몽둥이를 노인의 허리체인 노인이 쿵하고 낮아 빠지자동물들이 정도 대하 환자 자격이 있다 환자 동물에 있으면 나와 보기요환자를 자청했던 수인들은 이미 열 속으로 슬금슬금 숨어들었다 열을 지어서 비료 공장까지걸어가는 동안 벌써 뱃속에선 꼬르륵 거리며 창자가 비었다고 아우성을 친다공장에 도착하니 하루 작업량에 할당을 해 는데 실로 엄청난 양이다 1조열명의 비료 1300 가마니를 묶어 내야만 한다는 것이며 작업 시간 내에작업량이 미달될 때는 완수될 때까지 작업을 시킴과 동시에 전역을 굶긴다것이었다 그래서 첫날 왔을 때는 700 가마니를 하라고 했는데 다음날부터 이렇게 두 배로 뛰게 한것입니다 일반 노동자들은 정해진 임금을 받으며 열명이 700 가만이만 묶어내 되는데 허기지고 병약한 제수들 두 배에 달하는 작업양을당했다 이날부터 못 견디고 죽으려면 죽어라는 식에 비참한 강제노동은시작되었고 끝도 없이 이어졌다 짐승도 배불리 먹어야 주인을위해 하거늘 아무리 죄인이라 하여도 단 한끼 배불리 먹여본 적이 없이이런 노동을 시키는 저들의 장은 죽으려면 죽고는 까지 죽도록 일이나하다 죽어라라는 것이었다 이때 흑남 감옥의 상태를 나중에 이야기하는 것을들으면 1년에 1500명이 흑남 노무자 수용소에 끌려 왔는데요 40%죽어 나가는 생 지옥이었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조금 먹고극한 중노동을 견딜 수 있는지 김일성 대학에서 흑남 노무자 수용소를실험으로 썼다는 그런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작업 내용을 보면 두 명이 곡괭이로딱딱하게 굳은 비료 더미를 파내고 두 명이 가마니를 벌리고 두 삽씩네 삽을퍼놓고 앉은뱅이 저울로 끌고가 40km임을 확인하고 4에서 5m전방으로 끌어다 놓는다 그러면 기다리던 다른 두 명이 가마니를새끼줄로 쳐서 묶어내 또 다른 두 명이 묶어낸 비료 가마니를 해지고 반밀차 1명 도로에 쌓고 두 명은 도로를 밀어서 비력 가마니를 창고에가지고가 쌓는 작업을 한다 그러면 도압 명의 인원이 되어 한 조가작업을 하는 것으로 점심 시간 30분을 제외하고는 실세 없이 움직여비료 1300 가마니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한 시간마다 10분씩 휴식시간이 있기는 해도 휴식을 취할 수 없는 것은 일을 해도 연장 작업을 해야 목표량을겨우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매일 9시간 내지 10시간을 쉬지않고 작업을 해야만 했다 감옥에서 샘을 해볼 시간이 없어 몰랐으나 후일계산을 해보니 평균 1분의 두 가마니를 생산할 셈이었다 그러니까30초에 한 가마니씩 해 냈어야 됐던 것이죠 아버님께서 흑남 감옥에서 이제질소 비료를 름 일을 하셨다라고 저도 어렸을 때부터 익히 들었지만 이렇게자세하게 아버님께서 어떤 일을 해 내셔야 했었는지 30초마다 40km달하는 질소 비류를 만들어내는 일을 2년 반 동안이나 하셨던 것이었구나아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간방에 들어가면 오라게아는 것을 한다고 합니다 공산당 간수들을 위한 광대 놀음을 하라는 것이죠 오라해 끝나면 배가 도로고프다 1300 가마니를 생산해 낼 때까지 작업을 해야 하는 깜깜한절망만이 남아 있었다 극도의 영양실조와 극심한 노동으로 인하여모두들 비리비리하게 말라만 갔고 한 달이 지나자 노약자들이 이틀에 한 명꼴로 죽어 나가는 참상이 생겨났다 그런 다음에 이제 감옥에서의 일들을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감옥 감심 일정이라는 챕터인요 아까 처음에 보시면 죄수 수감자들 그리는 좀처음에는 이제 훈훈한 그러한 기운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지만 간방 내에서도 이제 감시 밀정을 하는그러한 내용이 다음 과에 나옵니다 처음 수감이 되었을 때는 다소간의인정미가 있었으나 처참한 생활이 계속되자 수감자들 간에서는 흉흉한분위기가 생기고 말았다 시일이 지나자 가끔씩 불리어 나가 문초를 받고독방에 갇혔다 나오는 동료들이 있었는데 이들의 말에 의하면 누군가사사건 간 내의 일을 교가에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연 피차 간의 대화도 끊게되고 누가 밀정 있가 살피느라 서로 감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개중에는 배장좋은 사람도 덜어 있어서 공연하게 밀정을 하는 사람을 욕하는 사람들도있었는데 다음날이면 영락없이 독방에 치는 신세가 되곤 했다 나중엔 죄질에따라서 이방을 시켰다 그러니까 아까 제가 읽어 드렸던 그 독방에 이제바치게 되는 거죠 심한 매질과 혹독한 대우를 받은 다음에 사채와 독방에집어넣는 것이죠 반동 사상범 두 명과 세 명의 잡범 20명씩 모아놓았는데이 잡범 중에 프락치 노릇을 하는 자가 각 방마다 세 명에서네명씩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적게는 밥 한 덩이를 더 얻어먹는것에서부터 크게는 자유롭게 차압을 받을 수 있거나 사면의 혜택을 받는것을 누린다 시일이 흐른 후에 아예 동무의 발언 내용을 교도가 보고하겠어요 이런 식으로 터놓고 거들먹 거리기지 하였으니 우리 반동 죄수들은이중의 옷고를때 수밖에 없었다 점심 시간에 오라게 때에나 간수들의 눈치를살피며 소금소금 몇 마디 주고나 받는 정도이니 어떤 때는 입에서 단내가나기도 했다 아버님께서도 흑남 감옥에 계실 때는 거의 말씀을 이제 안 하신 걸로 저희가 알고 있었는데 바로 이런이유들 때문에 아버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나와 한방에 있던 분 중에서는 목사인 김진수 씨와 사회혼란체 들어온 문선명 씨가 있다 이제 아버님 조남이 이제 드디어 나오기 시작합니다 두 사람은 각자 독실한신앙 체계를 가지고 있었고 범인으로 하기 힘든 절도 있는 생활과 모범적인인간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신 아이가 어렸던 내가 방 안에서 난장판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분들의 모범과개도가 있었던 까닭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먼저 이제 김진수목사님이라는 분을소개하십시오날까지 일제 때부터 독립운동을 하며 감옥에 드나들었으며 오늘날은 공산당을반대 하다 감옥살이를 하는 분이다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 때 감옥살이를한 것이 12차례에 이르면 나중엔 경들의 분노가 하늘에 찔러 경찰견우리들의 세파트 그과 갇혀 개에 물어뜯기고 했는데 그래도 너희들이일본 개보다는 훨씬 낫구나 하며 잠자고 앉아 있었다는이라도 있었다시대가 바뀌어 공산당 정권을 집권했을 때에도 김목사는 조선기독교 협의의해장 을 지내던 중 집회 시의 신자들에게 불어난 방곤 사상을주입했다 죄로 수감이 되어 또다시 13번째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김목사는 전혀 자신에 대해서이야기를 하는 적이 없었으나 간방 안에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런 김목사님이라는 분도 계셨다고 합니다 어 또 자기가 아주 싫어하는 목사님이있었다라고 나쁜 목사님의 예도 하나 드시는 것이 나와서 그것도 한번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때 흑남 저녁에 말라리아가 성행했던 적이있었다 워낙 흑남 지역은 공장 폐수와 심한 대기 오염으로 늘 안개 같은매연이 생겨 있어서 각종 전염병 및 유행병이 창궐했다 말라리아가 성행했던때 너무 제수들이 많이 죽어 나가니까 키니네 아는 그런 말라리아 약이있었다고 합니다 그거를 이제 수용소 안으로 들여올 수 있도록 이렇게 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이 김인호할아버지도 그 키니네 먹으면서 이제 점점 조금 차도가 있어지고 있었다고합니다 그리고 남은 것들은 소량이지만 같은 간방 죄수들에게 이렇게 나누어주는 온정도 펼쳤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자기가 이런 행동을 하는 거를 보면서자기의 그런 행동을 콧방귀를 끼던 위인이 있었는데이 사람이 알고 보니더 목사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이름을 쓰지 않은 이유가 나옵니다 피같은키니 를 왜 남들에게 나누어 주느냐고 나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는데 목사라는사람 치고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의 말로는 사회에서제법 존경받던 목사라 감옥에서 하는 행동을 보면 전혀 그렇지 못한위인이었다 김화 씨 김진수 목사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고 있던 나는 목사라면 전부 성인에 가까운 줄 알고있었는데 W 목사의 행동은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곧 목사도 사람이나름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이 W 목사는 자신의 사회와 함께 재판을받고 사회의 혼란 이제로 복역하고 있었는데 며칠 후 내가 태원을 하려고할 무렵 W 목사의 사위 마저 말라리아에 전염이 되어 병사로돌아왔다 사위가 장인인 W 목사에게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밤가 웃게 무난은사를 들였지만 장인은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헛기침만 두어번 킁킁거리고 돌아 저녁 시간에도 식사 시간에도 돌아앉아차입해 온 미숫가루를 혼자 밥에 발라 먹으면서 사위는 전혀 아예본체만체 씨의 사위에게 차이이 전혀 없었는데 장인은 사위 걱정이나염려하는 빈말 한마디가 없었다 게다가 한 밤 중에 열이 오른 사위가 참다못해 장인에게 고통을 호소하며 키니를 조금 나누어 줄 것을 간청했으나회복기에 있었던 W 목사는 이런 지야 거절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메마를 때로매마른 각박한 환경이라 하여도 남도 아닌 장인 사위 처지에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라 하며 모두가 고개를 흔들며 W 목사를 죽은 나무귀신이라고 비웃게 되었다 즉 목사를 나무목 죽을 사로 비유해서 해석한것이었다 후에 우연히 들어보니이 W 목사는 남한으로 살아나온 후 큰교회를 운영하고 신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명망을 떨치고 있었다고 한다글쎄 뭐라고 말하기 힘든 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이 W 목사 다음에 이제이야기하시는 분이 참 아버님 문선명 선생님이십니다 어 그러니까 이분은10대 후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이렇게 관찰하고 평가하는 판단력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그러시면서 아버님에 대해서 어 쓰시고 계십니다 어 여러분들이 조금 들으셨던내용일 수도 있는데 재림 주님의 목격자의 입장에서이 글을 쓰셨다고 생각하니까 어이 글이 굉장히세삼스럽게 저에게 다른 어 느낌과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과 함께 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옥안의 성자 문선명 선생 그렇게 어 그 챕터에제목이 되어 있습니다 또 한 사람 문선명 선생 역시 남다른 면이 많았다그는 항상 곧은 자세로 있었는데 누구라도 피곤해 지쳐 서로 기대고벽에 비스듬이 기대서 앉는게 보통인데 문선명 선생만 항상 정자를 하고 있어앉음과 잠자리에 누운 태도가 분명했다 그는 공산당 고수 간수들 아지도인정하는 모범수 있는데 그 이유는 한치의 범칙 용납하지 않았으며 그건전한 체격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작업을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작업하면 동료들이 그만큼 수고를 덜 것이 아니겠소 주위에서 몸을 아끼시고 말을낳으면 늘 이렇게 대답하며 일손을 놓지 않았다 문선명 선생의 죄명은사회 혼란체 있는데 당시 통로는 반동제어 같은 재질이었다 그러니까반동제어 사상을 이제 이야기했다 즉 공산당을 반대했다 김일성 정부체제하에서 그러니까 이제 반동 죄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죠 그는 당시 여러교파로 나뉘어 우매한 백성들을 혼란을 빠뜨렸던 기독교를 정비하고 통일해야한다는 신념으로 진정한 믿음은 가정에서부터라는 처치 운동을전개하였다 그러니까 처치 운동이 1940년대부터 아버님께서이 말씀을설파하던 것이었네요 그리하여 꼭 교회를 나오지 않아도 늘 진실한마음으로 기도와 반성을 열심히 하면 구 독한 기독교 신자가 될 수 있다는것을 설파하였다 초창기에 그의 감동적이고 인간적인설교로 많은 신자들이 모이게 되자 당시의 기존 기독교 단체들로부터시기와 모략을 받게 되어 이단이라는 수모를 받았다 이런 기존 단체들의편견과 공산당의 종교 말살 정책이 야합 급기 아는 집회 도중에 연행되어사회질서 혼란 명목으로 3년의 징역을 언도 받게 되었다 조사를 해 보니까이때 기성교회 목사 지도자 80여명이 아버님을 공동 서명을 해서 기소를했고 아버님께서 식구님들과 같이 말씀을 나누는 자리에서 공산당을이용을 해서 기독교 지도자들이 아버님을 연행 시키게 된 것입니다 계속 이제 이야기하십니다 그는 말도없이 늘 조용한 낯빛으로 일관했는데 일하는 것만큼은 누구와 누구도 그의힘과 열성을 따르지 못했다 아버님은 이런 노동일을 비료 공장에서 하실 때이러한 태도로 대하셨습니다 것이 있어서 그것도 좀 가지고 와 봤는데요 참 아버님께서는 이때 흑남 감옥에서일을 하실 때 노동 시간은 기도 시간이다 정성 시간이다 이렇게 생각을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영적인 안테나를 높이고 하나님의 영계의 협조속에서 평양의 님들의 이름을 한 번씩 하나씩 부르시면서 그것을 하루에 세번씩 반복하셨다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노동 시간을 대했다또한 인류 탕감의 기간을 구원을 위한 그런 시간이었다 그래서 꼭 하나님께불평하지 않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이런 말씀들도 있었습니다그래서 한번 가져와 봤습니다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는 한 번도 목욕을 하지않았던 것이었다 비료 공장에서 일하고 나면 공장 녹수에 몸을 씻게 하는데문선명 선생은 매일 그냥 지나쳤다 하루 종일 눈코 쉴세 없이 일하다보면 비료 가루와 땀과 먼지가 뒤범벅이 되어 끈적거려서 목욕을 안하고는 견딜 수 없었기에 비록 깨끗하지 않은 반 폐수에 공장 용수에남아 목욕을 하였다 후에이 궁금증이 풀렸는데 하루는 용변이 생각나서평소보다 두어시간 가량 일찍 일어났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아 간방 하는암흑이었다 어둠의 눈을 익힐 양으로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한쪽 구석에어둠을 쓰고 앉아 있는 문 선생의 모습이 보였다 김구인가 일찍일어났고요 기도를 했는지 감고 있던 눈을 뜨며 말을 건네왔다 매일 이렇게일찍 일어나시는 보군요 고단하지 않으세요 괜찮소 일찍 일어나는게 몸에베어 더 자려면 온몸이 근질거려 용변을 마치고 돌아오니 문선생은 우통벗고 수건에 물을 묻혀서 냉수욕을 한다 문선생님 춥지 않으십니까감기라도 공장에서 목욕을 안 하는데 이렇게라도 닦아내야 견뎌내지 알고 보니 그는 공장 반패수의 물엔 아예 목욕을 하지 않고 먹는 물을 아껴서 수건에 묻다가새벽마다 온몸을 씻어내는 것이었다 그니까 아버님께서는 하나님을 담는성체라고 생각하시면서 자신의 몸을 항상 여미고 다니셨다 이런 말씀도있지요 그리고 자신의 알몸을 보이시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몸처럼 닦아내시면 훈련도 하셨다라고하셨는데 바로 그런 부분이 여기에 담겨 있는 거 같습니다 어 계속 본문으로 읽도록 하겠습니다 일어나서기도를 마친 후 냉수욕을 하고 또다시 기도를 한 후 식사를 하고 작업에나가니 그의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은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죽음에가까운 환경에서 자신의 체력 관리를 꾸준히 함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지만자신의 종교 의식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 금쪽가 같은 수면 시간을 두시간씩 매일 할해 한다는 것은 신기하게까지 했다 그러면서 또 하나신기한 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신기한 일이 있었는데이 소문은수용소 안에 널리 퍼져 있어서 모르는이가 없었다 소문 에 의하면문선명 선생에게는 신통술이 있다는 것이다 공산당 골수 분자인 간수들은반동 범이나 사회질서 혼란 범들 게는 이유하 것 없이 가혹하게 굴었는데유독 문선명 선생에게 그렇지 않았다 워낙 작업에 열심히 임하고 범칙 전혀하지 않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소문이다 문선명 선생에게는 신통술이있어서 간수들이 감히 학대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간수가 이유 없이문선명 선생을 확대하면 그날 밤 간수의 꿈에 산신령 같은 노인이나타나 간수에게 타 이른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도 또 문선명 선생님을괴롭히면 다시 꿈의 노인이 나타나 간수에게 처벌을 준다는 것이었다그리하여 어떤 악질 간수도 문선명 선생을 괴롭히지 못한다는 것인데 더욱신기한 것은이 사실을 문선명 선생 자신이 미리 알고 전날 자신을 괴롭힌간수에게 간밤의 꿈 이야기를 자신이 꾼 것처럼 소상히 물어보면서확인한다는 것이었다 진짜 신통한 일이었으나 문선명 선생은 이렇다저렇다 소문에 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어쨌든 처음 이곳에 와서 문선명선생을 괴롭히던 관수도 몇 칠 후에는 태도가 돌변하는 것으로 보아서 전혀사실 무근한 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것 같아서 적어 보았다 나는예나 지금이나 기독교도 통일 교인도 아니기 때문에 스스럼 없이 이야기할수 있는데 흑남 감옥에 선구적이고 변함 없는 언행과 인격은 두고두고있기가 어려웠다 대왕 님께서 아버님께서 흑남 감옥에서 비행기 고문을 당하시고 한 번 돌아가시고 두번 돌아가시고 또 세 번째에는 공산당 간수의 서 사실은 나도기독교인이었다 어려워서 나도 그냥 공산당이 된 것이지 나도 하나님을믿는 사람이었다 나도 하나님을 믿고 싶다 이런 간증의 고백을 이제 받아냈다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어저는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런 간증과 아버님의 신앙 이런 영적 역사들이바로 아버님을 보호하시고 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모습이 아니었나라는 그런증거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 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과 아 정말 꼭 나누면 좋겠다 저희들의 입이 아닌어떻게 생각하면 중립적인 재림 주님의 목격 자이신 김인호 할아버지를 통해서이런 자료들이 저희에게 남아 있다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이라고 생각이듭니다 아 그럼 계속 한번 읽어 볼까요 아버님과 관련된 부분이어서 참 한 가지 문선생과 재미있는 추억이있다 당시의 수용소에서는 먹을 것없이 터 없이 부족해서 차입 음식을 옆동료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문선생은자기가 먹어야 할 식사를 나누어서 허기저 못참아 하는 옆 동료들에게나누어 주곤 하는 것이었다이 부분도 저희가 아버님께 들었지요 아버님께서처음에는 이제 세 번을 먹었지만 나중에는 두끼를 새끼라고 생각하고드시고 한끼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훈련을 하셨다 이런 이야기를저희가들은 적이 있습니다이 김인호 할아버지 께서이 부분을 증거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은 내가모친으로부터 차입 받은 미숫가루를 옆 동료들에게 나누어준 일이 있었다 그때문 선생도 아버님도 아마 받으셨던 모양이죠 그때 문선생은 다음 사회에나가면 미숫가루 한 사발에 돼지 한 마리로 환원해서 갚아 주겠노라고말했던 것이었다 줄잡아 계산해 봐도 못 받아도 황소 100마리 이상은받아야 문선생은 오늘날까지 돼지고기 한금 갚지 않았으니 약속을 이행하지않았다는 여담이다 얼핏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갈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부원을 하자면 당시 수용소에서는 먹을 것에 줄여가며 중노동에 시달리던죄수들이 제수들간에 유행하던 말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수용소의 실상을대표한 단편적인 풍자로 감옥 안에서 얻어먹은 콩 하나가 사회에서는 돼지한 마리에 버금 간다는 이야기였다 어이 책이 1985년도 이제 남한에서이분이 이제 나만으로 비난하시는 쓰셨는데요 아 그때 아버님을 찾아오셨다면 어 틀림없이 아버님께서어 황소 열 마리라도 100마리 어 받아야 되는데 이렇게 얘기하셨는데 어 황소 100마리 이상 확실하게 주셨을것 같은데 어네 어떻게 엇갈리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이제 연계에서 아버님을 만나셨으면아버님께서 황소 100마리 이상을 틀림없이 주셨을 거라고 이렇게 생각이듭니다 이제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이것으로 마치고 계십니다 문 선생과는 흥남에서 헤어진 후 오랫동안 소식을몰랐으나 나나 그나 그 생지옥에서 살아 나왔다는 것이 얼마나 큰축복인지 모른다이 이유로요 어 김인호 선생님은 이제 6km 떨어진 흑남봉근 감옥으로 이제 이송되게 되시면서 이제 아버님과의 인연을 이제 끝나게되십니다 저희가 이렇게 쭉 한번 서울로 오는 길이 책에서 나오는 아버님의 부분을 읽어 보았습니다그리고이 책에서 조금 뒷 부분에서요 흑남 감옥에서 이제 탈출하시길 되고아버님과 이제 마지막 만나는 부분이 이제 나오게 됩니다 그 부분은 어짧지만 한번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흑남 감옥에서 막 이렇게 폭격이이루어지지 않습니까 그 폭격이 이루어졌을 때 어 저희가 익히 이제 아버님의 자서전으로 알고 있는 이야기아버님께서 내 주변으로 다 모여라 아버님 주변에 모였던이 수감자들은폭탄을 맞지 않고 살아 남게 되고 폭격이 이루어질 때 어 간수들이이제수들 어이 수감자들을 다 대량 학살하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오늘 그부분은이 책에 담겨진 내용들은 읽지는 않겠지만 여러분들이 꼭이 책을 통해서한번 읽어 보셨으면 하는 어 그런 부분입니다 계속해서 이제 읽어 보도록하겠습니다 아버님께서 남 노무자 수용소를 탈출하시면 그런 부분입니다이 책에서는139페이지 나오는 부분입니다 이들 자치대 말에 의하면 흥남 수용소와봉공 수용소에서는 한날 1시에 제수들 학살이 있었고 모든 행동이 같이 하고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흑남 수용소에서도 제수들이 새벽에 끌러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본궁으로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까 제가말씀드린 대로 이제 폭격이 시작되면서 유엔군의 북쪽으로 다시 진격이시작되면서 이제 흑남 감옥에 있던 제수들 다 이제대 학살하는 것이었죠그리고 그것을 아버님께서 살아남으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 아버님께서는이 625 어 한국 전쟁을바로 성전이다 하나님의 아버님 구출 작전이었다 고까지 말씀을 하시는것이었습니다 만약에 그때 유엔군의 폭격이 시작되지 않았으 면 아버님은그날 다른 그때 학살되었다 어 많은 그 수감자들 럼 이제 학살이 될 수도있었던 것이었죠 그리고 마지막 순간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을 정말 마지막 마지막으로 보셨던순간인데요이 책의 페이지 140페이지 있니다 가수원에 가수들을 한참바라보고 있는데 입구에서 많은 사람들이 걸어 들어오고 있다 흑남 수용소의 동무 들이었다 제가말씀드렸듯이 이분은 이제 6km 떨어진 봉구 수소로 이제 이송이되셨습니다 모두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생존의 기쁨을 나누었다문선명씨의 모습도 보였다 아버님의 조남이 한 번 더 나오네요 흥분과기쁨에서 정신을 차린 우리는 누군가 선창을 따라서 만세삼창을 한 후 먼저죽은 님들의 원통한을 달래주는 마음으로 일동이 묵념을 하였다 이렇게돼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누군가 선 에 따라서 만세 삼창을 했다 이렇게나오지 않습니까 저는이 부분을 보면서 어이 만세삼창을 먼저 선창하는 분이아버님이 아니셨을까 항상 아버님께서 기쁜 일이 있으시거나 아니면 교회의식 축제할 때마다 아버님께서 이렇게 만세삼창을 하시는데 그 만세삼창이기쁨이 바로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생각해 봤더니 아버님께서이 흑남 감옥을 하나님께서 탈출시켜 주셨을 때해방 석방시켜 주셨을 때 그때의 기쁨 을 아버님께서 담으셔서 항상 어만세삼창을 하셨던 것이었구나 그것이 바로 전통의 기원이었다 생각을 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럼 결론으로 한번 여러분들과 이야기해 보고싶은데요 1985년도에 나왔던 김인호 애국 지사님의 서울로 오는 길 정말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제가 오늘 나누지 못했지만 많이 담고 있습니다 어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국에서 독립이 되었어도 다시 어 북한을 소련과중국의 강대국들이 다시 점령하기 시작했고 독립이 된 5년 후에는 한국전쟁 즉 625 동란이 발발했습니다 저도 사실은 책으로만 이제 한국 전쟁625 전쟁을 대했기 때문에 625 전쟁이라고 말을 하고 사진으로 뭐 피난 뭐 이런 것들을 보긴 했지만그래도 그것들이 이렇게 생생하게 사실은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625는 민족 상자의 비극이다 6.25로 몇명이 죽었다 이런 것들은 들었지만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얼마나 비참하게625가 이루어졌고 그리고 강대국들 사이에서이 한국이 겪어야 했던 그모습은 바로 참 아버님께서 제림 메시아로서이 땅에 오시고 겪으셔서 그탕감 노정의 매크로의 부분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도 해 보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어 초등학교 고학년의 자녀들이 있으시다면 아니면 중고등학교 학생들이10대의 자녀들이 있으시다면요 꼭이 책을 한번 어 서울로 오는 길을 한번읽어 보셨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 아버님의 20대의 삶과참 아버님의 20대의 인품이 어떠 하셨는지를 어 많이 궁금하실 텐데바로이 책이 아버님의 그러한 모습들을 여러분들에게 단면적으로 보여 줄 수있는 그런 좋은 소중한 자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천일 국가가어떠한 배경으로 쓰여졌는가라는 것을 정말 소상히 생생하게 저희들에게 알 수 있는 어그런 소중한 자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참 아버님의 흑남 감옥의어 그 옥고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제 3자의 중립적인 재림 주님의 목격자의입장에서이 책을 집필해 주신고 김인호 애국 지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저희 재림 주님의 목격자 어 채널을 다시 한번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리면서 9님 여러분 더 많은 우리 재림주 님의목격자들과 함께하도록 다음 시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12/19
장수남 청년목회자「왕님께서 트럼프대통령과 만났던 얘기」2024년12월15일
2024/12/14
2024년12월12일 윤석열대통령 대국민담화
https://youtu.be/bJfqWC-h0_Q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