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2

📖 흥남감옥안의 성자

「📖 興南監獄안의 聖者」
(韓國語+日語字幕 8分)
https://youtu.be/5Zv43DVrBVw



「💀참기 어려운 拷問」
Unbearable Torture
(韓國語+日語字幕 9分40秒)
https://youtu.be/_VxfkjZt3jc




「☠596이라는 收監番號(수감번호)」
(韓國語 9分)
https://youtu.be/sUQNycPGSeE



「🌄그리고 다시 아침이다」
(韓國語 7分半)



「監獄안의 聖者 文鮮明先生」
(韓日字幕 9分)
↑↓같은 映像(영상)
(日本語字幕 9分)


「神奇(신기)한 일」
A strange thing
(韓日字幕 12分)
↑↓같은 映像(영상)
(日本語字幕 12分)



李姸雅(이연아)님:

天一國(천일국)食口(식구)님 여러분 安寧(안녕)하십니까? 再臨主(재림주)님 目擊者(목격자) 채널에 다시 오신 것을 歡迎(환영)합니다. 

오늘은 特別(특별)한 再臨主(재림주)님의 目擊者(목격자)를 여러분들께 紹介(소개)시켜 드리려고 합니다. 참아버님의 興南(흥남)監獄(감옥)에서 같은 監房(감방)에서 있었던 친구 분이십니다. 오늘은 金仁鎬(김인호) 愛國志士(애국지사)님을 紹介(소개)시켜 드리려고 합니다. 

金仁鎬(김인호) 愛國志士(애국지사)님은 19살의 政治犯(정치범)으로 興南監獄(흥남감옥)에서 28살이 되신 참아버님을 만나시게 됩니다. 사실 興南監獄(흥남감옥)에서는 當時(당시) 25名(이십오명) 정도 한 방을 썼다고 하는데요. 그 興南勞務者收容所(흥남노무자수용소) 그 같은 房(방)에 바로 金仁鎬(김인호) 愛國志士(애국지사)님이 참아버님과 같은 時間(시간)에 같은 空間(공간)에 계셨던 것입니다. 정말 너무나 큰 因緣(인연)이 아 입니까 여기 冊(책)에서 보시면요 어 조금 흐릿하긴 한데 「서울로 오는 길」이라는이 冊(책)에서 金仁鎬(김인호) 著者(저자)가 이렇게 되어 있고 1985年度(년도)에이 冊(책)을 쓰셨습니다. 

그리고이 冊(책) 안에 「興南監獄(흥남감옥) 안의 聖者(성자) 文鮮明(문선명) 先生(선생)」 이렇게 되어 있는 課(과)가 있습니다.  러분들에게 오늘 그 課(과)를 같이 읽으면서 참아버님께서 興南監獄(흥남감옥)에서 어떻게 이 분과 같이 收監生活(수감생활)을 하셨는지 또 어떻게 模範(모범)이 되셨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같이 冊(책)에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天一國食口ヨロブン、安寧ハシムニカ?再臨主の目撃者チャンネルへ再び来られたことを歓迎します。

今日(きょう)は特別な再臨主の目撃者を皆さんに紹介させていただきます。チャムアボニムと興南(フンナム)監獄で同じ監房にいた方です。今日(きょう)は、金仁鎬(キムインホ)愛国志士を紹介します。

19歳で政治犯として投獄された金仁鎬(キムインホ)愛国志士は、興南(フンナム)監獄で28歳になられたチャムアボニムに会われるようになります。興南監獄では当時23人から25人ほど一部屋を使ったそうです。その興南労務者収容所そのような部屋にその同じ部屋に、まさに金仁鎬(キムインホ)愛国志士が、チャムアボニムと同じ時、同じ空間におられたのです。本当にあまりにも大きな縁ではありませんか。

ここで本を見ると、少しぼやけていますが、「ソウルに来る道」という本で「金仁鎬(キムインホ)著者」、このようになっていて、1985年にこの本を書かれておられます。そしてこの本の中に「興南監獄の中の聖者文鮮明先生」、こうなっている小題があります。

今日(きょう)、その小題を皆さんと一緒に読んで,、チャムアボニムが興南(フンナム)監獄でどのようにこの方(かた)といっしょに収監生活をされたのか、またどのように模範囚になったのか、そんな話を一緒に読んでみようと思います。

この本のはじめには、終戦で韓國が日本から解放された1945年8月15日、北韓の平壌(ピョンヤン)の話から始まります。当時、高校1年生だった金仁鎬(キムインホ)さんは、光復(=終戦)の知らせと共に、「万歳」を叫んだと言います。それからその時を回想しながら、この本を書かれました。36年間、どれほどたくさんの闘志が血気と命を捧げたのか?また、どれほど多くの憂国志士が祖国光復の切ない思いを抱いて遠く離れた他国で目を閉じただろうか。この金仁鎬(キムインホ)さんは三代に渡って独立運動をされました。そして、韓国が解放されて日本が去った後にも、北韓で反共運動を続けてされた方(かた)でした。

ここで回想されたことは、民族の解放という喜びもつかのま、38度線の北にはソ連軍が陣頭して来たと書いておられます。だからすでに北側には日本が出た後の空白の権力をソ連と中国軍が再びつかみながら、強大国がこうして韓国の南側に入って来たのです。最初は北韓を保護してくれるふりをしていたロシア軍が、しばらくして夜になると手当たりしだい泥棒をし、強盗し、平壌(ピョンヤン)のあちこちでは女性たちが強姦に遭(あ)う、そのような事件も続いたと書かれています。

そんな中で金仁鎬(キムインホ)愛国志士は、金日成(キミルソン)政府とロシアの合作でだんだん共産化されていく北韓を見ながら、「ああ、私は若い学生だが、じっとしていることができない」このように考えながら、学生の身ではありますが、何かをするべきだと思われました。

だから10人の友人と「朝陽會(チョヤンヘ)」、だから、祖国の太陽というそんな小さなそのような団体を作ってチラシ5,000枚を撮り、反共運動をその幼い年で友達10人と始めたと言います。独立軍の祖父と父の血統をしっかり引き継いだ方(かた)だったようです。

金仁鎬さんは2015年、韓国報勲処(かんこくほうくんしょ)から愛国者として表彰状を受けた方でした。こうして金仁鎬(キムインホ)ハラボジが経験した記録は、私達、統一教会人には非常に大切な資料になると思います。

チャムアボニムが最も悲惨で最も難しく辛い場におられた時である興南(フンナム)監獄に、その時の生々しい事件を本当に良い筆力(ひつりょく)で私達に教えて下さるからです。だから私達は金仁鎬(キムインホ)ハラボジが経験したこれらのことを通して、チャムアボニムが経験されたことを推測してみ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そのように見目(みめ)良いチャムアボニムが最も低く悲惨な場におられたとき、どんな人格を見せて下さったのかを、愛国志士の書かれた本、「獄中の聖者文鮮明」を通して一度皆さんと見てみたいと思います。

この時、このように「朝陽會(チョヤンヘ)」を作って反共運動を始めたと言われましたね。ところで、そのように反共運動をして、ついに発覚し、捕まったそうです。それで、当時、平壌(ピョンヤン)に住んでおられましたが、自分と一緒に10人の友達は平壌内務所に連れて行かれたということです。それから様々な拷問に遭った内容が出てきます。

チャムアボニムが1946年度8月から11月までの3ヵ月間、大同(デドン)保安署に捕まって入っておられたことが私達に知らされていますね。その時の罪目は南韓國のスパイ、そして社会紊乱罪(びんらんざい)。共産社会では福音を伝播し、反共思想を話せば、それが社会紊乱罪(びんらんざい)になりますね。そのように、アボニムが平壌(ピョンヤン)大同(デドン)保安署に入られた時、似たような時期に、金仁鎬(キムインホ)さんも平壌内務所に引っ張られて行き、あらゆる拷問を受ける話が出てきます。チャムアボニムがいろいろな拷問を受けられたことを私共が何度も聞いていますが、チャムアボニムが平壌(ピョンヤン)大同(デドン)保安署に引っ張って行かれ、3ヵ月後に出て来られたとき、瀕死状態で無罪で釈放されました。

しかし、アボニムが出て来られた時、余りにも拷問がひどかったので、10日の間、ずっと肺から血を流されるほど状態が悪かったし、当時の人々が、アボニムをどこに埋めなければならないかを相談するほど、状態がとても悪かったと回想したことを歴史の中から私達が聞いて知っています。

金仁鎬(キムインホ)さんも平壌という同じ都市で、もちろん他の場所ではありますが、様々な拷問を受けた話の部分があります。その部分を一度皆さんと読んで見たいと思います。

この本は絶版されたため、原本を手に入れられず、こうしてコピーを私が今日(きょう)は持ってきました。本の全体をずっと読んでみて、本当にたくさんの感動を受けました。

「耐えられない拷問」という小題の中をいくつか読んでみます。いろいろな拷問方式がありましたが、拷問方法の中ではまず、一番目に、「水を飲ませる拷問」というのがありますが、20分以上続く拷問となっていますが、鼻と口にホースを連結して息が出来ないようにする拷問と言います。この拷問は気を失わせた後、意識がはっきりしてない時、この拷問を加えると言われ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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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監獄(감옥)안의 聖者(성자) 文鮮明先生(문선명선생)」

金仁鎬(김인호)先生:

反動思想犯(반동사상범) 두 명과 3명의 雜犯(잡범) 20명씩 모아 놓았는데 이 雜犯雜犯中(잡범중)에 프락치노릇을 하는 자가 각 방마다 3명에서 4명씩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적게는 밥 한 덩이를 더 얻어먹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자유럽게 차압을 받을 수 있거나 赦免(사면)의 혜택을 받는 것을 누린다. 

시일이 흐른 후에 아예 「동무의 발언 내용을 矯導官(교도관)에 보고하겠으리요」 이런 식으로 터놓고 거들먹거리기까지 하였으니 우리 반동 在囚(재수)들은 이중에 옥고를 치룰 수밖에 없었다. 

점심시간에 오락회 때에나 간수들의 눈치를 살피며 소곤소곤 몇 마디 주고나 받는 정도이니 어떤 때는 입에서 단내가 난 듣다. 

李姸雅王妃:

아버님께서도 興南監獄(흥남감옥)에 계실 때는 거의 말씀을 이제 안 하신 걸로 저희가 알고 있었는데,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아버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나와 한 방에 있던 분 중에서는 牧師(목사)인 金珍洙(김진수)氏와 社會混亂罪(사회혼란죄)로 들어온 文鮮明(문선명)氏가 있다. 

李姸雅王妃:

이제 아버님 존함이 이제 나오기 시작합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두 사람은 각자 독실한 신앙체계를 가지고 있었고, 범인으로는 하기 힘 절도 있는 생활과 모범적인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시 나이가 어렸던 내가 감방안에서 난장판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분들의 模範(모범)과 啓導(계도)가 있었던 까닭이라는 생각이 든다. 

李姸雅王妃:

그러면서 먼저 이제 金珍洙(김진수)牧師(목사)님이라는 분을 소개하십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金珍洙(김진수)牧師(목사)는 平北(평북) 宣川(선천) 출신으로 崇實(숭실)專門大學敎(전문대학교)에서 졸업한 성직에 바친 이래 오늘날까지 日帝(일제) 때부터 독립운동을 하며 감옥에 드나들었으며 오늘날은 共産黨(공산당)을 반대하다 감옥살이를 하는 분이다 독립운동을 하다 日帝(일제) 때 감옥살이를 한 것이 12차례에 이르면 나중엔 日警(일경)들의 분노가 하늘에 찔러 경찰견 우리들의 셰퍼드들과 갇혀 개에 물어 뜯기고는 했는데 그래도 너희들이 일본 개보다는 훨씬 낫구 하며 잠자코 앉아 있었다는 일화도 있었다. 

시대가 바뀌어 共産黨(공산당) 정권을 집권했을 때에도 金牧師는 朝鮮基督敎協議會(조선기독교협의회) 會長(회장)을 지내던 중 집회 시에 신자들에게 불온한 反共思想(반공사상)을 주입했다는 죄로 수감이 되어 또 다시 13번째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金牧師는 전혀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적이 없었으나 감방안에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李姸雅王妃:

그래서 이런 金牧師(김목사)님이라는 분도 계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10대 후반의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이렇게 관찰하고 평가하는 판단력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러시면서 아버님에 대해서 쓰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과 함께 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監獄(감옥)안의 聖者(성자) 文鮮明先生(문선명선생)」. 그렇게 그 챕터에 제목이 되어 있습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또 한 사람 文鮮明先生(문선명선생). 역시 남다른 면이 많았다. 그는 항상 곧은 자세로 있었는데 누구라도 피곤에 지쳐 서로 기대고 벽에 비스듬히 기대서 앉는게 보통인데 文鮮明先生(문선명선생)만은 항상 正坐(정자)를 하고 있어 앉음과 잠자리에 누운 태도가 분명했다. 

그는 공산당 골수 간수들까지도 인정하는 모범수였는데, 그 이유는 한치의 범칙도 용납하지 않았으며 그 건전한 체격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작업을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작업하면 동료들이 그만큼 수고를 덜 것이 아니겠소.」 주위에서 몸을 아끼시라고 말을 낮추면 늘 이렇게 대답하며 일손을 놓지 않았다. 文鮮明 先生의 죄명은 社會混亂罪(사회혼란죄)였는데 당시 통내로는 反動罪(반동죄)와 거의 같은 죄질이었다. 

李姸雅王妃:

그러니까 反動罪(반동죄)인 것은 이제 反共思想(반공사상)을 이제 이야기했다. 즉 공산당을 반대했다. 金日成 정부 체제 하에서. 그러니까 이제 반동죄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죠. 


金仁鎬(김인호)先生:

그는 당시 여러 교파로 나뉘어 우매한 백성들을 혼란을 빠뜨렸던 기독교를 정비하고 통일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진정한 믿음은 가정에서로부터라는 홈처치 운동을 전개하였다. 

李姸雅王妃:

그러니까 홈처치 운동이 1940년 아버님께서이 말씀을 설파하셨던 것이었네요. 

金仁鎬(김인호)先生:

그리하여 꼭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늘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와 반성을 열심히 하면 누구든 돈독한 기독교 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설파하였다. 초창기에 그의 감동적이고 인간적인 설교로 많은 신자들이 모이게 되자 당시의 기존 기독교 단체들로부터 시기와 모략을 받게 되어 이단이라는 수모를 이런 기존 단체들의 편견과 공산당의 종교 말살 정책이 야합되어 급기야는 집회 도중에 연행되어 사회질서 혼란죄라는 명목으로 3年의 징역을 언도 받게 되었다. 

李姸雅王妃:

조사를 해보니까 이때 기성교회 목사 지도자 80여 명이 아버님을 공동 서명을 해서 기소를 했고, 아버님께서 식구님들과 같이 말씀을 나누는 자리에서 공산당을 이용을 해서 기독교 지도자들이 아버님을 연행시키게 된 것입니다. 계속 이제 이야기하십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그는 말도 없이 늘 조용한 낯빛으로 일관 했는데 일하는 것만큼은 누구도 그의 힘과 열성을 따르지 못했다. 

李姸雅王妃:

아버님은 이런 노동일을 비료 공장에서 하실 이러한 태도로 대하셨다는 것이 있어서 그것도 좀 가지고 와 봤는데요. 

참 아버님께서는 이때 흥남 감옥에서 일을 하실 때 노동 시간은 기도 시간이다 정성 시간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영적인 안테나를 높이고 하나님의 영계에 협조 속에서 평양에 식구님들의 이름을 한 번씩 하나씩 부르시면서 그것을 하루에 세 번씩 반복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노동 시간을 대했다 또한 인류 탕감의 기간을 구원을 위한 그런 시간이었다. 그래서 꼭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이런 말씀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가져와봤습니다.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는 한 번도 목욕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비료공장에서 일하고 나면 공장 육수에 몸을 씻게 하는데 文鮮明先生(문선명선생)은 매일 그냥 지나쳤다. 

하루 종일 눈코 쉴새없이 일하다 보면 비료가루와 땀과 먼지가 뒤범벅이 되어 끈적거려서 목욕을 안 하고는 견딜 수 없었기에 비록 깨끗하지 않은 반 폐수에 공장 용수에 나마 목욕을 하였다. 

후에 이 궁금증이 풀렸는데 하루는 용변이 생각나서 평소보다 두어 시간 가량 일찍 일어났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아 감방안은 어둠의 눈을 익힐 양으로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한쪽 구석에 어둠을 쓰고 앉아 있는 文先生(문선생)의 모습이 보였다. 「金君(김군)인가? 일찍 일어났구려.」 기도를 했는지 감고 있던 눈을 뜨며 말을 건네 왔다. 

「매일 이렇게 일찍 일어나시나 보군요 고단하지 않으세요?」 

「괜찮소. 일찍 일어나는게 몸에 배어 더 자려면 온몸이 근질거려요.」 

용변을 마치고 돌아오니 文先生(문선생)은 웃통을 벗고 수건에 물을 묻혀서 냉수욕을 한다. 

「文先生(문선생)님 춥지 않으십니까? 감기라도 공장에서 목욕을 안 하는데.」 

「이렇게라도 닦아내야 견뎌내지요.」 

알고 보니 그는 공장 반 폐수의 물엔 아예 목욕을 하지 않고 먹는 물을 아껴서 수건에 묻혀다가 새벽마다 온몸을 씻어내는 것이었다. 

李姸雅王妃:

그러니까 아버님께서는 하나님을 닮는 성체라고 생각하시면서 자신의 몸을 항상 여미고 다니셨다 이런 말씀도 있지요. 그리고 자신의 알몸을 보이시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몸처럼 닦아내시는 훈련도 하셨다라고 하셨는데 바로 그런 부분이 여기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계속 본문으로 읽도록 하겠습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일어나서 기도를 마친 후 냉수욕을 하고 또 다시 기도를 한 후 식사를 하고 작업에 나가 그의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은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죽음에 가까운 환경에서 자신의 체력 관리를 꾸준히 함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지만, 자신의 종교 의식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 금쪽과도 같은 수면시간을 2시간씩 매일 할애한다는 것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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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奇(신기)한 일」

李姸雅王妃:

신기한 일  그러면서 또 하나 신기한 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한 가지 신기한 일이 있었는데 이 소문은 수용소 안에 널리 퍼져 있어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文鮮明先生(문선명선생)에게는 神通術(신통술)이 있다는 것이다. 

공산당 골수분자인 간수들은 반동범이나 사회질서혼란범들에게는 이유할 것 없이 가혹하게 굴었는데 유독 文鮮明先生에게만 그렇지 않았다. 워낙 작업의 열심히 임하고 범칙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소문이다. 文鮮明先生에게는 神通術(신통술)이 있어서 간수들이 감히 학대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간수가 이유 없이 文鮮明先生을 학대하면, 그날 밤 간수의 꿈에 山神靈(산신령) 같은 노인이 나타나 간수에게 타이른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도 또 文鮮明先生님을 괴롭히면 다시 꿈에 노인이 나타나 간수에게 처벌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어떤 악질 간수라도 文鮮明先生을 괴롭히지 못한다는 것인데, 더욱 신기한 것은 이 사실을 文鮮明先生 자신이 미리 알고 전날 자신을 괴롭힌 간수에게 간밤에 꿈 이야기를 자신이 꾼 것처럼 소상이 물어보면서 확인한다는 것이었다. 진짜 신통한 일이었으나 文鮮明先生은 이렇다 저렇다 소문에 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어쨌든 처음 이곳에 와서 文鮮明先生을 괴롭히던 관수들도 며칠 후에는 태도가 돌변하는 것으로 보아서 전혀 사실무근한 소문이라고 만은 할 수 없는 것 같아서 적어 보았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기독교도 통일교인도 아니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데 興南監獄(흥남감옥)에 선구적이고 변함없는 언행과 인격은 두고두고 있기가 어려웠다. 

李姸雅王妃:

아버님께서 興南監獄(흥남감옥)에서 비행기 고문을 당하시고 공산당 간수의 입에서 사실은 나도 기독교인이었는데 살기가 어려워서 나도 그냥 공산당이 된 것이지 나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다. 나도 하나님을 믿고 싶다. 이런 간증의 고백을 받아냈다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런 간증과 아버님의 신앙, 이런 영적 역사들이 바로 아버님을 보호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모습이 아니었나라는 그런 증거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과 정말 꼭 나누면 좋겠다 저희들의 입이 아닌 어떻게 생각하면 중립적인 再臨主(재림주)님의 목격자이신 金仁鎬(김인호) 할아버지를 통해서 이런 자료들이 저희에게 남아 있다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럼 계속 한번 읽어 볼까요? 아버님과 관련된 부분이어서요.

金仁鎬(김인호)先生:

참! 한 가지 文先生과 재미있는 추억이 있다. 당시의 수용소에서는 먹을 것 없이 것이 턱없이 부족해서 차입된 음식을 옆 동료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文先生은 자기가 먹어야 할 식사를 나누어서 허기져 못 참아 하는옆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곤 하는 것이었다. 

李姸雅王妃:

이 부분도 저희가 아버님께 들었지요. 아버님께서 처음에는 이제 세 번을 먹었지만 나중에는 두 끼를 새끼라고 생각하고 드시고 한 끼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훈련을 하셨다, 이런 이야기를 저희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金仁鎬(김인호)할아버지께서 이 부분을 증거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그런데 한번은 내가 母親(모친)으로부터 差入(차입)받은  옆 동료들에게 나누어 준 일이 있었다. 

李姸雅王妃:

그때 文先生도 아버님도 아마 받으셨던 모양이죠. 

金仁鎬(김인호)先生:

그때 文先生은 다음 사회에 나가면 미숫가루 한 사발에 돼지 한 마리로 환원해서 갚아 주겠노라고 말했던 것이었다. 

줄잡아 계산해 보아도 못 받아도 황소 100마리 이상은 받아야겠는데 文先生은 오늘날까지 돼지고기 한 근 갚지 않았으니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여담이다. 

얼핏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갈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부언을 하자면, 당시 수용소에서는 먹을 것에 줄여가며 중노동에 시달리던 재수들간의 유행하던 말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수용소의 실상을 대표한 단편적인 풍자로 감옥 안에서 얻어먹은 콩 하나가 사회에서는 돼지 한 마리에 버금간다는 이야기였다. 

李姸雅王妃:

책이 1985년도 남한에서 이분이 이제 남한으로 피난하시고 쓰셨는데 아 그때 아버님을 찾아오셨다면 틀림없이 아버님께서 황소 열말이라도 100마리 닫아야 되는데 이렇게 얘기하셨는데 황소 100마리 이상 확실하게 주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엇갈리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이제 영계에서 아버님을 만나셨으면 아버님께서 황소 100마리 이상을 틀림없이 주셨을 거라고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이제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이것을 마치고 계십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文先生과는 興南(흥남)에서 헤어진 후 오랫동안 소식을 몰랐으나 나나 그나 그 生地獄(생지옥)에서 살아 나왔다는 것이 얼마나 큰 祝福(축복)인지 모른다. 

李姸雅王妃:

이 이유로 金仁鎬(김인호)先生님은 이제 6키로 떨어진 興南本宮監獄(흥남본궁감옥)으로 이제 이송되게 되시면서 이제 아버님과의 인연은 이제 끝나게 되십니다. 

저희가 이렇게 쭉 한번 「서울로 오는 길」 이 책에서 아버님의 부분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조금 뒷부분에서 興南監獄(흥남감옥)에서 탈출하시게 되고 아버님과 이제 마지막 만나는 부분이 이제 나오게 됩니다. 그 부분은 짧지만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興南監獄(흥남감옥)에서 막 이렇게 폭격이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그 폭격이 이루어졌을 때 저희가 익히 이제 아버님의 자서전으로부터 알고 있는 이야기, 아버님께서「내 주변으로 다 모여라」 아버님 주변에 모였던 수감자들은 폭탄을 맞지 않고 살아 남게 되고 폭격이 이루어질 때 간수들이 수감자들을 다 대량을 학살하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오늘 그 부분은이 책의 담겨진 내용들은 읽지는 않겠지만 여러분들이 꼭이 책을 통해서 한번 읽어 보셨으면 하는 그런 부분입니다. 계속해서 이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버님께서 興南(흥남)노무자 수용소를 탈출하시고 나오시는 그런 부분입니다. 이 책에서는 139페이지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이들 자치대의 말에 의하면 興南(흥남)收容所(수용소)와 本宮(본궁)收容所(수용소)에서는 한날 한시에 재수들의 학살이 있었고 모든 행동이 같이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興南收容所(흥남수용소)에서도 재수들이 새벽에 끌려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本宮(본궁)으로 연락 했다는 것이다. 

李姸雅王妃:

그러니까 아까 제가 말씀드린 대로 이제 폭격이 시작되면서 UN軍이 북쪽으로 다시 진격이 시작되면서 이제 興南監獄(흥남감옥)에 있던 죄수들을 다 대학살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그것을 아버님께서 살아남으신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님께서는 이 6.25 韓國戰爭(한국전쟁)을 바로 聖戰(성전)이다. 하나님의 아버님 救出作戰(구출작전)이었다 라고까지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 때 UN軍의 폭격이 시작되지 않았으면 아버님은 그날 다른 그때 많은 그 수감자들처럼 학살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었죠. 그리고 마지막 순간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을 정말 마지막 마지막으로 보셨던 순간인데요. 이 책의 페이지 140페이지입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입구에서 많은 사람들이 걸어 들어오고 있다. 興南收容所(흥남수용소)의 동무들이었다. 

李姸雅王妃:

제가 말씀드렸듯이 이분은 이제 6킬로가 떨어진 本宮收容所(본궁수용소)로 이제 이송이 되셨었습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모두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생존의 기쁨을 나누었다. 文鮮明氏의 모습도 보였다. 

李姸雅王妃:

아버님의 존함이 한 번 더 나오네요. 

金仁鎬(김인호)先生:

흥분과 기쁨에서 정신을 차린 우리는 누군가 선창을 따라서 萬歲三唱(만세삼창)을 한 후 먼저 죽은님들의 원통한 넋을 달래주는 마음으로 일동이 黙念(묵념)을 하였다. 

李姸雅王妃:

이렇게 돼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누군가 선창에 따라서 萬歲三唱(만세삼창)을 했다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이 萬歲三唱을 먼저 선창하신 분이 아버님이 아니셨을까? 항상 아버님께서 기쁜 일이 있으시거나 아니면 교회 의식 축제 할 때마다 아버님께서 이렇게 萬歲三唱을 하시는데 그 萬歲三唱의 기쁨이 바로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생각해 봤더니 

아버님께서 이 興南監獄(흥남감옥)을 하나님께서 탈출시켜 주셨을 때, 解放釋放(해방석방)시켜 주셨을 때 그때의 기쁨을 아버님께서 담하셔서 항상 萬歲三唱을 하셨던 것이었구나. 그것이 바로 전통의 기원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런 결론으로 한번 여러분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은데요. 1985년도에 나왔던 金仁鎬愛國志士(김인호애국지사)님의「서울로 오는 길」 정말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제가 오늘 나누지 못했지만 많이 담고 있습니다. 

韓國(한국)은 日本(일본)의 植民地國(식민지국)에서 獨立(독립)이 되었어도 다시 北韓(북한)을 蘇聯(소련)과 中國(중국)의 강대국들이 다시 점령하기 시작했고, 獨立(독립)이 된 5年後에는 韓國戰爭(한국전쟁), 즉 6.25動亂(육이오동란)이 발발했습니다.

저도 사실은 책으로만 이제 韓國戰爭(한국전쟁) 6.25戰爭을 배웠기 때문에 6.25戰爭이라고 말을 하고 사진으로 뭐 피난 뭐 이런 것들을 보긴 했지만 그래도 그것들이 이렇게 생생하게 사실은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6.25는 民族相殘(민족상잔)을 비극이다. 6.25로 몇명이 죽었다. 이런 것들은 들었지만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얼마나 비참하게 6.25가 이루어졌고, 그리고 강대국들 사이에서이 한국이 겪어야 했던 그 모습은 바로 참 아버님께서 再臨(재림)메시아로서 이 땅에 오시고 닦으셔야 했던 그 蕩減路程(탕감노정)에 매크로의 부분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고학년에 子女들이 있으시다면 10대의 子女들이 있으시다면 꼭 이 책을 한번 「서울로 오는 길」을 한번 읽어 보셨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아버님이 20대의 삶과 참아버님의 20대의 人品(인품)이 어떠하셨는지를 많이 궁금하실 텐데 바로이 책이 아버님의 그러한 모습들을 여러분들에게 단면적으로나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좋은 소중한 자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天一國国歌(천일국국가)가 어떠한 배경으로 쓰여졌는가  라는 것을 정말 소상히 생생하게 저희들에게 알 수 있는 그런 소중한 자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참 아버님의 興南監獄(흥남감옥)에 그 獄苦(옥고)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제3자의 중립적인 再臨主(재림주)님의 목격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집필해 주신 고 金仁鎬(김인호)愛國志士(애국지사)님께 다시 한번 感謝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저희 再臨主님의 목격자 채널을 다시 한번 함께 해 주셔서 感謝드리면서 天一國食口님 여러분더 많은 우리 再臨主님 목격자들과 함께 함으로 다음 시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感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