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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年5月31日
📰朝鮮日報(조선일보) 인터뷰
월드 피스 프리덤 유나이티드
安在喆(안재철)代表
https://youtu.be/59HjCihsFDU
[아무튼,주말]
[박돈규 기자의 2사만루]
'6·25 사진전' 20년
안재철 WPF 대표의 항해기
[とにかく週末]
「625(ユギオ)写真展」20年
安在喆(アンジェチョル)WPF代表の航海記
廃墟から素手で起き立った国…
存在自体が「希望のともしび」
20년 동안 ‘6·25 사진전’을 이어온 안재철 ‘월드피스 프리덤 유나이티드(WPF)’ 대표가 지난 22일 서울 태평로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전시 중인 사진 한 장을 들고 서 있다.
20年間「625(ユギオ)韓国戦争写真展」を続けてきた安在喆(アンジェチョル)「ワールドピース・フリーダム・ユナイテッド(WPF)」代表が去る(2025年5月)22日、ソウル太平路(テピョンノ)ソウル ファイナンス センターの前で展示中の写真一枚を持って立っている。
1950년 11월 철저히 파괴된 서울 광화문 근처의 폐허 속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고 애쓰는 여인들과 아이들의 모습. 6·25 때 파병한 16국을 포함해 우리나라를 도운 67국의 국기도 함께 전시한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1950年11月、徹底的に破壊されたソウル光化門(クァンファムン)近くの廃墟の中で使えるものを探そうとする女性たちと子供たちの姿。
조국을 지키겠다며 총을 든 학도병들, 판자촌에서 철모를 물통으로 쓰며 빨래하는 여인들, 북한에서 미군을 따라나선 피란민들…. 서울 태평로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6·25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흑백사진들이 행인의 눈길을 붙잡는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1년 365일 익숙한 풍경. 벌써 20년이 됐다.
이 사진전의 긴 항해 이야기는 2001년 10월 미국 뉴저지주 바오로 수도원에서 출발한다. 주인공은 평범한 사업가 안재철(69)씨. 그는 6·25전쟁 중 기적과 같은 일을 경험했다는 매리너스 수사(修士)의 장례미사에 참석했다가 큰 충격을 받는다. 1954년 가톨릭에 귀의하기 전 이름은 레너드 라루. 북한 피란민 1만4000명을 구출한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이었다.
祖国を守ろうとして銃を持った学徒兵たち、長屋で鉄帽をバケツとして使って洗濯する女性たち、北朝鮮から米軍について来た避難民たち…。 ソウル太平路(テピョンノ)ソウル ファイナンス センターの前で「625(ユギオ)写真展」が開かれている。白黒写真が行き交う人の目を引く。雪が降ろうが、雨が降ろうが、1年365日おなじみの風景。すでに20年になった。
この写真展の長い航海物語は、2001年10月に米国ニュージャージー州バオロ修道院から出発する。主人公は平凡な実業家、安在喆(アンジェチョル)氏(69)。マリナーズ修道士の葬儀ミサに出席し、大きな衝撃を受ける。
1956년의 매리너스 수사. 가톨릭에 귀의하기 전엔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북한 피란민 1만4000명을 구출한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이었다.
1954年、カトリック修道士になる前の名前はレナード・ラル。北朝鮮の避難民1万4千人を救出した貨物船「メレディス ビクトリー」号の船長だった。
“아내가 가자고 해서 따라나선 길이었습니다. 흥남철수작전과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인도주의적 구조 활동을 그날 처음 접했어요. 감동을 받았고, 부끄러웠습니다. 저처럼 잘 모르거나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6·25 때 희생된 유엔군을 기억하면서 그들의 업적을 알리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妻が行きましょうと言ったので葬儀に出たのです。そして、興南(フンナム)撤収作戦とメレディス・ビクトリー号の人道主義的構造活動をその日初めて知りました。感動を受けながら、それを知らなかった私が恥ずかしかったです。私のようによく分からないか無関心な人々に、韓国動乱で犠牲になった国連軍を思いながら、彼らの業績を知らせることをしたかったのです」
🖋️안씨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등을 뒤져 자료부터 모았다. 2005년 서울에서 ‘6·25 사진전’을 시작했다. 파병한 16국을 포함해 우리나라를 도운 67국의 국기도 함께 전시한다. 20년 동안 부산·인천·수원·대전 등 여러 도시에서, 때로는 동시다발로 이 사진전을 열었다. 미국 워싱턴 DC, 버지니아 맥아더기념관, 하와이 등 해외에서도 사진전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安氏は米国国立文書保管所などを訪れ、資料から集めた。 2005年ソウルで「625(ユギオ)韓国戦争写真展」を始めた。派兵した16カ国を含め、韓国を助けた6カ国の国旗も一緒に展示した。 20年間釜山(プサン)・仁川(インチョン)・水原(スウォン)・大田(テジョン)など様々な都市で、時には同時にこの写真展を開いた。米国ワシントンDC、バージニア、マッカーサー記念館、ハワイなど海外でも写真展をすることにより、感謝の気持ちを伝えた。
명함에는 ‘월드피스 프리덤 유나이티드(WPF)’ 대표라고 적혀 있었다. 지난 22일 전시회 현장에서 만난 안재철 대표는 “낯선 땅에서 피를 흘린 청년들의 헌신을 기리며 빚을 갚고 싶었다”며 “대한민국의 번영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최빈국 국민이 노력하고 똘똘 뭉쳐 이룬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종종 망각하지만 세계에서 대한민국은 존재 자체가 희망의 등불입니다.”
名刺には「ワールド ピース フリーダム ユナイテッド(WPF)」代表と書かれていた。去る(2025年5月)22日展示会現場で会った安在喆(アンジェチョル)代表は、次のように言った。
「見知らぬ土地で血を流した青年達の献身を称えて恩を返したかった」
「大韓民国の繁栄は、戦争で廃墟になった最貧国の国民が一つになって成したこと」
「私達はしばしば忘れますが、世界では大韓民国は存在自体が希望の灯りです」。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때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북한 피란민 1만4000명을 구출했다. /WPF
1950年12月、興南(フンナム)撤収の際「メレディス・ビクトリー」号は北朝鮮の避難民1万4千人を救出した。
흥남철수와 ‘메러디스 빅토리’호
興南撤収と「メレディス ビクトリー」号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1950년 12월 22일 흥남항에서 피란민 1만4000명을 태우고 12월 25일 거제도에 도착했다. 라루 선장은 그들이 모두 하선한 날 일기장에 “노아의 방주 이후 가장 독창적인 일 아닐까”라고 적었다. 항해 중 5명 탄생, 사망자 없음. 1만4005명 무사히 상륙.
メレディス・ビクトリー号は1950年12月22日、興南港で避難民1万4000人を乗せて、12月25日に巨済島(コジェド)に到着した。ラルー船長は、彼らが避難民すべてが下船(げせん)した日の日記帳に、「ノアの箱舟以後最も独創的なことではないか」と書いた。航海中5人の赤ちゃんが船内で誕生、死者無し。 1万4005人無事に上陸した。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하지요.
クリスマスの奇跡
“원산마저 중공군에 넘어가 퇴로가 끊겼고, 미군과 국군은 함포의 도움을 받아 바다로 탈출해야 했습니다. 군수 물자를 버리고, 전혀 모르는 적국의 피란민, 살아야 한다는 의지로 몰려든 사람들을 태웠지요. 저는 ‘흥남 생명 구출 작전’이라고 부릅니다.”
「元山(ウォンサン)さえ中共軍に占領され退路が切れ、米軍と国軍は艦砲の助けを借りて海に脱出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米軍は軍需物資を捨てて、敵国から逃げて来た避難民を船に乗せやったのです。私はこれを『興南(フンナム)生命救出作戦』と呼びます。」
「メレディス ビクトリー」号に乗って北朝鮮を脱出して巨済島で下船した避難民達が船員に書いた感謝文
🎤장례미사 얘기를 좀 더 들려주세요.
葬儀ミサの話をもっと教えて下さい。
👨🏫“그 장례미사가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당시 한국으로 건축 자재를 수출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어요.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죠. 그런데 6·25에 대해선, 언제 터져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다가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북진했지만 중공군 개입으로 후퇴해 38선에서 싸우다 휴전했다는 정도만 알았던 거예요.”
-메러디스 빅토리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습니까.
“6·25의 진짜 역사에 무지하다는 걸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웠고요. 제가 하나에 꽂히면 몰두하는 성격입니다.”
「その葬儀ミサが私の人生を変えました。当時、私は韓国に建築資材を輸出する事業をしていました。歴史にも関心がありました。ところが625韓国戦争については、いつ飛び出して洛東江(ナクトンガン)戦線まで押され、仁川上陸作戦成功後、北進したが中共軍の介入で後退した⋯です。625(ユギオ)韓国戦争に無知だということを悟って大きな衝撃を受けました。韓国人として恥ずかしかったです。」
🎤평생 이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나요?
生涯、この仕事をすると決心しましたか?
👨🏫“아뇨. 누가 이런 걸 평생 합니까? 의협심이 강하지 않았고 그런 생각을 안 했어요. 비영리단체를 설립해 라루 선장 추모비나 추모 공원을 만들겠다는 정도였습니다.”
「いや、誰がこんなことを一生しますか?それほどまでは考えませんでした。非営利団体を作って、ラルー船長の追慕碑とか追慕公園を造ろうか⋯という程度で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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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기네스북에 등재한 세계 최고 기록
2004年ギネスブックに載った世界最高記録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しかし、どうしてここまで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か?
“2004년에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구출한 1만4000명은 배 한 척으로 가장 많은 생명을 구출한 세계기록이다’를 기네스북에 올렸습니다. 그럼 사람들이 열광해서 후원할 줄 알았어요(웃음). 아니더군요. 2005년 거리 사진전을 시작하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상급 선원 로버트 러니를 초청해 체험담을 들려줬지만 언론이 WPF나 저를 주목하진 않았습니다.”
-오기가 생겼나요?
“자존심이 상해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었죠. 더 넓고 깊게 알릴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흥남 철수로 시작해 장진호 전투를 들여다봤고 나중엔 6·25전쟁 전체를 파헤쳤지요. 2008년엔 ‘생명의 항해’를 출간했고요.”
「2004年に「メレディス・ビクトリー号が救出した1万4千人は船一隻で最も多くの命を救出した世界記録である」という記録をギネスブックに認定してもらいました。有志を招待して体験談を聞いてくれましたが、マスコミが注目してくれませんでした。私は自尊心が損なわれ、深みに陥る気持ちでした。より広く深く知らせる方法を模索しました。」
🎤절판된 그 책을 도서관에서 읽었는데 사진과 자료를 중심으로 생생하게 기록했더군요.
その本を図書館で読みましたが、写真と資料を中心の生々しい記録でしたね。
👨🏫“확보한 사진은 5만장이 넘어요. 전부 고화질입니다. 오리지널 캡션, 즉 구체적 설명이 없는 사진은 한 장도 없어요. 국내에 돌아다니는 6·25 사진 중엔 엉뚱한 게 많거든요.”
「確保した写真は5万枚を超えています。すべて高画質です。オリジナル キャプション、つまり具体的な説明がない写真は一枚もありません。
🖋️안재철 대표는 수 차례 해외 전시를 포함해 국내외에서 5500회라는 전시회 기록을 쌓아가고 있다. 생업을 포기하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생명 구출과 휴머니즘의 진정한 의미를 알리고,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대한민국 이야기를 통해 세계의 어려운 나라에 희망과 비전을 주는 메시지를 전해 왔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安在喆(アンジェチョル)代表は国内外で5500回という展示会記録を積んだ。本業をあきらめ、メレディス・ビクトリー号の生命救出とヒューマニズムの本当の意味を知らせ、戦争の廃墟を乗り越えて立ち上がった大韓民国の話を通じて、世界の貧しい国に希望とビジョンを与えるメッセージを伝えてきた。
6·25 사진전, 출항하다
625(ユギオ・韓国戦争)写真展、出航する
🖋️미네소타 주립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터전을 닦았다는 안 대표는 생업을 접고 한국으로 건너와 이 일에 전념했다. 사진전 20년을 맞은 감회를 묻자 “이렇게 긴 항해가 될 줄은 몰랐다”며 “저희가 하는 6·25 교육으로 ‘실제 이런 일이 있었구나’ ‘이 나라를 지킨 게 기적이구나’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보람”이라고 답했다.
ミネソタ州立大学で経営学の修士号を取得し、米国で基盤を造ったという安(アン)代表は本業を辞め、韓国に渡ってこの仕事に専念した。写真展20年を迎えた感慨を聞くと、「このように長い航海になるとは知らなかった」とし、「私達がする625(ユギオ)教育で『実際にこのようなことがあったんだ』『この国が守られたのは奇跡だな』と共感する人が多いというのがやりがい」と答えた。
🎤생업을 닫아도 될 만큼 집안 형편이 넉넉했나요.
本業を辞めることができるほど余裕があったのですね
👨🏫“그동안 6·25 자료 수집과 국내외 사진전, 출간 등에 300만달러(약 40억원)를 썼습니다. 컴퓨터 박사인 아내가 연봉을 많이 받아요. 염치 없지만 제가 생활비를 안 가져가도 집에서 쫓겨나지는 않습니다.”
「これまで6・25資料収集と国内外の写真展、出版などに300万ドル(約40億ウォン)を使っています。コンピューター博士の妻が年俸をたくさんもらっています。
🎤그래도 쉽지 않은 일인데 후원자가 있었습니까.
それでも簡単ではないでしょうが、後援者がいましたか。
👨🏫“300만달러 중 절반은 후원이에요. 기업체나 은행에서 ‘취지에 공감한다’며 거금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십시일반 도와주셨고요.”
「300万ドルの半分は自費、残りの半分は後援者の援助でした。企業体や銀行が「趣旨に共感する」とし、巨額を出してくれたこともありました。多くの人が常に助けてくれました。」
🎤역사를 알리는 방법으로 왜 하필 사진전을 선택했습니까.
歴史を知らせる方法になぜハネル写真展を選んだのですか。
👨🏫“저도 전후 세대지만, 요즘 청년들은 비주얼로 정보를 습득하잖아요. 사진이 글보다 직관적이고 호소력도 있습니다. 제가 자료를 수집할 때도 사진이 덜 지루했어요.
「最近の青年達はビジュアルから情報を習得するでしょう。写真が文章より直感的に訴える力(ちから)もあります。
6·25 사진전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다 갔을 거예요. 부산역, 해운대, 속초, 주문진, 만리포…. 군부대, 학교, 교회에서도 했습니다. 상징적인 장소를 하나 꼽으라면 이곳이고요.”
625 写真展は人がたくさん集まる所には全部行って展示会をしました。釜山駅、海雲台(ヘウンデ)、束草(ソクチョ)、十文神(ジュムンジン)、万里浦(マンリポ)… 。軍部隊、学校、教会でも行いました。象徴的な場所をひとつ挙げればここ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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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연 사진전 /WPF
2010年6月釜山海雲台海水浴場で開かれた写真
2010년 서울 용산 주한 미군 사령부에서 초대 미8군 사령관이었던 월튼 워커 장군의 동상 제막식과 함께 열린 6.25 사진전.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와 월터 샤프 주한 미군 사령관을 안재철 대표가 안내하고 있다.
2010년 서울 용산 주한 미군 사령부에서 초대 미8군 사령관이었던 월튼 워커 장군의 동상 제막식과 함께 열린 6.25 사진전.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와 월터 샤프 주한 미군 사령관을 안재철 대표가 안내하고 있다.
2010年ソウル龍山駐韓米軍司令部で初代米8軍司令官だったウォルトン・ウォーカー将軍の銅像製膜式と共に開かれた6.25写真展。キャスリン・スティーブンス駐韓米国大使とウォルターシャープ駐韓米軍司令官を安在喆(アンジェチョル)代表が案内している。
🎤여기 전시하는 사진들은 어떻게 선별했나요.
ここで展示されている写真はどのように選別しましたか。
👨🏫“6·25전쟁을 스토리텔링으로 보여주는 구성입니다. 사진이 140점씩 10세트가 있었어요. 10곳에서 동시에 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이곳은 장소가 넓지 않아 70점만 전시 중입니다. 그동안 불타거나 훼손되거나 도난당한 것도 많아요. 저는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휴머니즘이 묻어나는 사진을 좋아합니다.”
「625戦争を紙芝居のように見せる構成です。写真が140点ずつ10セットありました。つまり写真展を同時に10カ所で行(おこな)うことができます。ここは場所が狭いので70点だけ展示中です。その間、燃やされたり、壊されたり、盗まれたりしたことも多いです。私は悲惨な戦争の中でもヒューマニズムを表す写真が好きです。」
🎤예를 들어주시죠.
例えばどんな写真ですか?
👨🏫“(지난해 펴낸 ‘사진으로 보는 6·25 한국전쟁’ 표지를 가리키며) 짐을 멘 한국 아이 두 명의 손을 미군이 붙잡고 걷는 모습입니다. 철모의 십자가가 보이죠? 군목입니다. 강원도 홍천의 고향 마을로 아이들을 데려가는 길에 미 해병대가 촬영한 사진이에요. 부모는 돌아가셨습니다. 중1쯤 돼 보이는 아이가 하루아침에 가장이 된 거예요. 그때 대한민국이 딱 이런 처지였다고 생각합니다.”
「(昨年公開した『写真で見る6・25韓国戦争』の表紙を指して)荷物を背負った韓国の子供2人の手を米軍が握って歩く姿です。鉄帽に十字架が見えます。中学1年生くらいの子がある日突然家長になったのです。その時の大韓民国がそんな状況だったのです。」
-무슨 뜻인가요.
“전쟁 통에 아이들이 메고 있는 짐, 저 보잘것없는 살림이 앞으로 개선해야 할 운명처럼 보였어요. 이런 사람들이 역경을 딛고 맨주먹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군 거예요. 노력하고 뭉치면 세상에 못 할 일이 없습니다.”
「戦争を通じて子ども達が抱えている荷物、あの無垢(むく)な生き方が今後開くべき運命のように見えました。」
🖋️안재철 대표가 지난해 펴낸 책 '사진으로 보는 6.25 한국전쟁'은 인류의 자유와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희생한 기록을 담고 있다."전쟁 통에 아이들이 메고 있는 짐, 저 보잘것없는 살림이 앞으로 개선해야 할 운명처럼 보였어요."
安在喆(アンジェチョル)代表が昨年公開した本「写真で見る6.25韓国戦争」は、人類の自由と生命の価値を守るために数多くの人が犠牲になった記録が盛り込まれている。
험난한 파도를 넘어서
険しい波を超えて
안 대표는 2010년 기네스북에 기록을 하나 더 등재했다. ‘6·25전쟁에 세계 67국이 대한민국을 지원한 기록은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가 연합군으로 지원한 세계기록’이라는 것. 그 전까지 우리는 파병 16국과 의무 지원 5국 정도만 알고 있었다.
安在喆(アンジェチョル)代表は2010年ギネスブックに記録をもう1つ登録した。 「韓国戦争とは世界67国が大韓民国を支援したという歴史上最も多くの国が連合軍として支援した世界的記録である。」
🎤그 기네스북 기록의 의미라면.
ギネスブックに乗った意味は?
👨🏫“6·25 때 세계에 독립국은 91국뿐이었어요. 그런데 대한민국을 돕겠다고 67국이나 힘을 모은 겁니다. 공산국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인 셈인데, 범세계적 지원을 이끌어낸 건 요행이 아니에요. 국제 정세에 부응하면서 자유 수호 의지를 굳건히 지킨 지도자와 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韓国戦争当時、世界には独立国は91カ国だけでした。それらの国が大韓民国を助けるようと67カ国が力(ちから)を集めたのです。共産国家を除けばほとんどの国ですが、世界的支援を受けたことは嬉しいことではありません。国際情勢にもまれながらも自由を守護しようとする指導者と国民がいてこそ可能だったことです。」
🎤파병 16국에서 사진전을 여는 게 목표라고요?
派兵してくれた16カ国で写真展を開くのが目標ですか?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저희가 큰 규모로 사진전을 진행한 곳은 미국과 태국뿐입니다. 필리핀,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요청하는 분들에게 사진만 빌려드려 전시했고요. 늘 돈이 문제입니다.”
「大きな規模で写真展を進めたのはアメリカとタイだけです。フィリピン、オーストラリア、ニュージーランドでは要請する国には写真だけを貸して展示しました。いつもお金が足らないのが問題です。」
↑2015年7月米国ワシントンDCリンカーンメモリアルで開いた写真展/WPF
🎤파병국에서 전시를 할 때 반응은.
国連派兵国で展示をする時の反応は。
👨🏫“버지니아 노퍽의 맥아더기념관에는 해마다 가는데 미국 관람객이 더 감동합니다. 대공황을 겪고 어렵게 키운 청년들이 6·25에 참전했거든요. 우리 사진들을 본 젊은이들은 ‘미국이 이렇게 위대한 나라인 줄 몰랐다’며 놀랍니다. 여든이 넘은 퇴역 군인은 ‘미국이 도와준 나라가 많지만 이렇게 찾아와 감사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했지요.”
「バージニア州のノーフォークにあるマッカーサー記念館には毎年行って展示会をしますが、アメリカ人がより感動してくれます。大恐慌を経て国難の中で、米国の青年たちが625に参戦したんですよ。私たちの写真を見た米国の若者たちは、『米国がこんなに偉大な国だったとは知らなかった』と驚きます。年老いた退役軍人は、『米国が助けてやった国が多いが、こうしてここまで訪ねてきて感謝してくれる国は韓国しかない』と言いましたね。」
🎤정치적 의도가 있는 거 아니냐는 의심도 받았을 텐데.
政治的意図があるのではないかと疑われもしませんか?
👨🏫“저한테 ‘한자리 차지하려고 하는 일이냐’고 물어요. 추호도 없습니다. 미국의 노력과 헌신을 기억하고 되새기면서 한미 관계에 도움이 되고 싶을 뿐이에요. 6·25의 진실을 알면 좌(左)고 우(右)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韓国に対するアメリカの努力と献身を思い、韓米関係の助けになりたいという思いだけでしています。韓国戦争の真実を知れば、左も右もありません。」
2008年、狂牛病のろうそく集会の時、デモ隊が展示中のマッカーサー将軍の写真を焼いた。
🎤험한 일도 겪었지요?
嫌なこともありましたか?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 때 시위대가 전시 중인 사진들을 마구 불태우고 훼손했습니다. 맥아더 장군 사진을 향해 ‘저놈 때문에 우리가 통일을 못 했어’라고 욕한 젊은 엄마도 있었어요. 사진에 붉은색 스프레이로 낙서 테러를 당한 적도 있습니다.”
「2008年、狂牛病のろうそく集会の時、デモ隊が展示中の写真を焼きました。マッカーサー将軍の写真に向かって「あの男のために私たちが統一できなかった」と悪口を言う若い女性もいました。」
🎤그런 수모를 당하고도 왜 계속했나요.
そんな仕打ちを受けてもなぜ続けますか?
👨🏫“그 무렵부터 사명감을 가진 것 같아요.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 내가 감당해야 할 임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런 역경쯤이야 극복해야죠. 당시 우스갯소리로 ‘불난 집이 더 잘된단다’라고 했습니다, 하하.”
「使命感を持っています。歴史を正しく立てることが、私達の任務と考えます。だから反対も乗り越えられます。」
🎤다른 고난은 없었습니까.
他の苦労はありませんでしたか?
👨🏫“거리 전시회도 경찰서에 집회 신고를 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 때는 무슨 이유인지 허가를 안 해줘 중단되고 말았어요. 그 탄압 시기에는 미국에서만 사진전을 이어가다 2023년에 재개하게 돼 기뻤습니다. 이 6·25 전시회가 관광 코스가 됐어요!”
「路傍展示会も警察署に集会申告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文在寅(ムンジェイン)政府の時は何の理由か許可をもらえず中断されてしまいました。その弾圧時期には米国だけで写真展を続けて、2023年に韓国で再開することができて嬉しかったです。この625展示会が観光コースになりました!」
🎤관광 코스라고요?
観光コースですか?
👨🏫“찬찬히 보는 사람 10명 중 3명은 외국인이에요. 우리를 도와준 67국 국기 중에 자기 나라 국기가 보이니까 달려와 단체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스페인에서 온 관광객에게 물어보니 서울 도심 관광 코스에 저희 사진전이 들어가 있대요. 민간 외교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자긍심이 생겼어요.”
「注意深く見いる人の10人のうち3人は外国人です。67カ国の国旗の中に自分の国の国旗が見えたと走ってきて団体写真を撮ったりもします。スペインから来た観光客に聞いてみるとソウル都心観光コースに私たちの写真展が入っています。民間外交の一役を担っているという誇りが出て来ました。」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194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건조돼 인천상륙작전·흥남철수작전 등에서 활약했고 베트남전에도 참여했더군요.
メレディス・ビクトリー号は1945年、米国カリフォルニアで建造され、仁川(インチョン)上陸作戦・興南(フンナム)撤収作戦などで活躍し、ベトナム戦にも参加しましたね。
👨🏫“네, 1993년 퇴역했고 중국에서 고철로 분해돼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고철로 처분하기 전에 미 해군부에서 로버트 러니에게 연락했답니다. 러니가 6·25전쟁 당시 사진과 자료를 많이 모아 그 나름대로 유명했거든요. ‘배에 있는 물건 중에 혹시 유품으로 갖고 싶은 게 있느냐’고 물었대요. 구명 튜브라고 답했고 실물을 지금은 제가 소장하고 있습니다.”
「はい、1993年に退役し、中国で古鉄(ふるてつ)として分解されて消えました。ところが、古鉄として処分する前に米海軍省がロバート・ラニーに元(もと)船長に連絡しました。船の記念品に何がほしいかと聞いて来たのです。ロバート・ラニーは、ライフチューブ(救命具)と答えました。その実物を今は私が所蔵しています」
🎤피란민 1만4000명을 구한 배의 구명 튜브라면 기적의 상징이군요.
避難民1万4000人を救った船の救命具なら奇跡の象徴ですね。
👨🏫“러니는 저를 ‘캡틴 오브 스토리’라고 불러요. 메러디스 빅토리호 이야기를 세계에 알린 선장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요즘 ‘생명의 항해(Sailing for Life)’라는 뮤지컬을 만들고 있어요.”
「ロニー元船長は私を『キャプテン・オブ・ストーリー』と呼んでくれました。メレディス・ビクトリー号の話を世界に知らせた船長という意味です。私が最近「生命の航海(Sailing for Life)」というミュージカルを作っています。」
👨🏫“6·25전쟁에 얽힌 이야기 중에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기적은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도 성공할 만한 감동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명 튜브를 판매해 제작비로 삼을 거예요. (얼마쯤 생각하는지 묻자) 30억원? 누구는 미쳤다고 하는데, 사라진 기적의 배가 남긴 유일한 유품입니다. 그런 물건은 임자가 따로 있을 테고요.”
「625戦争にまつわる物語の中でメレディス・ビクトリー号の奇跡は米国ブロードウェイでも成功するほどの感動と潜在力を持っていると私は思っています。救命具を販売して製作費にすることもできるでしょう。」
「メレディス ビクトリー」号は世界最大規模の救助作戦を成功させた船として認められ、2004年にギネスブックに上がったが、1993年に古鉄用に中国に販売され、歴史の中に消えた。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마지막 유품인 구명 튜브 /안재철 제공
「メレディスビクトリー」号の最後の遺品である救命チューブ
🎤뮤지컬은 지금 어떤 단계인가요.
ミュージカルは今どんな段階ですか。
👨🏫“극본을 손질하는 중입니다. 제가 요구한 것은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이 등장해야 한다’ 하나였어요. ‘피란민을 다 구출하라’는 맥아더 장군의 명령문이 있었고 이승만 대통령도 그런 부탁을 했다는 자료를 찾았습니다.”
「脚本を修正しています。私が求めたのは『李承晩(イ・スンマン)大統領とマッカーサー将軍が登場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した。なぜなら、『避難民を救出せよ』というマッカーサー将軍の命令文と李承晩大統領がその付託した資料を私が探し出したからです。」
🎤지금 6·25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625(ユギオ)が与える教訓は何でしょうか。
👨🏫“흥남철수 때 피란민들은 유엔군과 국군을 따라 자유세계로 갈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았습니다.
요즘도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흥남 철수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6·25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지키기 위한 자유 수호 전쟁이었고, 대한민국을 방어해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았습니다. 이젠 우리가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과거의 우리와 같은 나라들을 도와야죠.”
「興南(フンナム)撤収の時、避難民達は国連軍と国軍に従って自由世界に行くことができるという一筋の希望をつかめたことです。
今も死を覚悟して脱北する人々を見てください。 『興南(フンナム)撤退はまだ進行中』と言えます。 625は人が人らしく暮らせる世界を守るための自由守護戦争であり、大韓民国が守られることにより共産主義の拡散を防ぎました。今、私たちが歴史的な使命感を持って過去の私達のような国々を助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残念なことがあれば。
👨🏫“해마다 6월이 되면 6·25와 전몰 장병을 추모하는 행사를 합니다. 호국 보훈의 달에만 예산이 있으니 이벤트처럼 하고 치워버리는 식이라 안타까워요.”
「韓国では毎年6月になると625戦没将兵を追慕する行事をします。しかし、6月にだけ予算があるので、6月が過ぎたら行事ができず忘れられるので残念です。」
🎤생업을 내던질 만큼 가치 있는 일이었나요?
本業を辞めるほど価値あることでしたか?
👨🏫“그럼요. 자부심도 있습니다. 누구는 ‘전쟁을 하자는 거냐’고 그래요. 필요하다면 전쟁도 해야겠지만 그보다는 역사를 바로 알고 경계하며 감사하자는 뜻으로 하는 일입니다. 돌아보면 이 나라는 정규군이 구한 게 아니라 의병들이 구했어요. 6·25 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합니다.”
「そうです。誇りもあります。ある人は、『戦争をしようと言うのか』と言う人もいます。必要なら戦争も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が、それよりは歴史を正しく知って感謝しようという思いになることです。振り返ってみると、この国は正規軍が救ったのではなく、義兵たちが救いました。 625の当時でも、今でも世界は平凡な人々が支えています。」
이 항해의 출발점이 된 라루 선장을 꿈에서라도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당신을 알게 돼 험한 바다에서 인생의 파도를 넘었습니다. 보십시오. 당신이 구출한 피란민과 그 후손이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노력했고 이만큼 일으켰습니다. 기적의 항로를 열어준 선장님, 감사합니다. 저희 사진전도 ‘영원히 서 있겠다(We stand forever)’는 각오로 멈추지 않겠습니다.”
「この航海の出発点となったラルー船長を夢でも会うならどんな言葉を言いたいか。『あなたを知り、険しい海で人生の波を超えました。見てください。あなたが救出した避難民とその子孫が大韓民国の発展に努め、この国を興しました。奇跡の航路を開いてくれた船長、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写真展は永遠に開き続けます』」
[아무튼주말 - 월드피스 프리덤 유나이티드 대표 안재철 영상 - 영상미디어 임화승기자 ]
ワールド ピース フリーダム ユナイテッド 代表 安在喆(アンジェチョ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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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鮮明先生말씀選集 620 - 10.
韓國戰爭은 하나님의 聖戰(성전) (2010.02.12)
韓國戰爭(한국전쟁)이 二次大戰以後(이차대전이후) 世界(세계)의 聖戰(성전)이 되면 하늘 軍隊(군대)의 代表的(대표적)인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매해 名譽(명예)의 이름을 韓國(한국) 現役軍(현역군)과 在鄕軍(재향군)이 合(합)해 가지고 繼續(계속)해서 傳授(전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世界的(세계적)입니다. 文化世界(문화세계)의 傳統(전통), 確實(확실)한 傳統(전통)을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李姸雅王妃(이연아왕비):
이제 爆擊(폭격)이 始作(시작)되면서 UN軍이 北(북)쪽으로 다시 進擊(진격)이 始作(시작)되면서 이제 興南監獄(흥남감옥)에 있던 罪囚(죄수)들을 다 大虐殺(대학살)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그것을 아버님께서 살아남으신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님께서는 이 6.25 韓國戰爭(한국전쟁)을 바로 聖戰(성전)이다. 하나님의 아버님 救出作戰(구출작전)이었다 라고까지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 때 UN軍의 爆擊(폭격)이 시작되지 않았으면 아버님은 그날 다른 그때 많은 그 收監者(수감자)들처럼 虐殺(학살)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