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6

강어머님 말씀👸「아버님의 각오」천기8년・양력2017년

 康참어머님의 말씀
天基8年天暦2月5日・陽暦2017年3月2日
♛「아버님의 覺悟(각오)」
(9分半)
https://youtu.be/S5limHObqF0









🤴
미세스 康(강)으로 가자. 

🎤
마태福音 5章 12節.
"기뻐하고 매우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償(상)이 크기 때문이다.
너희 前(전)에 있던 先知者(선지자)들도
이와 같이 迫害(박해)를 받았느니라." 

👸
오늘 말씀드릴 內容(내용)은「옛날 아버님의 覺悟(각오)」에 對(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가는 길 앞에監獄(감옥)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나는가야 합니다. 온갖 逼迫(핍박)을 當(당)하면서도 가야만 합니다」. 아버님은 하나님 앞에 忠誠(충성)의 道理(도리)를 다하기 爲(위)해서 祈禱(기도)와 精誠(정성)으로 이 길을 가셨습니다. 이 길은 가는 사람이 가다가 모두 쓰러진다 하더라도 아버님은 갈 것입니다고盟誓(맹세)하셨습니다.

只今(지금)까지 아버님은 죽는 자리에까지 가서라도 怨讐(원수)의 아들 딸에게 보여줄 수 있는그 무엇을 마련하려고 努力(노력)하셨습니다. 怨讐(원수)들의 二世(이세)를 사랑으로 敎育(교육)시킬 수 있는 準備(준비)를 갖추는 것이 怨讐(원수)를 屈服(굴복)시키는最高(최고)의 作戰(작전)임을 알으셨습니다. 旣成敎會(기성교회)의 牧師(목사)와 長老(장로)들이 우리 敎會(교회)를 反對(반대)했을 때그들의 子女(자녀)들은 아버님을 따랐습니다. 

아버님은 자나 깨나 生涯(생애)의 目標(목표)를 向(향)해 前進(전진)하면서 힘이 들 境遇(경우) 背後(배후)에서 役事(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시고 祈禱(기도)하셨습니다. 어려운 일을 當(당)하면 그때마다 하나님 아버지내가 이 責任(책임)을 擔當(감당)해야만 하나님을 解放(해방)시켜 드릴 수 있고 人類(인류)의 解放(해방)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것을 爲(위)해서 내 하나를 걸음 삼아 이 땅에 平和(평화)의 世界(세계)가 이룩되게 하시옵소서고 祈禱(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孑孑單身(혈혈단신) 외로운 環境(환경)에서 눈물 짓는 그 자리는 十字架(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네마네 동산에서 三次(삼차)에 걸쳐 祈禱(기도)하신예수님보다도 더 深刻(심각)한 자리라는 것을 느끼셨습니다. 

數(수)많은 人類(인류)의 所望(소망)을 걸고 祈禱(기도)하는 그 자리이기 때문에하나님은 마음을 모아서 아버님의 祈禱(기도)를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基督敎(기독교)의 歷史(역사)를 볼 때 數(수)많은 사람들이 기쁨으로 殉敎(순교)의 길을 간 것도 모두가 이 原理(원리)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버님은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祈禱(기도)를 올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聖徒(성도)들에게는 迫害(박해)가 있어야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로마에서 基督敎(기독교)가 400年間 迫害(박해)받는 것을 왜 그대로 두었느냐 하는 이도 있습니다. 原則的(원칙적)으로 볼 때 世界(세계)의 끝까지 連結(연결)되는 어떠한 基準(기준)이 나타나지 않으면 迫害(박해)는 繼續(계속)되는 것입니다.

基督敎(기독교)는 迫害(박해)를 通해 400年만에 世界的(세계적)인 宗敎(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基督敎(기독교)를 基盤(기반)으로 아버님이 地上(지상)에 公式的(공식적)으로 나타난 것은 第二次世界大戰(제2차세계대전) 以後(이후)였습니다.

攝理(섭리)의 全體的(전체적)인 뜻을 中心(중심)으로 하여 이루었을 때 基督敎(기독교)는 메시아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듣느냐 듣지 않느냐에 따라서 基督敎(기독교)의 生死(생사)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믿으려면 自己否定(자기부정)을 하지 않으면 아니됩니다. 自己(자기)의 歷史(역사)를, 自己의 家庭(가정)을,自己의 信仰基準(신앙기준)을모든 것을 否定(부정)하는 基準(기준)에 서야만이 認定(인정)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메시아는 只今(지금)까지 基督敎聖徒(기독교성도)들이 믿어온 것처럼 그렇게 오시지는 아니했습니다. 基督敎人(기독교인)들은 大部分(대부분) 메시아가 自己(자기)들의 個人的(개인적)인 所望(소망)을 成就(성취)시켜 주시기 爲(위)해오시는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個人的(개인적)인 眼鏡(안경)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시아는 天宙主義(천주주의)를 志向(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自己(자기)들의 저울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30年, 40年 뒤의 것, 홀로 永遠(영원)한 것을 두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메시아가 오셔도 다시 反對(반대)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님께서는 죽을 고비를 數十番(수십번) 더 넘기시며 責任感(책임감)에 더 불타셨습니다.

그 惡(악)한 共産部(공산부)의 心臟部(심장부)인 興南監獄(흥남감옥) 生地獄(생지옥)에서도 그 뜻을 굽히지 않으시고 더 크게 뜻을 넓히셨습니다.

基督敎人(기독교인)들의 無知(무지)로 말미암아 들어가신 西大門刑務所(서대문형무소)에서도그 뜻은 더 永久(영구)히 다져졌습니다. 

美國(미국) 덴버리 敎導所(교도소)에서는 뜻을 中斷(중단)시킬 수 없다고 하시면서 워싱턴타임스, 鮮文大學校(선문대학교), 또 그 다음에는 브리지포트大學(대학)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監獄所(감옥소)의 面會(면회) 場所(장소)를 차라리 攝理(섭리)를 進行(진행)시키는 事務室(사무실)로 삼으시면서 일을 하셨습니다. 

여섯 번의 監獄生活(감옥생활)은 하늘이 보내신 이 땅의 主人(주인)이시기 때문에 當(당)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또 여섯 번의 監獄生活(감옥생활)을 아버님은 어떻게 생각하셨느냐 하면은 하늘이 달아주신 勳章(훈장)받는 것으로서 생각을 하셨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에 아버님께서는 내가 아니면은 누가 이 하늘 뜻을 責任(책임)질 수 있겠는가 하시면서 아버님은 모든 全體(전체)를 하늘 앞에 맡기고 죽을 고비를 數十番(수십번) 더 넘어가시면서 責任感(책임감)에 더 불붙어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드린 것은옛날 아버님께서 정말로 어떤 생각을 하시고 아버님께서 어떻게 나오셨느냐 하면 정말로 아버님은 生命(생명)을 내어 놓고한 뜻을 내가 이루어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런 心情(심정)을 가지시고 해 오셨기에 오늘 우리들도 그럴 수 있는 心情(심정), 그럴 수 있는 姿勢(자세)로서 우리들도 함께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드린 말씀은 아버님의 覺悟(각오), 어떤 覺悟(각오)로서 出發(출발)하시고 어떤 覺悟(각오)로서 일을 해나오셨다는 것에 對(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感謝(감사)합니다.


今日(きょう)、お話しする内容は「昔のアボニムの覚悟」についてお話しいたします。「私が行く道の前に監獄が待っていようとも私は行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あらゆる迫害を受けながらでも行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アボニムはハナニムの前に忠誠の道理を尽くすために祈禱と精誠によってこの道を行かれました。この道は行く人が途中で皆倒れるとしてもアボニムは行くと誓われました。

今までアボニムは死ぬ場に至っても怨讐の息子や娘に示すことのできる何かを備えようと努力されました。怨讐達の二世を愛によって教育できる準備を整えることが怨讐を屈服させる最高の作戦であると知っておられました。既成教会の牧師や長老達が私達の教会に反対したとき彼らの子女達はアボニムに従いました。

アボニムは寝ても覚めても生涯の目標に向かって前進されながら、力尽きる場合には背後で役事される神様を思われ祈禱されました。困難に直面するたびに「ハナニム アボジ(天の父よ)、私がこの責任を担(にな)ってこそ神様を解放して差し上げることができ、人類の解放をもたらすことができます。その為に私一人を肥料として(=踏み台にして)この地に平和の世界が成されますように」と祈禱されました。

このように孤独な身、さびしい環境の中で涙するその場は十字架を前にしてゲッセマネの園で三度にわたり祈られたイエスニムよりもさらに深刻な場であると感じておられました。数多くの人類の願いを担って祈禱するその場であった為、神様は心を合わせてアボニムの祈禱を聞き入れられたのです。

基督教の歴史を見る時、数多くの人々が喜びをもって殉教の道を行ったのもすべての者がこの原理を知っていたからです。アボニムは神様が聞き入れてくださる祈禱を捧げられたのです。「神様がいるならば聖徒には迫害があるはずではないか」と言う人もいます。「神様はローマで基督教が四百年間迫害されたことをなぜそのままにされたのか」と言う人もいます。原則的に見ると 世界の果てまで連結される何らかの基準が現れなければ迫害は続くのです。基督教は迫害を通して四百年で世界的な宗教となりました。そのような基督教を基盤としてアボニムが地上に公式的に現れたのは第二次世界大戦以後でした。

摂理の全体的な御旨(みむね)を中心として成されたとき基督教はメシアの御言葉(みことば)を聞か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す。それを聞くか聞かないかによって基督教の生死がかかっていました。

しかしそれを誰が信じるのかというのです。信じるためには自己否定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自分の歴史を、自分の家庭を、自分の信仰基準をすべてを否定する基準に立ってこそ認められるのです。

しかしメシアはこれまで基督教聖徒達が信じてきたようには来られませんでした。基督教人の大部分はメシアが自分達の個人的な願いを成就させるために来られるものと信じていました。それは彼らが個人的なメガネをかけているからです。メシアは天宙主義を志向しています。ですから自分達の物差しでは分かりません。あまりにも大きいからです。三十年四十年先のこと永遠のことを語っているからです。そうなれば、メシアが来られても再び反対を受けざるを得ません。

それでアボニムは幾度も死の峠を越えながら責任感にさらに燃えられました。あの悪なる共産勢力の心臓部である興南(フンナム)監獄という生き地獄においてもその志(こころざし)を曲げることなくさらに大きく広げられました。

基督教人達の無知によって入(はい)れられた西大門(ソデムン)刑務所でもその志はより一層固められました。アメリカのデンベリー教導所では御旨を中断させることはできないと言われワシントン タイムズ、鮮文(ソンムン)大學校、ブリッジポート大學を設立されました。そして監獄の面会場所をむしろ摂理を進める事務室として仕事をされました。

六度の監獄生活は 天が送られたこの地の主人であるゆえに当然のことと思っておられました。また六度の監獄生活をアボニムはどのように考えられたかと言うと、天が授けた勲章を受けることだと考えておられました。アボニムは、「私でなければ誰がこの天の旨を責任を持てるのか」と言われながら、アボニムはすべてを天の前にゆだねられ幾度も死の峠を越えながら責任感にさらに燃えておられたのです。

それで今日(きょう)、お話して差し上げたことは、昔、アボニムがどのような思いをされ、アボニムがどのように出て来られたかというと、本当にアボニムは生命を差し出して、一つの御旨を私が成し遂げ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そのような心情を持ってして来られたので、今日(こんにち)、私達もそのような心情とそのような姿勢をもって私達も共にして出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それで今日(きょう)、お話しして差し上げた内容は、アボニムの覚悟、どのような覚悟で出発され、どのような覚悟で歩まれたかについてお話して差し上げま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