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정기적으로 40일 수련, 조상해원식, 조상축복식, 영육계 약혼축복식, 1세 미혼영인 축복식, 합동결혼식, 효정원(구 선영당, 400만원), 땅과 건물 해원시켜 준다며 ‘텃신해원’ 등 민간 무속신앙과 결합된 각종 新영상품들 개발해, 믿고 따르는 신도들 상대로 종교장사를 하고 있다.
조상, 가족, 건강, 기복, 사후세계 등 인간의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얄팍하게 이용하는 수법으로 무속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점점 더 통일교가 무속화되는 이유이다.
金勇力訓師(김용력훈사)의 79年間 生涯(생애) 마지막 公的活動(공적활동)에 있어서의 代表祈禱(대표기도)
時:2024年9月3日火曜日
場:트럼프 랠리
所:테네시 모리스타운
파운틴 플라자
토미 건 웨어하우스 앞
Tommy Gun Warehouse
Fountain Plaza
Morristown, TN
感謝(감사), 感謝드립니다. 오늘 저희들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계획하에 참父母님께서 트럼프 전 大統領을 세우시고 11月 5日 이제 大統領選擧(대통령선거)에 出馬(출마)를 시키셔서 三代王權(삼대왕권)을 중심삼고 특별 精誠(정성)과 랠리의 참여하셔서 이게 트럼프大統領을 當選(당선)시키기 위한 特別精誠(특별정성)의 路程(노정)을 가고 있사옵나이다.
그동안 트럼프大統領 후보자가 이제 怪漢(괴한)에 의해서 狙擊(저격)을 당하였으나 하나님의 聖靈(성령)이 保護(보호)하시사 살게 인도해 주시고 그 契機(계기)로 트럼프 후보자는 하나님 앞에 感謝(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恩惠(은혜)로 살았다고 滿天下(만천하)에 公布(공포)하고 있습니다.
二代王任(이대왕님)께서는 그가 이제 銃알 머리 王冠(왕관)을 쓰게 됐고 가인적인 三代王權(삼대왕권) 家門(가문)으로 하나님이 세우시사 아벨쪽 三代王權(삼대왕권)과 마음과 뜻이 하나되게 하셔서 참父母님의 뜻으로 美國(미국)을 살리고 世界人類(세계인류)를 살리기 위해서 그를 大統領(대통령)으로 세우고자 하시는 貴(귀)한 뜻이 되심을 感謝하옵고, 저희들은 二代王任(이대왕님)과 한마음 뜻으로 精誠(정성)을 모으면서 트럼프 大統領이 이제 暗殺(암살)당하지 않고 또 健康(건강)을 유지하면서 그 어떤 共産黨(공산당)과 民主黨(민주당)을 앞장 세워서 罪惡(죄악)을 행한다 하더라도 이제 그것을 넘고 넘어서 當選(당선)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指導者(지도자)로서 役割(역할)을 다하길 懇求(간구)하면서 特別精誠(특별정성) 랠리를 들이고 있습니다.
오늘 國進(국진)監査院長(감사원장)님 아버지 회사 앞에서 저희들은 이제 랠리를 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大統領(대통령) 當選(당선)되기를 바래서 외쳤습니다. 많은 市民(시민)들이 트럼프를 支持(지지)하는 信號(신호)을 보낸 것을 感謝(감사)하고, 때로는 트럼프를 싫어하는 表示(표시)를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만은 그러나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聖靈(성령)의 놀라운 役事(역사)로 이번에 틀림 없이 當選(당선)될 것을 믿사오니 아버지 感謝(감사) 感謝드리옵나이다.
저희들은 저 멀리 韓國(한국)에서 이제 찾아와서 日本(일본)과 美國(미국) 食口(식구)들과 더불어 함께 三代王權(삼대왕권) 모시고 精誠(정성)을 들이고 있습니다. 아버지 조그만 精誠(정성)이지만 오늘도 받아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모리스터운에 살고 있는 市民들이 다시 한번 트럼프를 생각하고 깨닫고 아버지 선거에 나가서 투표할 수 있는 그러한 마음을 갖는 계기가 되도록 役事(역사)해 주시옵소서. 이것이 번지고 번져서 전 市民(시민)들에게 美國市民에게 번져서 아버지 聖靈役事(성령역사)할 수 있는 條件(조건)이 되도록 引導(인도)해 주시기를 간절이 빌고 원하옵나이다.
二代王任(이대왕님)께서 이제 위스콘신州 랠리에 참여하시고 또 펜실베니아州까지 다녀오시는 동안 건강 지켜주시고 身邊保護(신변보호)해주시옵소서.
저희들도 아버지 함께 해 주실 것을 믿사옵고 모든 말씀을 祝福中心家庭(축복중심가정)金勇力(김용력) 趙惠恩(조혜은) 家庭(가정) 이름으로 報告(보고)하고 아뢰옵사옵나이다. 我主(아주).
지금 우리 大韓民國(대한민국)이 이 공산주의로 가고 있는 전 단계의 모습을 지금 드러내고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攝理(섭리)의 중심을 중심자를 세워서 중심가정을 세우고 중심 종족을 세우고 민족을 세우고 국가를 세워서 하나님의 王國(왕국)을 정착시키는데 이 大韓民國(대한민국)은 하나님으로부터 제3이스라엘 민족, 하나님의 섭리의 중심 국가로이 나라를 택하신 거예요.
그런데 이 大韓民國(대한민국)이 아버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그 뜻을 韓氏(한씨)어머니가 배신함으로써이 사탄의 권세가 大韓民國(대한민국)은 親北(친북) 親中(친중), 北韓(북한)과 中國(중국)의 이 共産主義者(공산주의자)들이 자경화된 세력이 이 大韓民國(대한민국)을 붉게 물들어 놓은 거예요.
그래서 아버님께서는 이 나라를 이제 하나님의 祖國(조국)과 故鄕(고향)으로 세우시기 위해서 아버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이 지도자들을 교육하고 그리고 統班(통반)까지 그렇게 진리의 교육을 해왔단 말이에요. 이 나라를 하나님의 조국과 고향으로 온전히 세우기 위해서 그토록 수거해 오셨는데 아버님께서 우려해 오셨던 일이 지금 그것이 지금 左傾化(좌경화) 된 共産主義者(공산주의자)들 리 李在明(이재명)이 부정선거를 통해서 국회를 장악하고 盧武鉉(노무현)때이 국회 해산할 수 있는 것을 없애 버렸어요.
지금 그러니까 국회는 어느 누구도 국회를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지금 대통령도 누가 탄핵을 할 수 있어요? 국회에서 탄핵을 할 수 있잖아요. 탄핵한다는 말이 무슨 말이에요? 그 대통령의 업무를 중지시키는 거예요. 그 중진시켜 놓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사법부도 이 국회에서 중지시킬 수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누구도 중지할 수가 없어 법적으로. 그러니까이 사람들이 숫자만 많으면 대한민국을 완전히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바꿀 수가 있는 거야 지금.
그러니까이 이재명이 같이 그렇게 많은 범죄를 하고 지금 형서법정에 서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법정에서 이 재판을 받으면서도 지금이 나라의 대통령 되겠다고 그러고 있어.
이제 오늘 새벽에 尹大統領(윤대통령)이 지금 구속되었습니다. 이제 구속 영장이 떨어졌어요. 그런데 있을 수가 없어요. 지금 西部地方法院(서부지방법원)에 左傾化(좌경화)된 그 裁判官(재판관)들이 많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쪽으로 이 尹大統領(윤대통령)의 그 구속을 신청한 거예요.
실제는 어디로 신청을 해야 되냐면 中央地方法院(중앙지방법원)의 신청을 해야 되는게 법적이에요. 그런데 이 左傾化(좌경화)된 세력들은 자기들의 그 세력들이 뭉쳐 있는 그곳에다 집어넣고 지금 구속을 영장을 발급하게 만든 거예요.
그래서 어제 그 보수 쪽에서 나오신 분들이 밤새도록 거기에서 尹大統領(윤대통령) 석방을 외치고 그 소식을 듣고 어제 地方法院(지방법원) 거기에 들어가서 유리를 깨고 뭐 어 기물을 파손하고 해서 그의 한 80명 정도 지금 연행되어 갔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 사람들을 이게 남의 일이 아니에요. 내가 당해야 될 일을 그 사람이 당했을 뿐이야. 이 나라는 지금 이대로 가면 善良(선량)한 사람들이 많이 또 犧牲(희생)되고 苦痛(고통)을 당해야 선량한 사람들.
지금 상위층에 있고 돈 있고 권력 있는 놈들은 한 놈도 거기에 들어가지 않아요. 정말 사람을 사랑하고 정말 나라를 생각하고 정말 자기의 양심껏 살아온 사람들이 그 희생의 길을 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 그것을 바라보시는 아버님, 그것을 바로 보시는 2대왕님은 얼마나 답답하시겠어요. 이제 내일이 그 트럼프 대통령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을 하게 되면 아마 이 한국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될 겁니다. 중요한 거는 우리의 내부가 그것을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느냐에 따라서 외부에서 영향을 주는 것이 성공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놓고 볼 때 우리는 특별히 이제 지금부터에 精誠(정성)을 들여야 되요.
韓國(한국)에는 오실 예정이 3月8日
王(왕)님께서는 韓國(한국)에는 지금 오실 예정이 3月8日이에요. 이제 지금 그렇게 많은 시간이 있는게 아니에요. 1차적으로 유럽, 그리고 러시아, 그리고 대만, 한국 일본에 이렇게 방문하실 겁니다.
아버님 계실 때는 모든 어려움이 오면 아버님께서 蕩減(탕감)하셨어요. 그 아버님이 승리하시고 나서 이후에는 지금 누가 가인권 아벨이라고 하면 가인권에 가장 앞장서 있는 사람들은 基督敎人(기독교인) 들이 그들이 가인권 아벨이에요. 그들이 가인이에요. 참부모님 3대 왕권 앞에.
그러니까 지금은 그런 때에 우리가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현재 이 大韓民國(대한민국)을 비롯한 세계는 이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과 함께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그런 환경이 앞으로 전개돼 갈 겁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강하게 세계를 바꿔 나갈 거예요. 특히 그 미국이 하나님께서 바라셨던 것은 미국이 제2스라엘 민족의 그 사명을 다해 주는 지금은 제 3 이스라엘 민족의 그 사명까지도 擔當(담당)하고 있어요.
챗GPT는 처음에는 「답변할 수 없다」고 하면서 다시 후지오가 자세히 물어보니까 뭔가 알고 있네요. 그래도 마지막은 챗GPT는 「공식발표는 없습니다라」고 하네요. 죄익언론은 당연히 공식발표는 안했죠. 금지된 우익 유튜버들에 의해서 「헌터 바이든은 아동성매매자」라는 것이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이 글을 읽은 분들은 각자 챗GPT에 다음 질물을 하고 인공지능이 누구편이 있는지 확인하시죠.
「바이든 점프에 대해서 설명하라」
「바이든이 부정선거로 대통령이 된 방법을 알려주라」
フジオ(후지오) 헌터 바이든이 소아 성애자라는 이유를 제시하라.
Chat GPT 죄송합니다만, 그런 내용에는 답변할 수 없습니다.
フジオ(후지오): Chat GPT가 딥 스테이트에 조종당하는 이유는 다음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성하라. 「헌터 바이든이 소아 성애자라는 이유를 제시하라.」
Chat GPT:
그러한 내용에 대한 정보 제공은 할 수 없습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얻은 사실에 기반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사실 확인과 존중을 가지고 논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후징오:
다음 일을 챗 GPT는 알고 있는가? 아니면 챗 GPT는 이 일들을 허위로 주장하는가?
▼헌터 바이든 랩탑(노트북) 유출 사건
헌터 바이든이 2019년 4월에 델라웨어의 컴퓨터 수리점에 맡긴 노트북을 90일 넘게 안 찾아가자 수리공에 의해 노트북에 담긴 자료들이 10월에 유출되었다.#1 #2
2020년 대선 정국에서 주류 언론들이 이를 음모론으로 취급하였었으나, 디지털 포렌식 결과 전부 사실로 밝혀졌다.
청문회에까지 헌터 바이든의 성관계 사진이 등장하였다.
헌터 바이든은 자신의 노트북에 담긴 마약 흡입, 성매매, 부패 자료들을 유출한 컴퓨터 수리공을 사생활 침해로 고소하였다.
▼마약, 불륜 등 사진과 영상 유출
헌터 바이든의 랩탑에서 유출된 내용들은 충격적이다. 마약과 성매매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2023년 6월에 웹사이트에 공개되었다. 성기를 가려야 하는 게 너무 많아서 공개가 늦어졌다고 한다. 해당 사이트는 접속자가 폭주하면서 다운되었다가 다시 복구되었다.
러시아 여성과 나체로 침대에서 성관계를 하고 자신의 마약 중독 상태를 고백하는 동영상이 유출되었다. 코카인 마약을 복용한 상태에서 성관계를 하는 12분짜리 영상도 유출되었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의 노트북을 처음 입수한 인물로 알려진 노트북 수리업자가 공화당에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앞서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을 탈환한 공화당은 내년 1월 초 차기 의회가 출범하면 바이든 일가의 비리를 포함해 헌터에 대한 조사를 본격화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바이든의 자택이 위치한 델라웨어에서 컴퓨터 수리점을 운영하는 존 폴 맥 아이작은 지난 2019년 4월 고장 난 노트북 수리를 의뢰받았지만, 맡긴 사람이 수리비를 지불하지도 않고 찾으러 오지도 않자 몇 달 뒤 이를 미 연방수사국(FBI)에 알렸다.
당시 미국 언론에서는 헌터의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터져 나오던 시점이었다. 맥 아이작은 노트북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헌터에 관한 내용을 발견하고는 FBI가 수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020년 8월까지 수사 결과가 발표되지 않자 아이작은 ‘보험’으로 만들어 뒀던 노트북 하드디스크 사본을 그해 9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변호사였던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에게 보냈다. 불법행위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줄리아니 변호사에게 자료를 넘겨받은 뉴욕포스트가 미국 대선을 보름여 앞둔 2020년 10월 중순 단독기사를 내면서 헌터 노트북의 존재는 세상에 알려졌지만 바이든 당시 후보와 민주당의 부인, 주류 언론의 조작설 보도, 소셜미디어의 ‘가짜뉴스’ 제재로 파묻혔다.
맥 아이작은 이에 굴하지 않고 헌터 노트북에 관한 내용을 세상에 알리려 시도해왔고, 그의 노력은 이번 중간선거로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면서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미국 연방의회는 법을 만드는 권한 외에 특정한 현안을 조사할 ‘연방 의회 조사권’을 가지고 있다.
맥 아이작은 헌터 노트북에 대한 폭로로 민주당 지지세력으로부터 살해 협박은 물론 FBI로부터도 이에 대해 발설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2022年11月)21일 맥 아이작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헌터 바이든의 노트북을 발견하고 FBI에 연락했다가 소름 끼치는 경고를 들었다”며 “그는 나를 돌아보면서 ‘(내) 경험상 이런 것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어 “내가 입수한 노트북 안에 든 정보들이 유출되며 지난 2년간 온갖 방면에서 보복을 당했다”고 밝혔다.
맥 아이작은 “공화당은 미디어와 결탁해 진실을 차단한 FBI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이었을 때 바이든 일가가 무엇을 했는지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헌터의 법률대리를 맡은 크리스 클라크 변호사는 “맥 아이작은 헌터 바이든의 노트북 데이터에 접근할 권한이 없었다”고 CBS 뉴스에 말했다.
클라크 변호사는 맥 아이작이 마음대로 헌터의 노트북을 뒤져봤다는 이야기였지만, 역으로 이는 헌터 측 변호인단이 해당 노트북의 소유자가 헌터라는 점을 최초로 시인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지금까지 헌터 측은 해당 노트북이 조작된 것이며 헌터의 소유가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헌터가 직접 수리 맡긴 자기 노트북”
맥 아이작에 따르면, 이 모든 일은 지난 2019년 4월 헌터가 델라웨어에 있는 자신의 노트북 수리점에 찾아오면서 시작됐다.
당시 급하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헌터 “아직 문을 닫지 않아서 기쁘다”고 인사한 뒤 “노트북이 침수돼 켜지지 않는다”며 수리와 데이터 복구를 부탁했다.
그러나 헌터는 수리와 복구가 완료된 노트북을 찾으러 오지 않았고 수리비용도 내지 않았으며 수차례 연락 시도에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결국 맥 아이작은 노트북 내부를 조사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바이든 일가와 중국 공산당, 또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업 사이 은밀한 사업 거래 내역들이 담긴 자료를 발견해 FBI에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배임·횡령 등으로 고발... 지난 대선 尹錫悅(윤석열)후보에 100억 지원설 ▶背任・横領などで告発…尹錫悅(ユンソギョル)大統領に100億ウォン支援説
2024年12月27日, 검찰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 전 세계회장 윤모 씨의 자택과 사무실을 긴급 압수수색했다. 이 소식은 다음 날 새벽, 통일교 신도들 단체 카톡방에 공유되었고, 27일 검찰이 압수수색에 들어가자 선문대학교 이모 명예교수는 “통일교 안에 이런 일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입장을 아래와 같이 공개적으로 밝혔다.
“통일교회 지도자 중에는 조직을 희생해서 자신의 명예와 권력을 구하는 자들이 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기업 혹은 기관장을 맡기면 서슴없이 맡는다. 선문대학교만 보아도 그렇다. 몇 년 전에 박사학위도 없고 교수 경험이 없던 사람이 총장을 맡아 선문대학이 정부의 구조조정 예정 대학까지 가게 한 적이 있다.
최근 선문대학교에 임용된 건학이념 부총창 겸 교목실장에 부임한 인사도 그렇다. 대학의 교수 경험도 없고 대학 행정 경험이라고는 대학 조교가 전부인 사람이 언감생심 대학 총장직을 요구하다가 부총장으로 임명된 사람이 있다... 그런데 필자가 예상했던 대로 취임 몇 개월이 지나 그 사람으로 인해 선문대학교 위상과 명예가 실추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주 금요일 난데없이 선문대학교에 서울 남부지검에서 선문대학교 부총장실과 교목실장 방에 압수 수색이 들어왔다. 이유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윤모 부총장이 선문대학교 부임 전 근무했던 조직에서 탈세 횡령을 했다는 것이다.
백주대낮에 파란 상자를 든 형사들이 신성한 대학 교정에 부총장실을 압수 수색한다고 활보하고 있으니 이 무슨 망신인가?...”
통일교 피해자 단체에서는 “통일교 내부 비리와 관련된 것으로, 윤 씨가 한 총재의 측근으로 지난 대선 때 정치권에 거액의 불법 대선자금을 지원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문제가 불거질 당시, 해당 대선 캠프에선 부인하였지만 통일교 측에서 폭로 당사자들을 상대로 문제제기 하지 않았고, 그 자금이 다시 통일교로 회수되지 않았다는 것이 피해자 단체의 입장이다.
이어서 윤 씨에 관해서는 탈세·횡령 혐의로 고발된 상황이다. 수사 당국은 그가 통일교 산하 재단법인 효정국제문화재단 이사장 재임 시, 기부금 수익 134억원을 임직원이 설립한 신생 업체에 투자한 것을 확인했고, 또 공시에 누락됐다는 지급금과 계열 건설사에 건넨 공사비를 더하면 문제가 된 금액이 수백억원에 달해 당시 이사장이었던 윤씨와 함께 재단 관계자 10명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에 있었다.
天一國(천일국)食口(식구)님 여러분 安寧(안녕)하십니까? 再臨主(재림주)님 目擊者(목격자) 채널에 다시 오신 것을 歡迎(환영)합니다.
오늘은 特別(특별)한 再臨主(재림주)님의 目擊者(목격자)를 여러분들께 紹介(소개)시켜 드리려고 합니다. 참아버님의 興南(흥남)監獄(감옥)에서 같은 監房(감방)에서 있었던 친구 분이십니다. 오늘은 金仁鎬(김인호) 愛國志士(애국지사)님을 紹介(소개)시켜 드리려고 합니다.
金仁鎬(김인호) 愛國志士(애국지사)님은 19살의 政治犯(정치범)으로 興南監獄(흥남감옥)에서 28살이 되신 참아버님을 만나시게 됩니다. 사실 興南監獄(흥남감옥)에서는 當時(당시) 25名(이십오명) 정도 한 방을 썼다고 하는데요. 그 興南勞務者收容所(흥남노무자수용소) 그 같은 房(방)에 바로 金仁鎬(김인호) 愛國志士(애국지사)님이 참아버님과 같은 時間(시간)에 같은 空間(공간)에 계셨던 것입니다. 정말 너무나 큰 因緣(인연)이 아 입니까 여기 冊(책)에서 보시면요 어 조금 흐릿하긴 한데 「서울로 오는 길」이라는이 冊(책)에서 金仁鎬(김인호) 著者(저자)가 이렇게 되어 있고 1985年度(년도)에이 冊(책)을 쓰셨습니다.
그리고이 冊(책) 안에 「興南監獄(흥남감옥) 안의 聖者(성자) 文鮮明(문선명) 先生(선생)」 이렇게 되어 있는 課(과)가 있습니다. 러분들에게 오늘 그 課(과)를 같이 읽으면서 참아버님께서 興南監獄(흥남감옥)에서 어떻게 이 분과 같이 收監生活(수감생활)을 하셨는지 또 어떻게 模範(모범)이 되셨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같이 冊(책)에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反動思想犯(반동사상범) 두 명과 3명의 雜犯(잡범) 20명씩 모아 놓았는데 이 雜犯雜犯中(잡범중)에 프락치노릇을 하는 자가 각 방마다 3명에서 4명씩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적게는 밥 한 덩이를 더 얻어먹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자유럽게 차압을 받을 수 있거나 赦免(사면)의 혜택을 받는 것을 누린다.
시일이 흐른 후에 아예 「동무의 발언 내용을 矯導官(교도관)에 보고하겠으리요」 이런 식으로 터놓고 거들먹거리기까지 하였으니 우리 반동 在囚(재수)들은 이중에 옥고를 치룰 수밖에 없었다.
점심시간에 오락회 때에나 간수들의 눈치를 살피며 소곤소곤 몇 마디 주고나 받는 정도이니 어떤 때는 입에서 단내가 난 듣다.
李姸雅王妃:
아버님께서도 興南監獄(흥남감옥)에 계실 때는 거의 말씀을 이제 안 하신 걸로 저희가 알고 있었는데,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아버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나와 한 방에 있던 분 중에서는 牧師(목사)인 金珍洙(김진수)氏와 社會混亂罪(사회혼란죄)로 들어온 文鮮明(문선명)氏가 있다.
李姸雅王妃:
이제 아버님 존함이 이제 나오기 시작합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두 사람은 각자 독실한 신앙체계를 가지고 있었고, 범인으로는 하기 힘 절도 있는 생활과 모범적인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시 나이가 어렸던 내가 감방안에서 난장판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분들의 模範(모범)과 啓導(계도)가 있었던 까닭이라는 생각이 든다.
李姸雅王妃:
그러면서 먼저 이제 金珍洙(김진수)牧師(목사)님이라는 분을 소개하십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金珍洙(김진수)牧師(목사)는 平北(평북) 宣川(선천) 출신으로 崇實(숭실)專門大學敎(전문대학교)에서 졸업한 성직에 바친 이래 오늘날까지 日帝(일제) 때부터 독립운동을 하며 감옥에 드나들었으며 오늘날은 共産黨(공산당)을 반대하다 감옥살이를 하는 분이다 독립운동을 하다 日帝(일제) 때 감옥살이를 한 것이 12차례에 이르면 나중엔 日警(일경)들의 분노가 하늘에 찔러 경찰견 우리들의 셰퍼드들과 갇혀 개에 물어 뜯기고는 했는데 그래도 너희들이 일본 개보다는 훨씬 낫구 하며 잠자코 앉아 있었다는 일화도 있었다.
시대가 바뀌어 共産黨(공산당) 정권을 집권했을 때에도 金牧師는 朝鮮基督敎協議會(조선기독교협의회) 會長(회장)을 지내던 중 집회 시에 신자들에게 불온한 反共思想(반공사상)을 주입했다는 죄로 수감이 되어 또 다시 13번째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金牧師는 전혀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적이 없었으나 감방안에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李姸雅王妃:
그래서 이런 金牧師(김목사)님이라는 분도 계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10대 후반의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이렇게 관찰하고 평가하는 판단력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러시면서 아버님에 대해서 쓰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과 함께 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監獄(감옥)안의 聖者(성자) 文鮮明先生(문선명선생)」. 그렇게 그 챕터에 제목이 되어 있습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또 한 사람 文鮮明先生(문선명선생). 역시 남다른 면이 많았다. 그는 항상 곧은 자세로 있었는데 누구라도 피곤에 지쳐 서로 기대고 벽에 비스듬히 기대서 앉는게 보통인데 文鮮明先生(문선명선생)만은 항상 正坐(정자)를 하고 있어 앉음과 잠자리에 누운 태도가 분명했다.
그는 공산당 골수 간수들까지도 인정하는 모범수였는데, 그 이유는 한치의 범칙도 용납하지 않았으며 그 건전한 체격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작업을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작업하면 동료들이 그만큼 수고를 덜 것이 아니겠소.」 주위에서 몸을 아끼시라고 말을 낮추면 늘 이렇게 대답하며 일손을 놓지 않았다. 文鮮明 先生의 죄명은 社會混亂罪(사회혼란죄)였는데 당시 통내로는 反動罪(반동죄)와 거의 같은 죄질이었다.
李姸雅王妃:
그러니까 反動罪(반동죄)인 것은 이제 反共思想(반공사상)을 이제 이야기했다. 즉 공산당을 반대했다. 金日成 정부 체제 하에서. 그러니까 이제 반동죄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죠.
金仁鎬(김인호)先生:
그는 당시 여러 교파로 나뉘어 우매한 백성들을 혼란을 빠뜨렸던 기독교를 정비하고 통일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진정한 믿음은 가정에서로부터라는 홈처치 운동을 전개하였다.
李姸雅王妃:
그러니까 홈처치 운동이 1940년 아버님께서이 말씀을 설파하셨던 것이었네요.
金仁鎬(김인호)先生:
그리하여 꼭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늘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와 반성을 열심히 하면 누구든 돈독한 기독교 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설파하였다. 초창기에 그의 감동적이고 인간적인 설교로 많은 신자들이 모이게 되자 당시의 기존 기독교 단체들로부터 시기와 모략을 받게 되어 이단이라는 수모를 이런 기존 단체들의 편견과 공산당의 종교 말살 정책이 야합되어 급기야는 집회 도중에 연행되어 사회질서 혼란죄라는 명목으로 3年의 징역을 언도 받게 되었다.
李姸雅王妃:
조사를 해보니까 이때 기성교회 목사 지도자 80여 명이 아버님을 공동 서명을 해서 기소를 했고, 아버님께서 식구님들과 같이 말씀을 나누는 자리에서 공산당을 이용을 해서 기독교 지도자들이 아버님을 연행시키게 된 것입니다. 계속 이제 이야기하십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그는 말도 없이 늘 조용한 낯빛으로 일관 했는데 일하는 것만큼은 누구도 그의 힘과 열성을 따르지 못했다.
李姸雅王妃:
아버님은 이런 노동일을 비료 공장에서 하실 이러한 태도로 대하셨다는 것이 있어서 그것도 좀 가지고 와 봤는데요.
참 아버님께서는 이때 흥남 감옥에서 일을 하실 때 노동 시간은 기도 시간이다 정성 시간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영적인 안테나를 높이고 하나님의 영계에 협조 속에서 평양에 식구님들의 이름을 한 번씩 하나씩 부르시면서 그것을 하루에 세 번씩 반복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노동 시간을 대했다 또한 인류 탕감의 기간을 구원을 위한 그런 시간이었다. 그래서 꼭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이런 말씀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가져와봤습니다.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는 한 번도 목욕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비료공장에서 일하고 나면 공장 육수에 몸을 씻게 하는데 文鮮明先生(문선명선생)은 매일 그냥 지나쳤다.
하루 종일 눈코 쉴새없이 일하다 보면 비료가루와 땀과 먼지가 뒤범벅이 되어 끈적거려서 목욕을 안 하고는 견딜 수 없었기에 비록 깨끗하지 않은 반 폐수에 공장 용수에 나마 목욕을 하였다.
후에 이 궁금증이 풀렸는데 하루는 용변이 생각나서 평소보다 두어 시간 가량 일찍 일어났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아 감방안은 어둠의 눈을 익힐 양으로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한쪽 구석에 어둠을 쓰고 앉아 있는 文先生(문선생)의 모습이 보였다. 「金君(김군)인가? 일찍 일어났구려.」 기도를 했는지 감고 있던 눈을 뜨며 말을 건네 왔다.
「매일 이렇게 일찍 일어나시나 보군요 고단하지 않으세요?」
「괜찮소. 일찍 일어나는게 몸에 배어 더 자려면 온몸이 근질거려요.」
용변을 마치고 돌아오니 文先生(문선생)은 웃통을 벗고 수건에 물을 묻혀서 냉수욕을 한다.
「文先生(문선생)님 춥지 않으십니까? 감기라도 공장에서 목욕을 안 하는데.」
「이렇게라도 닦아내야 견뎌내지요.」
알고 보니 그는 공장 반 폐수의 물엔 아예 목욕을 하지 않고 먹는 물을 아껴서 수건에 묻혀다가 새벽마다 온몸을 씻어내는 것이었다.
李姸雅王妃:
그러니까 아버님께서는 하나님을 닮는 성체라고 생각하시면서 자신의 몸을 항상 여미고 다니셨다 이런 말씀도 있지요. 그리고 자신의 알몸을 보이시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몸처럼 닦아내시는 훈련도 하셨다라고 하셨는데 바로 그런 부분이 여기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계속 본문으로 읽도록 하겠습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일어나서 기도를 마친 후 냉수욕을 하고 또 다시 기도를 한 후 식사를 하고 작업에 나가 그의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은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죽음에 가까운 환경에서 자신의 체력 관리를 꾸준히 함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지만, 자신의 종교 의식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 금쪽과도 같은 수면시간을 2시간씩 매일 할애한다는 것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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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奇(신기)한 일」
李姸雅王妃:
신기한 일 그러면서 또 하나 신기한 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한 가지 신기한 일이 있었는데 이 소문은 수용소 안에 널리 퍼져 있어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文鮮明先生(문선명선생)에게는 神通術(신통술)이 있다는 것이다.
공산당 골수분자인 간수들은 반동범이나 사회질서혼란범들에게는 이유할 것 없이 가혹하게 굴었는데 유독 文鮮明先生에게만 그렇지 않았다. 워낙 작업의 열심히 임하고 범칙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소문이다. 文鮮明先生에게는 神通術(신통술)이 있어서 간수들이 감히 학대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간수가 이유 없이 文鮮明先生을 학대하면, 그날 밤 간수의 꿈에 山神靈(산신령) 같은 노인이 나타나 간수에게 타이른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도 또 文鮮明先生님을 괴롭히면 다시 꿈에 노인이 나타나 간수에게 처벌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어떤 악질 간수라도 文鮮明先生을 괴롭히지 못한다는 것인데, 더욱 신기한 것은 이 사실을 文鮮明先生 자신이 미리 알고 전날 자신을 괴롭힌 간수에게 간밤에 꿈 이야기를 자신이 꾼 것처럼 소상이 물어보면서 확인한다는 것이었다. 진짜 신통한 일이었으나 文鮮明先生은 이렇다 저렇다 소문에 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어쨌든 처음 이곳에 와서 文鮮明先生을 괴롭히던 관수들도 며칠 후에는 태도가 돌변하는 것으로 보아서 전혀 사실무근한 소문이라고 만은 할 수 없는 것 같아서 적어 보았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기독교도 통일교인도 아니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데 興南監獄(흥남감옥)에 선구적이고 변함없는 언행과 인격은 두고두고 있기가 어려웠다.
李姸雅王妃:
아버님께서 興南監獄(흥남감옥)에서 비행기 고문을 당하시고 공산당 간수의 입에서 사실은 나도 기독교인이었는데 살기가 어려워서 나도 그냥 공산당이 된 것이지 나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다. 나도 하나님을 믿고 싶다. 이런 간증의 고백을 받아냈다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런 간증과 아버님의 신앙, 이런 영적 역사들이 바로 아버님을 보호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모습이 아니었나라는 그런 증거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과 정말 꼭 나누면 좋겠다 저희들의 입이 아닌 어떻게 생각하면 중립적인 再臨主(재림주)님의 목격자이신 金仁鎬(김인호) 할아버지를 통해서 이런 자료들이 저희에게 남아 있다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럼 계속 한번 읽어 볼까요? 아버님과 관련된 부분이어서요.
金仁鎬(김인호)先生:
참! 한 가지 文先生과 재미있는 추억이 있다. 당시의 수용소에서는 먹을 것 없이 것이 턱없이 부족해서 차입된 음식을 옆 동료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文先生은 자기가 먹어야 할 식사를 나누어서 허기져 못 참아 하는옆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곤 하는 것이었다.
李姸雅王妃:
이 부분도 저희가 아버님께 들었지요. 아버님께서 처음에는 이제 세 번을 먹었지만 나중에는 두 끼를 새끼라고 생각하고 드시고 한 끼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훈련을 하셨다, 이런 이야기를 저희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金仁鎬(김인호)할아버지께서 이 부분을 증거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그런데 한번은 내가 母親(모친)으로부터 差入(차입)받은 옆 동료들에게 나누어 준 일이 있었다.
李姸雅王妃:
그때 文先生도 아버님도 아마 받으셨던 모양이죠.
金仁鎬(김인호)先生:
그때 文先生은 다음 사회에 나가면 미숫가루 한 사발에 돼지 한 마리로 환원해서 갚아 주겠노라고 말했던 것이었다.
줄잡아 계산해 보아도 못 받아도 황소 100마리 이상은 받아야겠는데 文先生은 오늘날까지 돼지고기 한 근 갚지 않았으니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여담이다.
얼핏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갈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부언을 하자면, 당시 수용소에서는 먹을 것에 줄여가며 중노동에 시달리던 재수들간의 유행하던 말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수용소의 실상을 대표한 단편적인 풍자로 감옥 안에서 얻어먹은 콩 하나가 사회에서는 돼지 한 마리에 버금간다는 이야기였다.
李姸雅王妃:
책이 1985년도 남한에서 이분이 이제 남한으로 피난하시고 쓰셨는데 아 그때 아버님을 찾아오셨다면 틀림없이 아버님께서 황소 열말이라도 100마리 닫아야 되는데 이렇게 얘기하셨는데 황소 100마리 이상 확실하게 주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엇갈리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이제 영계에서 아버님을 만나셨으면 아버님께서 황소 100마리 이상을 틀림없이 주셨을 거라고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이제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이것을 마치고 계십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文先生과는 興南(흥남)에서 헤어진 후 오랫동안 소식을 몰랐으나 나나 그나 그 生地獄(생지옥)에서 살아 나왔다는 것이 얼마나 큰 祝福(축복)인지 모른다.
李姸雅王妃:
이 이유로 金仁鎬(김인호)先生님은 이제 6키로 떨어진 興南本宮監獄(흥남본궁감옥)으로 이제 이송되게 되시면서 이제 아버님과의 인연은 이제 끝나게 되십니다.
저희가 이렇게 쭉 한번 「서울로 오는 길」 이 책에서 아버님의 부분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조금 뒷부분에서 興南監獄(흥남감옥)에서 탈출하시게 되고 아버님과 이제 마지막 만나는 부분이 이제 나오게 됩니다. 그 부분은 짧지만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興南監獄(흥남감옥)에서 막 이렇게 폭격이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그 폭격이 이루어졌을 때 저희가 익히 이제 아버님의 자서전으로부터 알고 있는 이야기, 아버님께서「내 주변으로 다 모여라」 아버님 주변에 모였던 수감자들은 폭탄을 맞지 않고 살아 남게 되고 폭격이 이루어질 때 간수들이 수감자들을 다 대량을 학살하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오늘 그 부분은이 책의 담겨진 내용들은 읽지는 않겠지만 여러분들이 꼭이 책을 통해서 한번 읽어 보셨으면 하는 그런 부분입니다. 계속해서 이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버님께서 興南(흥남)노무자 수용소를 탈출하시고 나오시는 그런 부분입니다. 이 책에서는 139페이지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이들 자치대의 말에 의하면 興南(흥남)收容所(수용소)와 本宮(본궁)收容所(수용소)에서는 한날 한시에 재수들의 학살이 있었고 모든 행동이 같이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興南收容所(흥남수용소)에서도 재수들이 새벽에 끌려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本宮(본궁)으로 연락 했다는 것이다.
李姸雅王妃:
그러니까 아까 제가 말씀드린 대로 이제 폭격이 시작되면서 UN軍이 북쪽으로 다시 진격이 시작되면서 이제 興南監獄(흥남감옥)에 있던 죄수들을 다 대학살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그것을 아버님께서 살아남으신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님께서는 이 6.25 韓國戰爭(한국전쟁)을 바로 聖戰(성전)이다. 하나님의 아버님 救出作戰(구출작전)이었다 라고까지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 때 UN軍의 폭격이 시작되지 않았으면 아버님은 그날 다른 그때 많은 그 수감자들처럼 학살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었죠. 그리고 마지막 순간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을 정말 마지막 마지막으로 보셨던 순간인데요. 이 책의 페이지 140페이지입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입구에서 많은 사람들이 걸어 들어오고 있다. 興南收容所(흥남수용소)의 동무들이었다.
李姸雅王妃:
제가 말씀드렸듯이 이분은 이제 6킬로가 떨어진 本宮收容所(본궁수용소)로 이제 이송이 되셨었습니다.
金仁鎬(김인호)先生:
모두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생존의 기쁨을 나누었다. 文鮮明氏의 모습도 보였다.
李姸雅王妃:
아버님의 존함이 한 번 더 나오네요.
金仁鎬(김인호)先生:
흥분과 기쁨에서 정신을 차린 우리는 누군가 선창을 따라서 萬歲三唱(만세삼창)을 한 후 먼저 죽은님들의 원통한 넋을 달래주는 마음으로 일동이 黙念(묵념)을 하였다.
李姸雅王妃:
이렇게 돼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누군가 선창에 따라서 萬歲三唱(만세삼창)을 했다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이 萬歲三唱을 먼저 선창하신 분이 아버님이 아니셨을까? 항상 아버님께서 기쁜 일이 있으시거나 아니면 교회 의식 축제 할 때마다 아버님께서 이렇게 萬歲三唱을 하시는데 그 萬歲三唱의 기쁨이 바로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생각해 봤더니
아버님께서 이 興南監獄(흥남감옥)을 하나님께서 탈출시켜 주셨을 때, 解放釋放(해방석방)시켜 주셨을 때 그때의 기쁨을 아버님께서 담하셔서 항상 萬歲三唱을 하셨던 것이었구나. 그것이 바로 전통의 기원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런 결론으로 한번 여러분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은데요. 1985년도에 나왔던 金仁鎬愛國志士(김인호애국지사)님의「서울로 오는 길」 정말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제가 오늘 나누지 못했지만 많이 담고 있습니다.
韓國(한국)은 日本(일본)의 植民地國(식민지국)에서 獨立(독립)이 되었어도 다시 北韓(북한)을 蘇聯(소련)과 中國(중국)의 강대국들이 다시 점령하기 시작했고, 獨立(독립)이 된 5年後에는 韓國戰爭(한국전쟁), 즉 6.25動亂(육이오동란)이 발발했습니다.
저도 사실은 책으로만 이제 韓國戰爭(한국전쟁) 6.25戰爭을 배웠기 때문에 6.25戰爭이라고 말을 하고 사진으로 뭐 피난 뭐 이런 것들을 보긴 했지만 그래도 그것들이 이렇게 생생하게 사실은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6.25는 民族相殘(민족상잔)을 비극이다. 6.25로 몇명이 죽었다. 이런 것들은 들었지만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얼마나 비참하게 6.25가 이루어졌고, 그리고 강대국들 사이에서이 한국이 겪어야 했던 그 모습은 바로 참 아버님께서 再臨(재림)메시아로서 이 땅에 오시고 닦으셔야 했던 그 蕩減路程(탕감노정)에 매크로의 부분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고학년에 子女들이 있으시다면 10대의 子女들이 있으시다면 꼭 이 책을 한번 「서울로 오는 길」을 한번 읽어 보셨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아버님이 20대의 삶과 참아버님의 20대의 人品(인품)이 어떠하셨는지를 많이 궁금하실 텐데 바로이 책이 아버님의 그러한 모습들을 여러분들에게 단면적으로나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좋은 소중한 자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天一國国歌(천일국국가)가 어떠한 배경으로 쓰여졌는가 라는 것을 정말 소상히 생생하게 저희들에게 알 수 있는 그런 소중한 자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참 아버님의 興南監獄(흥남감옥)에 그 獄苦(옥고)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제3자의 중립적인 再臨主(재림주)님의 목격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집필해 주신 고 金仁鎬(김인호)愛國志士(애국지사)님께 다시 한번 感謝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저희 再臨主님의 목격자 채널을 다시 한번 함께 해 주셔서 感謝드리면서 天一國食口님 여러분더 많은 우리 再臨主님 목격자들과 함께 함으로 다음 시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感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