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0

🚢「生命의 航海가 始作되었다」 (日本語+日韓字幕, 10分)

 🚢「생명의 항해가 시작되었다」
(일어음성+일한자막, 10분)


📝參考(참고)

✎레너드 라루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 1914년 1월 14일 ~ 2001년 10월 14일) 선장은 흥남 철수 작전 당시 14000명의 피난민을 구했던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이었다.

✎기네스북 인증

흥남철수작전 당시 미국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 호가 북한 피란민 14,000명을 구출한 기록을 한척의 배로 가장 많은 생명을 구출한 세계기록’으로 인증


生命(생명)의 航海(항해)가 始作(시작)되었다

60年前 韓國(한국)에서 일어났던 잊혀진 이야기가 2004年 5月 기네스북에 記錄(기록)되었다.


言論(언론)은 이 事實(사실)에 대해 一齊(일제)히 報道(보도)하기 시작했고, 美國(미국)의 한 言論(언론)이 이렇게 表現(표현)했다.


「奇蹟(기적)의 배, 메러디스 빅토리號(호)」


지금으로 붙터 60年前인 1950年 美國의 民間商船(민간상선)인 메러디스 빅토리號는 戰爭(전쟁)에 參戰(참전)하라는 命令(명령)을 받는다.


그 戰爭(전쟁)은 다름아닌 우리(韓國)의 아픈 歷史(역사)인 韓國戰爭(한국전쟁) 이었으며, 1950年9月15日 仁川上陸作戰(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메러디스 빅토리號는 韓國戰爭(한국전쟁)에 參戰(참전)하게 된다.


과연 이 한 隻(척)의 배에게는 어떤 運命(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1950年6月25日에 勃發(발발)한 터진 戰爭은 1950年12月, 어느덧 겨울에 접어들고 있었다. 鴨綠江(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으며 統一(통일)이 가까워졌다는 希望(희망)도 暫時(잠시), 北韓軍(북한군)과 中共軍(중공군)의 人海戰術(인해전술)에 유엔軍은 撤收(철수)를 시작했고 차가운 눈보라 속의 興南(흥남) 埠頭(부두)는 避難民(피난민)과 軍人(군인)들로 가득했다.


興南地域(흥남지역)을 지키고 있던 유엔軍(군)은 撤收(철수)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1950年12月20日19時10分 메러디스 빅토리號는 興南撤收命令(흥남철수명령)을 받고 急하게 興南(흥남)外港(외항)에 到着(도착)하였다.


메러디스 빅트리號는 興南港(흥남항)에 碇泊(정박)하지 않은 채로 다음 命令(명령)을 기다리고 있었고. 라루 선장과 러니 事務長(사무장)은 撤收中(철수중)인 興南港(흥남항)을 바라보고 있었다.
港口에는 鴨綠江을 넘어 도망처오는 避難民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북적거리다
어수선하게 들끓다
be crowded


눈 덮힌 언덕배기로는 興南市街(흥남시가)에 砲彈(포탄)들이 비 오듯 쏟아졌고 興南市街地(흥남시가지)는 그야말로 生地獄(생지옥)이 따로 없어 보였다.


避難民(피난민)들은 허리까지 차오는 바닷물까지 나와 懇切(간절)한 表情(표정)으로 碇泊(정박)한 배들을 바라 보고 있었다.


그들 바로 뒤에는 北韓軍과 中共軍(중공군)이 밀어 닥치고 있었고 앞에는 오직 茫茫大海(망망대해)만이 펼쳐져 있었다.


그들에게는 漸漸(점점) 어두운 運命(운명)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드리우다
아래로 처지게 늘어뜨리다.


죽거나. 혹은 捕虜(포로)가 되거나.


1950年12月22日아침6時50分, 機械化部隊(기계화부대) 上陸艇(상륙정)이 千餘名의 軍人에게 供給(공급)할 수 있는 戰鬪食糧(전투식량)을 옮겨 주었다. 라루 船長(선장)은 戰鬪部隊員(전투부대원)들을 태우고 곧 興南港(흥남항)을 떠나게 될 것으로 斟酌(짐작)돼 있었다.


짐작
斟酌하다
어림쳐서 헤아리다
guess


雙眼鏡(쌍안경)으로 비춰진 避難民(피난민)들. 그들이 오직 할 수 있었던 건 茫然自失(망연자실)한 表情(표정)으로 茫茫大海(망망대해)를 바라보는 것 뿐.


라루船長(선장) 역시 수많은 避難民(피난민)들의 危殆(위태)로운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안타까운 마음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위태
危殆롭다
마음을 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보기에 온전하지 않거나 危險하다
risky
危機に瀕している


1950年12月12日17時30分,美陸軍(미육군)10軍團 (군단)參謀(참모)들이 乘船(승선)하였고 그들과 船長(선장) 및 幹部(간부) 船員(선원)들은 緊急(긴급)會議(회의)를 召集(소집)하였다.


「大部分(대부분)의 船舶(선박)과 UN軍의 相當數(상당수)가 이미 興南港(흥남항)을 떠났습니다. 지금 興南埠頭(흥남부두)에 남아있는 배中의 한 대가 메러디스 빅토리號입니다.」


「美陸軍(미육군) 3師團(사단)만이 防禦線(방어선)을 지키고 있습니다. 早速(조속)한 撤收(철수)가 要求(요구)됩니다.」


「興南撤收作戰(흥남철수작전)도 거의 막바지입니다. 船長(선장)님께서는 最終(최종) 防禦任務(방어임무)를 맡은 美陸軍(미육군) 3師團(사단)의 軍人(군인)과 裝備(장비)를 船積(선적)할 準備(준비)를 早速(조속)히 하시면 됩니다」


「남아있는 避難民(피난민)은 몇 名 程度입니까?」


「大略(대략) 3萬5千名程度로 推定(추정)됩니다.」


「避難民(피난민)이 脫出(탈출)할 수 있는 배가 남아있습니까?」


「없습니다.남아있는 軍需物資(군수물자)도 抛棄(포기)한 狀況(상황)이고, 共産軍(공산군)의 使用(사용)을 막기 爲(위)해 爆發(폭발)시킬 豫定(예정)입니다. 共産軍(공산군)이 興南住民(흥남주민)들에게 UN軍을 도와줬다는 名目(명목)으로 모조리 銃殺(총살)하겠다고 豫告(예고)하고 있습니다.」


「時間(시간)이 없습니다. 船長(선장)님은 軍人(군인)들을 태우고 豫定(예정)대로 興南港(흥남항)을 빠져나가시는게 最善(최선)의 選擇(선택)이라 생각됩니다」


무거운 對話(대화)가 進行(진행)되는 동안 빅토리號의 幹部(간부)船員(선원)들은 숨을 죽이고 이들의 對話(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메러디스 빅토리號의 船長(선장) 제러드 라루는 斷乎(단호)하게 말했다.


「저들을 태웁시다. 될 수 있는 한 많이 태웁시다」


貨物運搬用(화물운반용)으로 建造(건조)된 메러디스 빅토리號는 12人用 船室(선실)밖에 없었고, 船員(선원)들도 48名 뿐이었다. 數千名을 태웠다간 災殃(재앙)을 갖여올 可能性(가능성)이 컸다. 300여통의 航空油(항공유)까지 싣고 있던 터라 불꽃이라도 튀는 날에는 배를 송두리째 날려버릴 危險(위험)까지도 있었다.



자리
a site


1950年12月22日 金曜日 밤 21時30分 메러디스 빅토리號에 避難民(피난민)들의 乘船(승선)이 시작되었다.


船倉(선창)으로 샐 수 없는 北韓(북한)住民(주민)들이 떼 지어 몰려들었다.



여럿이 함께 모여 있는 무리


모든 틈새사이까지도 避難民(피난민)들을 밀어넣었다. 船艙(선창)을 칸막이로 막도 또 때웠다.


숨쉴 듯 空間(공간)조차 모자를 정도로「이제 그만 !」이라는 외침이 들릴 것 같았지만 그 날 밤이 다 가도록 들려오지 않았다.


1950年12月23日 아침 11時10分, 모든 倉庫(창고)는 가득 찼고 甲板(갑판)에는 사람들로 넘쳤났다.


7600톤의 鋼鐵(강철)배안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고 있었고 不可能(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乘船(승선)해 있었다.


10時間30分만에 그렇게 14000여명의 無辜(무고)한 生命(생명)들은 救援(구원)을 向(향)해 乘船(승선)하였다.


機雷探知機(기뢰탐지기)도 없기에 機雷(기뢰)에 依(의)해 沈沒(침몰)할 수 도, 러시아 潛水艇(잠수정)에 依(의)해 擊沈(격침)당할 수도 있었고, 단 한번의 輕微(경미)한 事故(사고)로 숨쉴뜸도 없는 空間(공간)에 물이라고 차오른다면 14000名 모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직 埠頭(부두)에는 많은 避難民(피난민)들이 있었고 그들을 생각한다면 단 한名이라도 더 태우는 것이 그들로서는 最善(최선)의 選擇(선택)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歷史上(역사상) 가장 偉大(위대)한 生命救出作戰(생명구출작전)과 歷史上(역사상) 最惡(최악)의 大慘事(대참사) 사이에서 그렇게 航海(항해)는 시작되었다.


메러디스 빅토리號는 甲板(갑판)에 몰려 있던 사람들에게 얼음같이 찬 물보라를 끼얺으며 거친 東海(동해)를 向(향)해 出航(출항)하였다.


끼얹다
pour
shower


물보라
물결이 바위 따위에 세게 부딪치거나 솟구칠 때, 사방으로 흩어지는 잔물방울
a spray
a splash


神經(신경)이 痲痺(마비)될 정도의 추운 날씨에 눈보라도 치고 있었다.

눈보라
거센 바람에 불려 드세게 휘몰아치는 눈
snowstorm
blizzard


甲板(갑판)위의 많은 사람들은 얇은 옷을 입고 있었으며 추위에 떨고 있었다. 배에는 飮食(음식)도 물도 電氣(전기)도 없었지만 그들이 견디낼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 대한 意志(의지)와 慰安(위안), 自由(자유)에 대한 希望(희망)이었다.


삶과 죽음의 境界線(경계선)에서 두려움에 가득 차 있던 메러디스 빅토리號에 새로운 生命(생명)이 태어났고 避難民(피난민)들 역시 새로운 生命(생명)에 대한 敬畏感(경외감)에 두려움은 사라져갔다.


놀랍게도 航海(항해) 途中(도중) 4名(명)의 아이가 더 태어났다.


어떠한 危機(위기) 狀況(상황)에서도 沈着(침착)했던 避難民(피난민)들과 다섯名의 新生兒(신생아)들을 보라보며 한 乘務員(승무원)은 이렇게 말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奇蹟(기적)이다」


大幸(대행)스럽게도 1950年 크리스마스의 東海(동해)는 큰 波濤(파도)없이 잔잔하였으며 메러디스 빅토리號는 巨濟島(거제도)를 向(향)했다.


1950年12月25日 크리스마스, 마침내 메러디스 빅토리號는 巨濟島(거제도)에 도착하였다.


結局(결국)6時間30分만에 避難民(피난민)들은 모두 上陸艇(상륙정)에 옮겨 탔고 72時間 동안의 숨막히는 航海(항해)는 避難民(피난민)들과 船員(선원)의 安堵(안도)의 눈빛과 함께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라루 船長(선장)은 마지막 航海日誌(항해일지)를 記錄(기록)하였다.
「航海中(항해중)5名 誕生(탄생)
死亡者(사망자)없음.
14005名 無事(무사)히 上陸(상륙)함.」


戰爭(전쟁)이 끝난 後 레너드 라루 船長(선장)은 20年의 바다 生活(생활)을 마감하고 1954年 修道者(수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훗날 베네딕트 修道院(수도원)의 마리너스 修士(수사)로서 50年間 獻身(헌신)하시다 87歲(세)를 一期(일기)로 2001年10月14日 日曜日 아침 平和로이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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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語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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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배 멜레디스 빅토리호

1950년 한국에서 잊혀진 이야기가 2004년 5월 기네스북에 올랐다. 언론은 이 사실에 대해 일제히 보도를 시작했고 미국의 한 현대는 이렇게 표현했다. 기적의 배 멜레디스 빅토리호」.

1950년 미국의 민간상전인 메레디스펙트리호는 전쟁에 참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 전쟁과는 다르지 않은 한국 전쟁이며 1950년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의 시작과 함께, 멜라디스 빅토리 호는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됐다. 과연 이 1척의 배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1960년 6월 25일 625동란으로 발발한 전쟁은 12월 겨울이 됐다.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희망이 보인 것도 얼마 동안 북한군과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흥남지역을 지키고 있던 유엔군은 철수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차가운 눈이 내리는 가운데 훈남 부두는 피난민과 군인으로 가득 찼다. 

1950년 12월 20일 19시 10분 나라티스 빅토리 작전 명령을 받아 서둘러 흥남의 항구 밖, 외항에 도착했다. 메레디스 빅토리 호는 항구 밖에서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장이 흥남항을 보면 도망 온 피난민들로 돌아왔다. 눈으로 덮인 흥남시가에 포탄이 비처럼 내려 흥남시가지는 그야말로 살아 지옥이었다. 피난민은 해변까지 나오고, 허리까지 바다의 물에 잠기면서 간절한 표정으로 밖에서 정박하고 있는 배를 응시하고 있었다. 피난민 뒤에는 북한군과 중공군이 밀려오고 있어 피난민 앞에는 큰 바다만 있었다. 그들에게는 점점 어두운 운명의 그림자가 있었다. 죽을 것인가 포로가 될 것인가. 

1950년 12월 22일 아침 6시 50분 멜라디스빅토리호는 기계화부대 상륙정에 전투식료를 옮기고 마쳤다. 라루 선장은 선두대원을 태우고 바로 흥남항을 출발할 것으로 보였다. 라루 선장이 쌍안경으로 흥남항을 보니 피난들이 단지 멍하니 나를 잊은 표정으로 큰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위기에 처한 피난민을 보고 밖에 없는 선장에게 애틋한 생각이 점점 커져 갔다. 

12월 12일 17시 30분 육군참모들이 승선하자 선장은 간부와 선원들의 긴급회의를 열었다. 

육군 선박은 거의 흥남항을 떠났다. 남아 있는 것은 이 메디디스 빅토리호 일척뿐입니다. 육군 제3사단이 방어선을 지키고 있는 지금, 신속한 철수를 부탁드립니다. 철수작전은 이것으로 흥남철수작전은 이것으로 거의 끝입니다. 미 육군의 군인과 장비를 쌓으면 빨리 출발되었고. 

피난민은 어느 정도 있는가. 

대체로 3만 5천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피난민이 탈 수 있는 배는 있는가. 

없습니다. 공산군의 사용을 막기 위해 폭파할 예정입니다. 공산군은 흥남주민이 유엔군을 도왔다는 명목으로 총살한다고 예고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선장! 군인을 태우고 예정대로 흥남항을 떠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됩니다. 

선원들은 심각한 대화를 숨을 죽이고 들을 뿐이었다. 제라드 라루 선장은 결정을 내렸다. 

피난민을 실어라. 가능한 한 많이. 

화물 운반용으로 건조된 빅토리호는 48명 선원을 위한 12인용 선실이 하나 있는 것만으로 만약 수천명이 타면 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르고, 300톤 이상의 항공 연료도 쌓여 있고 불꽃에서도 흩어지면 배 마다 날아 버리는 위험까지도 있었다. 

1950년 12월 22일 금요일 밤 21시 30분 피난민들은 메레디스 빅토리 호에 승선을 시작했다. 셀 수 없는 북한 주민들이 배에 밀려왔다. 모든 틈새에 피난민이 밀려났다. '이제 들어가지 말라'는 외침이 들려도 좋을 텐데, 하룻밤 동안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12월 23일 아침 11시 10분, 모든 창고, 그리고 갑판까지 사람으로 넘쳤다. 7600톤의 강철선에는 7600톤의 강철선에는 10시간 반을 걸어 1만4천명의 죄없는 생명이 구원을 구해 승선한 것이었다. 기뢰 탐지기가없는 배였기 때문에 기뢰에 닿으면 폭파 침몰 할 것이며 러시아의 잠수정에 의해 격침되는 일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배를 타지 못하고 부두에 남겨 온 피난민들을 생각하면, 혼자라도 많은 사람을 실어 하고 싶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출작전이 역사상 최악의 대참사의 위험을 저지르면서 생명의 항해가 시작되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보라가 갑판 사람들에게 걸리면서 메레디스 빅토리호는 출항했다. 신경이 마비될 정도로 추운 날씨에 눈보라까지 내려왔다. 간판 위의 사람들은 얇은 옷을 입고 추위에 떨었다. 배에는 음식도 물도 전기도 없었지만, 그들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살기에 대한 의지와 자유에 대한 희망이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메레디스 빅토리 호에 새로운 生命(생명)이 태어났다. 피난민들은 생명에 대한 경외심으로 두려움을 잊었다. 

이 항해의 도중에 또 다른 4개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 5개의 새로운 생활을 지켜보는 몇몇 승무원은 이렇게 말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기적이다'.

다행히도 1950년 크리스마스는 큰 파도 없는 바다를 빅토리 호는 거제도(고제드)로 향할 수 있었다. 195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마침내 메레디스 빅토리호는 거제도(고제드)에 도착했다. 6시간 반 항해 후 피난민들은 상륙정을 타고 섬에 도착해 안도의 한숨을 쉬어 '생명의 항해'를 마쳤다. 

라루 선장은 마지막으로 항해일지 이렇게 기록했다. 
항해 중 5명 탄생. 
사망자 없음.
14005명 무사히 상륙했다. 

전쟁이 끝난 후 라루 선장은 1954년 베네딕트 수도원의 수도사가 되어, 50년간 헌신해, 2001년 10월 14일 일요일 아침, 87세로 평화로운 잠에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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奇跡の船 メレディス ビクトリー号

1950年6月25日、625動乱として勃発した戦争は12月の冬になった。9月の仁川上陸作戦により希望が見えてきたのもつかのま、北韓軍と中共軍の人海戦術により興南(フンナム)地域を守っていた国連軍は撤収を始めざるをえなかった。冷たい雪の降る中、興南埠頭は避難民と軍人でいっぱいになった。

興南(フンナム)の港の外、外港に到着した。

メレディス ビクトリー号は港の外で次の命令を待っていた。船長が興南港を見ると、逃げて来た避難民でごったがえしていた。

避難民達は海辺まで出て来て、腰まで海の水につかりながら懇切な表情で外で停泊している船を見つめていた。

避難民の後ろには北韓軍と中共軍が押し寄せて来ており、避難民の前には大きな海だけがあった。彼らにはだんだん暗い運命の影がさしていた。

1950年12月22日朝6時50分、メレディス ビクトリー号は機械化部隊の上陸挺に戦闘食料を移し終えた。ラルー船長は戦闘隊員を乗せてすぐ興南港(フンナム)を出発するものと思われていた。

ラルー船長が双眼鏡で興南(フンナム)港を見ると避難民達がただ茫然と我を忘れた表情で大海を見つめていた。危機に瀕した避難民を見ているしかない船長に切ない思いがだんだん大きくなっていった。

12月12日17時30分陸軍参謀達が乗船したら、船長は幹部と船員達の緊急会議を開いた。

👮‍♂️国連軍の船舶はほとんど興南(フンナム)港を離れました。残っているのはこのメレディス ビクトリー号一隻だけです。陸軍第三師団が防御線を守っている今、迅速な撤収をお願いします。興南撤収作戦はこれでほとんど終わりです。米陸軍の軍人と装備を積んだら早く出発されたし。

👨‍✈️避難民が脱出する船はあるのか。

👮‍♂️ありません。共産軍の使用を防ぐ為、爆破する予定です。共産軍は興南住民が国連軍を助けたという名目で銃殺すると予告しております。時間がありません。船長!軍人を乗せて予定通り興南港を離れるのが最善と思われます。

船員達は深刻な対話を息を殺して聞くのみであった。

👨‍✈️避難民を乗せろ。できるだけ早く!

貨物運搬用に建造されたビクトリー号は12人用船室が一つあるだけで、もし、数千名が乗れば事故が起こるかも知れず、さらに300トン余りの航空燃料も積んでおり、火花でも散れば船ごと吹き飛んでしまう危険までもあった。

「もう入るな!」という叫び声が聞こえてもいいほどなのに、一晩中、そんな事を言う者はいなかった。

12月23日朝11時10分すべての倉庫、そして甲板まで人であふれた。7600トンの鋼鉄船には10時間半をかけて1万4千人の罪の無い命が救いを求めて乗船したのであった。

機雷探知機の無い船であったので、機雷に当たれば爆破沈没するだろうし、ロシアの潜水艇によって撃沈される事もありえる。そうなれば、隙間なく詰め込められた14000人はすべて死ぬ事も考えられた。

しかし、船に乗れず埠頭に残した避難民達の事を思えば、一人でも多くの者を乗せてやりたかった。

歴史上もっとも偉大な救出作戦が歴史上最悪の大惨事の危険を冒しながらそうして、生命の航海が始まった。

👩‍🏫たくさん人がいて船に乗れなかった人も多かったのに、
私達は苦労せずに乗る事が出来ました。
下を見たら人がいっぱいつまっていて、倉庫もいっぱいで、
「次の階に行け。次の階に行け」と言われて行ったのです。
そしたら、船の汽笛が鳴ったのです。そしたら、みんな突然泣くのです。
「いつ、又、故郷に帰れるだろうか」
下の倉庫は換気扇も一つも無く、人達が出したものがびちゃびちゃになっているです。
船長さんが言われていました。「最後に埠頭で乗せられなかった人達がいた事が残念だ」
私達は知らなかったのです。私達は倉庫の中にいたから。

氷のようい冷たい水しぶきが甲板の人達にかかりながら、メレディス ビクトリー号は出港した。神経が麻痺するほどの寒い天気に吹雪まで打って来た。甲板の上の人達は薄い服を来ており、寒さに震えた。

生と死の境界線で恐ろしさでいっぱいであったメレディス ビクトリー号に新しい生命が生まれた。避難民達は命に対する畏敬の念により、恐ろしさを忘れた。

驚くことにこの航海の途中にさらにもう4つの新しい生命が生まれた。

幸いにも1950年のクリスマスは大きな波もない海をビクトリー号は巨済島(コジェド・거제도)に向かう事が出来た。

6時間半の航海の後、避難民達は上陸艇に乗って島に着き、安堵のため息をつく事により、生命の航海を終えた。

戦争が終わった後、ラルー船長は、1954年、ベネディクト修道院の修道士になり、50年間、獻身して2001年10月14日日曜日の朝、平和な眠りについた。

ブラザー(修道士) 洗礼名 マリナス ラルー
1914年 1月14日 出生
1956年12月25日 告白
2001年10月14日 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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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央日報 2017年6月13日
흥남철수 빅토리 호 선원, 문재인 대통령 만난다

당시 빅토리 호에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와 누나가 타고 있었다.
“우리는 피란민을 태우기 위해 군수 물자를 포기했다. 피란민들 가운데는 어린 아이와 노인, 임산부들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일가족이 흩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우리가 구출해낸 피란민 중에 한국의 새 대통령 가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감격스러웠다. 문 대통령의 부모가 빅토리 호에 타지못했다면 문 대통령은 현재 위치에 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문 대통령은 가족이 거제도에 도착하고 3년뒤인 1953년 1월 거제군 거제면 명진리에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