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命(생명)의 航海(항해)가 始作(시작)되었다
60年前 韓國(한국)에서 일어났던 잊혀진 이야기가 2004年 5月 기네스북에 記錄(기록)되었다.
言論(언론)은 이 事實(사실)에 대해 一齊(일제)히 報道(보도)하기 시작했고, 美國(미국)의 한 言論(언론)이 이렇게 表現(표현)했다.
「奇蹟(기적)의 배, 메러디스 빅토리號(호)」
지금으로 붙터 60年前인 1950年 美國의 民間商船(민간상선)인 메러디스 빅토리號는 戰爭(전쟁)에 參戰(참전)하라는 命令(명령)을 받는다.
그 戰爭(전쟁)은 다름아닌 우리(韓國)의 아픈 歷史(역사)인 韓國戰爭(한국전쟁) 이었으며, 1950年9月15日 仁川上陸作戰(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메러디스 빅토리號는 韓國戰爭(한국전쟁)에 參戰(참전)하게 된다.
과연 이 한 隻(척)의 배에게는 어떤 運命(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1950年6月25日에 勃發(발발)한 터진 戰爭은 1950年12月, 어느덧 겨울에 접어들고 있었다. 鴨綠江(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으며 統一(통일)이 가까워졌다는 希望(희망)도 暫時(잠시), 北韓軍(북한군)과 中共軍(중공군)의 人海戰術(인해전술)에 유엔軍은 撤收(철수)를 시작했고 차가운 눈보라 속의 興南(흥남) 埠頭(부두)는 避難民(피난민)과 軍人(군인)들로 가득했다.
興南地域(흥남지역)을 지키고 있던 유엔軍(군)은 撤收(철수)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1950年12月20日19時10分 메러디스 빅토리號는 興南撤收命令(흥남철수명령)을 받고 急하게 興南(흥남)外港(외항)에 到着(도착)하였다.
메러디스 빅트리號는 興南港(흥남항)에 碇泊(정박)하지 않은 채로 다음 命令(명령)을 기다리고 있었고. 라루 선장과 러니 事務長(사무장)은 撤收中(철수중)인 興南港(흥남항)을 바라보고 있었다.
港口에는 鴨綠江을 넘어 도망처오는 避難民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북적거리다
어수선하게 들끓다
be crowded
눈 덮힌 언덕배기로는 興南市街(흥남시가)에 砲彈(포탄)들이 비 오듯 쏟아졌고 興南市街地(흥남시가지)는 그야말로 生地獄(생지옥)이 따로 없어 보였다.
避難民(피난민)들은 허리까지 차오는 바닷물까지 나와 懇切(간절)한 表情(표정)으로 碇泊(정박)한 배들을 바라 보고 있었다.
그들 바로 뒤에는 北韓軍과 中共軍(중공군)이 밀어 닥치고 있었고 앞에는 오직 茫茫大海(망망대해)만이 펼쳐져 있었다.
그들에게는 漸漸(점점) 어두운 運命(운명)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드리우다
아래로 처지게 늘어뜨리다.
죽거나. 혹은 捕虜(포로)가 되거나.
1950年12月22日아침6時50分, 機械化部隊(기계화부대) 上陸艇(상륙정)이 千餘名의 軍人에게 供給(공급)할 수 있는 戰鬪食糧(전투식량)을 옮겨 주었다. 라루 船長(선장)은 戰鬪部隊員(전투부대원)들을 태우고 곧 興南港(흥남항)을 떠나게 될 것으로 斟酌(짐작)돼 있었다.
짐작
斟酌하다
어림쳐서 헤아리다
guess
雙眼鏡(쌍안경)으로 비춰진 避難民(피난민)들. 그들이 오직 할 수 있었던 건 茫然自失(망연자실)한 表情(표정)으로 茫茫大海(망망대해)를 바라보는 것 뿐.
라루船長(선장) 역시 수많은 避難民(피난민)들의 危殆(위태)로운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안타까운 마음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위태
危殆롭다
마음을 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보기에 온전하지 않거나 危險하다
risky
危機に瀕している
1950年12月12日17時30分,美陸軍(미육군)10軍團 (군단)參謀(참모)들이 乘船(승선)하였고 그들과 船長(선장) 및 幹部(간부) 船員(선원)들은 緊急(긴급)會議(회의)를 召集(소집)하였다.
「大部分(대부분)의 船舶(선박)과 UN軍의 相當數(상당수)가 이미 興南港(흥남항)을 떠났습니다. 지금 興南埠頭(흥남부두)에 남아있는 배中의 한 대가 메러디스 빅토리號입니다.」
「美陸軍(미육군) 3師團(사단)만이 防禦線(방어선)을 지키고 있습니다. 早速(조속)한 撤收(철수)가 要求(요구)됩니다.」
「興南撤收作戰(흥남철수작전)도 거의 막바지입니다. 船長(선장)님께서는 最終(최종) 防禦任務(방어임무)를 맡은 美陸軍(미육군) 3師團(사단)의 軍人(군인)과 裝備(장비)를 船積(선적)할 準備(준비)를 早速(조속)히 하시면 됩니다」
「남아있는 避難民(피난민)은 몇 名 程度입니까?」
「大略(대략) 3萬5千名程度로 推定(추정)됩니다.」
「避難民(피난민)이 脫出(탈출)할 수 있는 배가 남아있습니까?」
「없습니다.남아있는 軍需物資(군수물자)도 抛棄(포기)한 狀況(상황)이고, 共産軍(공산군)의 使用(사용)을 막기 爲(위)해 爆發(폭발)시킬 豫定(예정)입니다. 共産軍(공산군)이 興南住民(흥남주민)들에게 UN軍을 도와줬다는 名目(명목)으로 모조리 銃殺(총살)하겠다고 豫告(예고)하고 있습니다.」
「時間(시간)이 없습니다. 船長(선장)님은 軍人(군인)들을 태우고 豫定(예정)대로 興南港(흥남항)을 빠져나가시는게 最善(최선)의 選擇(선택)이라 생각됩니다」
무거운 對話(대화)가 進行(진행)되는 동안 빅토리號의 幹部(간부)船員(선원)들은 숨을 죽이고 이들의 對話(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메러디스 빅토리號의 船長(선장) 제러드 라루는 斷乎(단호)하게 말했다.
「저들을 태웁시다. 될 수 있는 한 많이 태웁시다」
貨物運搬用(화물운반용)으로 建造(건조)된 메러디스 빅토리號는 12人用 船室(선실)밖에 없었고, 船員(선원)들도 48名 뿐이었다. 數千名을 태웠다간 災殃(재앙)을 갖여올 可能性(가능성)이 컸다. 300여통의 航空油(항공유)까지 싣고 있던 터라 불꽃이라도 튀는 날에는 배를 송두리째 날려버릴 危險(위험)까지도 있었다.
터
자리
a site
1950年12月22日 金曜日 밤 21時30分 메러디스 빅토리號에 避難民(피난민)들의 乘船(승선)이 시작되었다.
船倉(선창)으로 샐 수 없는 北韓(북한)住民(주민)들이 떼 지어 몰려들었다.
떼
여럿이 함께 모여 있는 무리
모든 틈새사이까지도 避難民(피난민)들을 밀어넣었다. 船艙(선창)을 칸막이로 막도 또 때웠다.
숨쉴 듯 空間(공간)조차 모자를 정도로「이제 그만 !」이라는 외침이 들릴 것 같았지만 그 날 밤이 다 가도록 들려오지 않았다.
1950年12月23日 아침 11時10分, 모든 倉庫(창고)는 가득 찼고 甲板(갑판)에는 사람들로 넘쳤났다.
7600톤의 鋼鐵(강철)배안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고 있었고 不可能(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乘船(승선)해 있었다.
10時間30分만에 그렇게 14000여명의 無辜(무고)한 生命(생명)들은 救援(구원)을 向(향)해 乘船(승선)하였다.
機雷探知機(기뢰탐지기)도 없기에 機雷(기뢰)에 依(의)해 沈沒(침몰)할 수 도, 러시아 潛水艇(잠수정)에 依(의)해 擊沈(격침)당할 수도 있었고, 단 한번의 輕微(경미)한 事故(사고)로 숨쉴뜸도 없는 空間(공간)에 물이라고 차오른다면 14000名 모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직 埠頭(부두)에는 많은 避難民(피난민)들이 있었고 그들을 생각한다면 단 한名이라도 더 태우는 것이 그들로서는 最善(최선)의 選擇(선택)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歷史上(역사상) 가장 偉大(위대)한 生命救出作戰(생명구출작전)과 歷史上(역사상) 最惡(최악)의 大慘事(대참사) 사이에서 그렇게 航海(항해)는 시작되었다.
메러디스 빅토리號는 甲板(갑판)에 몰려 있던 사람들에게 얼음같이 찬 물보라를 끼얺으며 거친 東海(동해)를 向(향)해 出航(출항)하였다.
끼얹다
pour
shower
물보라
물결이 바위 따위에 세게 부딪치거나 솟구칠 때, 사방으로 흩어지는 잔물방울
a spray
a splash
神經(신경)이 痲痺(마비)될 정도의 추운 날씨에 눈보라도 치고 있었다.
눈보라
거센 바람에 불려 드세게 휘몰아치는 눈
snowstorm
blizzard
甲板(갑판)위의 많은 사람들은 얇은 옷을 입고 있었으며 추위에 떨고 있었다. 배에는 飮食(음식)도 물도 電氣(전기)도 없었지만 그들이 견디낼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 대한 意志(의지)와 慰安(위안), 自由(자유)에 대한 希望(희망)이었다.
삶과 죽음의 境界線(경계선)에서 두려움에 가득 차 있던 메러디스 빅토리號에 새로운 生命(생명)이 태어났고 避難民(피난민)들 역시 새로운 生命(생명)에 대한 敬畏感(경외감)에 두려움은 사라져갔다.
놀랍게도 航海(항해) 途中(도중) 4名(명)의 아이가 더 태어났다.
어떠한 危機(위기) 狀況(상황)에서도 沈着(침착)했던 避難民(피난민)들과 다섯名의 新生兒(신생아)들을 보라보며 한 乘務員(승무원)은 이렇게 말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奇蹟(기적)이다」
大幸(대행)스럽게도 1950年 크리스마스의 東海(동해)는 큰 波濤(파도)없이 잔잔하였으며 메러디스 빅토리號는 巨濟島(거제도)를 向(향)했다.
1950年12月25日 크리스마스, 마침내 메러디스 빅토리號는 巨濟島(거제도)에 도착하였다.
結局(결국)6時間30分만에 避難民(피난민)들은 모두 上陸艇(상륙정)에 옮겨 탔고 72時間 동안의 숨막히는 航海(항해)는 避難民(피난민)들과 船員(선원)의 安堵(안도)의 눈빛과 함께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라루 船長(선장)은 마지막 航海日誌(항해일지)를 記錄(기록)하였다.
「航海中(항해중)5名 誕生(탄생)
死亡者(사망자)없음.
14005名 無事(무사)히 上陸(상륙)함.」
戰爭(전쟁)이 끝난 後 레너드 라루 船長(선장)은 20年의 바다 生活(생활)을 마감하고 1954年 修道者(수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훗날 베네딕트 修道院(수도원)의 마리너스 修士(수사)로서 50年間 獻身(헌신)하시다 87歲(세)를 一期(일기)로 2001年10月14日 日曜日 아침 平和로이 잠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