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年2月28日月曜日 976~ 982=7
2022年3月 1日 火曜日 983~ 988=6
2022年3月 2日 水曜日 988~ 994=7
2022年3月 3日 木曜日 994~1001=7
2022年3月 4日 金曜日1001~10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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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年3月7日月曜日1014~1020
1014 페이지로 부터 始作되는
"獻金은 法度에 맞게 드려야 한다"
의 朗讀 鍊習用 映像을 만들었습니다.
1014ページから始まる
「献金は法度(はっと)に合わせて捧げるべき」
の朗讀練習ビデオを作りました。
天聖經1014페이지
獻金(헌금)은 法度(법도)에 맞게 드려야 한다
(韓國語 普通速度 12分半)
https://youtu.be/a6FBZr7dRKc
5)獻金(헌금)은 法度(법도)에 맞게 드려야 한다
①十一條(십일조) 드리는 法(법)
公金(공금)에 對(대)해
嚴格(엄격)해야 합니다.
十一條(십일조)는
徹底(철저)히 해야 합니다.
自己總收入(자기총수입)에서
십(十)의 일조(一條)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바쳐야 됩니다.
(1961.8.26) p.1014
十一條(십일조)는 所有(소유)하고 있는
物質中(물질중)에 十分(십분)의 一(일)을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全體(전체)를
바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께 全體(전체)를 바치지는 않지만
그 가운데 하나를 精誠(정성)들여
바침으로써 남은 아홉도 거룩한
物件(물건)으로 取扱(취급)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十一條(십일조)를 바치며 사는 사람은
絶對(절대) 亡(망)하는 法(법)이 없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그의 倉庫(창고)가
불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1970.6.4) p.1014
精誠(정성)들여 十一條(십일조)만 해보면
絶對(절대) 굶어죽지 않습니다.
그 後孫(후손)이 物質(물질)에 對(대)한
窮乏(궁핍)을 當(당)하지 않는 것이 原則(원칙)입니다.
十一條(십일조) 드리기 위해 精誠(정성)을 들여라,
그것이 信仰(신앙)의 本質(본질)입니다.
適當(적당)히 하면 되겠거니 하는 것은
通(통)하지 않습니다. 祭物(제물)은 내 生命(생명)
代身(대신)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第一(제일) 貴(귀)한 것을 바쳐야 됩니다.
(1972.10.22) p.1015
蕩減(탕감)을 하기 爲(위)해
物件(물건)을 條件(조건)으로 삼습니다.
우리가 十一條(십일조)를 하늘 앞에
바치는 理由(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9數(구수)는 墮落世界(타락세계)의 數(수)요,
10數(십수)는 이것을 벗는 數(수)요,
하늘世界(세계)의 數(수)입니다.
(1960.10.14) p.1015
레위 族屬(족속)이 治理(치리)하는
敎會祭壇(교회제단) 앞에 열한 支派(지파)는
全部(전부) 다 十一條(십일조)를
바쳐야 됩니다.
앞으로 十一條(십일조) 안 바치면
敎人(교인)이 아닙니다.
元來(원래)는
十(십)의 三條(삼조)를 바쳐야 됩니다.
하나는 自己(자기) 나라를 爲(위)해서,
하나는 世界(세계)를 爲(위)해서,
하나는 敎會(교회)를 爲(위)해서….
十(십)의 三條(삼조)를
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는데
生活(생활)의 十一條(십일조)를
내는 것은 絶對的(절대적)입니다.
그걸 自己(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侵犯(침범)하면 안 되는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九(구)는 三三(삼삼)은 九(구),
이것을 사탄이 只今까지
支配(지배)했다는 겁니다.
사탄이 支配(지배)하는 이 땅 위에
이 九數(구수)를 하늘앞에 맡겨
連結(연결)시킴으로써 하나님이
主管(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10數(십수)를 찾아 놓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믿고 九數(구수)를 끌고 들어가면
이 九數圈內(구수권내)의 모든 所有權(소유권)을
사탄世界(세계)에서 分離(분리)해 낼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十一條(십일조)라는 말이 나왔다는 겁니다.
p.1015
復歸途上(복귀도상)을 넘어가는 過程(과정)에
있는 우리는 十一條(십일조)가 아니라
十(십)의 三條(삼조)까지
할 覺悟(각오)를 해야 됩니다.
하나는 나라에 바치고, 하나는
이 世上(세상)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復歸過程(복귀과정)에서는
안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는 하늘나라에 바쳐야 됩니다.
十(십)의 一條(일조)라는 것은
하늘의 責任(책임)을 맡은 사람으로서
絶對(절대) 侵犯(침범)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孝誠(효성)을 다해야 하는 겁니다.
(1961.4.15) p.1015
여러분이 獻金(헌금)할 때
뭘 사먹다 남은 돈으로
獻金(헌금)하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돈은 더러움을 탄 것입니다.
또, 市場(시장)에 가서 뭘 사다가 남은 돈으로
獻金(헌금)을 하게 되어도
하나님은 거기에 같이하시지 않습니다.
(1971.9.5) p.1015
祭物(제물)은
남이 남긴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은 더러움을 탄 것입니다.
恩惠(은혜)를 받은 사람이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否定(부정)한 곳에는
못 가게 하는 겁니다.
(1970.3.21) p.1015
앞으로의 모든 物件(물건)은 最後(최후)로
世界(세계)의 物件(물건)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同時(동시)에
世界的(세계적)인 하나님의 것이요,
世界的(세계적)인 참父母(부모)의 것이 되고,
世界的(세계적)인 참子女(자녀)의
物件(물건)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物件(물건)을 그런 物質(물질)로
復歸(복귀)시켜야 할
責任(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을 徹底(철저)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1969.6.15) p.1015
自己(자기)가 쓰는 데서
얼마 獻金(헌금)해 가지고
그것으로 敎會(교회)를
支撑(지탱)한다는 것은
至極(지극)히 좋은 것 같지만
나쁜 겁니다.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은 自己生活(자기생활)보다,
자기 全體(전체)보다도 먼저 해야 될 텐데,
그거 몇 퍼센트 바친다는 그 觀念(관념)으로
因(인)해 自己生活(자기생활)이 爲主(위주)요,
하나님이 다음 段階(단계)에 서는 것이
常習化(상습화) 되기 쉽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둘째가 되고 맨 꼴래미로 가 버립니다.
그럴 것 같아요, 안 그럴 것 같아요?
(1978.1.2) p.1016
여러분이 獻金(헌금)을 하게 될 때는….
아이들이 主日(주일)날 아침에 敎會(교회)에 갈 때
「엄마, 아빠, 나 연보, 연보!」하게 되면
뭐 얼마짜리 주면서
「야야, 연보다. 主日學校(주일학교) 연보 해라!」
이래요. 하나님이 거지예요?
敎會牧師(교회목사)가 거렁뱅입니까?
그런 牧師(목사), 그런 敎會(교회)는 안됩니다.
연보
捐補
自己(자기)의 財物(재물)을 내어서 남을 도와줌
主日(주일)을 맞아 敎會(교회)에 바치는 돈
거렁뱅이
「비렁뱅이」의 方言(방언)
「거지」를 얕잡아 이르는 말
獻金(헌금)은 自己財産(자기재산)의
핵(核)을 드려야 됩니다.
자기 金庫(금고)의 第一(제일) 깊은 곳에
넣어두고 精誠(정성)들여
準備(준비)해야 됩니다.
秋收(추수)하는 가을이 되어
모든 곳간에 穀食(곡식)을 거둬 들일 때도
十一條(십일조)를 따로 쌓아 둬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一年(일년)동안
아들딸 一家(일가)가 合(합)해 가지고,
精誠(정성)을 들여서 사랑의 마음을
兼(겸)해 가지고
祭物(제물)로 바쳐야 되는 겁니다.
(1987.5.28) p.1016
祭物(제물) 드렸다가
祭物(제물) 찾아가는 法(법)은 없는 겁니다.
찾아가는 道理(도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더 높은 데를 爲(위)해,
그 責任者(책임자)가 더 높은 데를
爲(위)해 쓰면 그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낮은 데를 爲(위)해 쓰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爲(위)해 안 써도 된다 그 말입니다.
(1983.3.20) p.1016
宇宙(우주)를 創造(창조)하고 絶對全能(절대전능)하신
하나님에게 거지한테나 던져 주는 그런 돈 가지고
좋아하면서「아, 福(복)받을 패들이여!
너희들은 사랑스런 宗敎人(종교인)이다」
하고 내세울 수 있어요? 사탄 앞에
威信(위신)이 서겠느냐 말입니다.
연보대를 돌리면서 돈내라고 합니다.
그건 看板(간판) 붙은 거지나 마찬가집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 겁니다.
(1978.1.2) p.1016
여러분이 先生(선생)님에게 獻金(헌금)을 하고
그러지만 先生(선생)님은 그 돈을 받지 않습니다.
先生(선생)님은 안 받는 主義(주의)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모으기 爲(위)해 무슨 일을 했느냐?
그것을 내가 알고 그것에 對(대)해 부끄럽지 않은
主體的(주체적)인 立場(입장)에 서지 않고는
못 받는 것입니다. 마음 姿勢(자세)가 그렇기 때문에
주고 나서도 또 주고 싶은 마음이
하나님에게 깃드는 것입니다. (1971) p.1016
精誠(정성)들인 獻金(헌금)이나 禮物(예물)을
對(대)할 때 그 價値(가치)를 모르고
對(대)하다가는 精誠(정성)들인 禮物(예물)에게
審判(심판)당한다는 事實(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群王(군왕)도 自己(자기) 處身(처신)을
잘못하다가는, 卽(즉) 精誠(정성)들인 사람을
함부로 對(대)하다가는 亡(망)하게 됩니다.
精誠(정성)드리는 사람을
잘못 대하다가는
하늘의 逆賊(역적)으로 몰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精誠(정성) 드리는 사람을
함부로 對(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967.6.4) p.1016
私的(사적)인 物質(물질)을
公的(공적)인 物質(물질)보다
더 重要視(중요시)하는 사람은
天道(천도)에 違背(위배)되는 사람입니다.
私的(사적)인 自己(자기)의 人格(인격)을
公的人格(공적인격)보다 더 重要視(중요시)하는
자리는 뜻에 違背(위배)되는 자리입니다.
(1971.11.28) p.1016
旣成敎會(기성교회)에서 獻金(헌금)하는 걸
뭐라 그러나요? 거 뭐 주머니 가지고 다니지요?
우리 敎會(교회)도 獻金(헌금)을 그렇게 받아?
뭐 무슨 調理臺(조리대) 가지고 받아?
나갈 때 다 저 문 앞 獻金函(헌금함)에 모아 놓는
겁니다. 精誠(정성)들이고 恩惠(은혜)받고 가는
代價(대가)로서 感謝獻金(감사헌금) 하게 말입니다.
안낼 사람들은 돌아가고…. 그 시시한 돈 받아 가지고,
그것 하늘이 願(원)치 않습니다.
精誠(정성)어린 돈, 어머니 아버지 주머니에
있던 돈 그냥 못합니다.
全部(전부) 다 自己(자기) 몸에
3日(삼일) 以上(이상) 지녀 가지고
聖別(성별)하고 獻金(헌금)해야 됩니다.
點心(점심) 한끼 값도 못 되는 것을
어디에 獻金(헌금)을 해요?
自己(자기) 生命(생명) 財産(재산)을 全部(전부)
털어넣어야 될 텐데도 不拘(불구)하고 ….
(1987.6.14) p.1017
대단한 데가 없어서 보잘것없다
stupid
silly
맨 처음 것은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숫것은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숫것이 없는 데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生活習慣(생활습관)을
그렇게 해 나가야 됩니다.
(1970.3.21) p.1017
숫것
손대지 않고 만든 채 고스란히 있는 飮食(음식)
十一條(십일조)는 第一(제일) 精誠(정성)들인
숫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祭物(제물)입니다.
祭物(제물)을 드리는데는 숫것을 드려야 합니다.
아들을 祭物(제물)로 드린다면 어떤 아들을
祭物(제물)로 드려야 되겠어요?
미운 아들? 素望(소망)이 없는 아들?
그런 아들은 祭物(제물)이 안 되는 것입니다.
第一(제일) 좋은 아들이어야 합니다. 왜 그러냐?
祭物(제물)은「나」代身(대신)이기 때문입니다.(1971)
只今(지금) 自己(자기)가 갖고 있는 物件(물건),
或(혹)은 自己所有(자기소유)의 財産(재산)은
自身(자신)이 暫時(잠시) 管理(관리)하는
過程(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管理人(관리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各自(각자)가 잘 管理(관리)해서
奉獻(봉헌)해 드려야 할 이 萬物(만물)은
참父母(부모)의 품을 거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것임과 同時(동시)에
참父母(부모)의 것이라는 過程(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事實(사실)을 確實(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1969.6.15) p.1017
復歸路程(복귀노정)의 原則的(원칙적)인
基準(기준)으로 볼 때, 萬物(만물)은 먼저
人類始祖(인류시조)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勿論(물론) 하나님의 것이지만
하나님이 人間(인간) 앞에 내려주신
祝福(축복)의 基準(기준)을 中心(중심)삼고 볼 때,
人類始祖(인류시조)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墮落(타락)하지 않은 선(善)의 父母(부모)의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1969.6.15) p.1017
墮落(타락)은 自己(자기) 것을 만들려 하고
自己(자기)가 所有(소유)하려고 한 데에서
緣由(연유)됩니다.
하나님과 메시아가 오시는데 이와 같이 했다가는
반드시 사탄便(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順從(순종)의 道理(도리)를 通(통)해야 하는데,
언제나 番番(번번)히 墮落(타락)한 世界(세계)의
그러한 痼疾(고질)된 事緣(사연)이
남아지게 마련입니다.
번번히
「番番이」의 非(비)標準語
매 때마다 다
고질
痼疾
오래되어 굳어 버린 나쁜 버릇이나 병폐
여러분은 여러분의 所有(소유)를
하나님을 爲(위)해 쓰자고 할 때
어떻게 하겠어요?
나는 꿈에도 내가 벌어들인 것을
내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牧會者의 길-207) p.1017
「내 것은 네 것이요,
네 것은 나라의 것이요,
나라의 것은 世界(세계)의 것이요,
世界(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은 나의 것이다」하는 이것이
우리의 主流思想(주류사상)입니다.
먼저는 物質祝福時代(물질축복시대)를 거쳐
人間祝福時代(인간축복시대)가 오고,
그런 다음에 하나님을 爲主(위주)로 한
心情祝福時代(심정축복시대)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1962.10.7) p.1018
只今(지금)까지
人間(인간)이 復歸(복귀)되는데
萬物(만물)이 얼마나 많은
貢獻(공헌)을 했는지 모릅니다.
또한 萬物(만물)과 人間(인간)이
하나되지 못하면
아버지 앞에 갈 수 없습니다.
(1969.6.15) p.1018
Tithing in our daily life
敎會(교회)의 十一條(십일조) 生活(생활)도
食口(식구)가 열 가정이 있으면 引導者(인도자)
한 사람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天民權(천민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열 사람이 살면 하늘 사람 한 사람을
扶養(부양)하여야 합니다.
十一條(십일조)는 모든 面(면)에 있습니다.
學校(학교)도 열 敎室中(교실중)에
한 敎室(교실)은 불쌍한 子女(자녀)들을
爲(위)한 無料奉仕(무료봉사)의
敎室(교실)로 써야 되는 겁니다.
앞으로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
時間(시간)까지도 十一條(십일조)
해야 되는 것입니다.
過去(과거)와 같이 무슨 物質(물질)만이 아닙니다.
萬一(만일)에 家族(가족)이 열 사람 있으면
한 사람을 내 놓아야 됩니다.
그런 基準(기준)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앞으로 우리 敎會食口(교회식구)는
十一條(십일조) 못하면 안 됩니다. 十一條(십일조)
못하는 사람은 食口(식구)가 아닙니다.
이건 義務的(의무적)입니다.
天的(천적)인 義務(의무)란 말입니다. (1961) p.1018
主日(주일)은 十一條(십일조)의 날이니
나의 날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命令(명령)대로 服從(복종)할 날인 것입니다.
하늘의 것을 내 것으로 쓰고자
하는 것이 罪(죄)입니다.
내 子息中(자식중)의
하나를 하늘 앞에 바쳐야 하며,
그럴 수 없으면 남의 子息(자식)이라도
工夫(공부)를 시켜 하늘 앞에 드려야 합니다.
국수 한 그릇을 먹더라도 혼자 먹어서는 안 됩니다.
하늘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者(자)로서
혼자 먹기 未安(미안)하거든,
「同伴(동반)해 계신 아버지 앞에 나 혼자
먹을 수밖에 없으니 憫惘(민망)합니다」하며,
아버지가 같이 參與(참여)하는 條件(조건)을
세워 가지고, 반드시 父母(부모)를 먼저
待接(대접)하는 立場(입장)에 세워 놓고
살아가야 된다 이겁니다.
옷을 사 입어도 혼자 못 사입습니다.
그런 生活(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961.4.15) p.1018
憫惘(민망)하다
慊然(겸연)쩍고 부끄럽다
pitiable
③ 蕩減基金(탕감기금)
The indemnity fund
墮落人間(타락인간)이
父母(부모)를 죽인 罪(죄),
子女(자녀)를 죽인 罪(죄),
萬物(만물)을 잃어버린 罪(죄)를
어떻게 蕩減(탕감)할 것인가.
유다가 예수님의 몸을 팔아
나그네의 墓地(묘지)를 샀습니다.
나그네
traveler
故(고)로 蕩減基金(탕감기금)으로
聖徒(성도)들이 머물 수 있는 집을 마련해야 됩니다.
元來(원래)는 本部(본부)를 사야 합니다.
열두 弟子(제자)가 팔았기 때문에
4年(사년)에 12,000(만이천)원을 獻金(헌금)해야 합니다.
蕩減基金(탕감기금)은 돈 中(중)에도
第一(제일) 貴(귀)한 돈을 바쳐야 합니다.
이 基金獻納(기금헌납)은 아버지와 兄(형)을
죽인 죄를 피 대신 蕩減基金(탕감기금)
(기본적인 돈)으로 代身(대신)하는 것이고,
子女(자녀)들에게 있어서는
아버지와 兄(형)의 피값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 基金(기금)에 더 보태어
聖殿(성전)을 지어야 합니다.
(1964.5.12. 本部敎會) p.1019
蕩減基金(탕감기금)은
精誠(정성)을 들여서 갚아야 합니다.
蕩減基金(탕감기금)은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입을 것을 입지 않고 精誠(정성)을 들여,
남의 손을 거치지 말고 自身(자신)이
直接(직접) 내야 합니다.
이 蕩減基金(탕감기금)을 傳統(전통)으로 하여,
우리의 後孫(후손)들도
全部(전부) 이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이것을 다하게 되면 國家(국가)의
運勢(운세)는 넘어갑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千(천)길 萬(만)길 속에
샘이 끓고 있어 구멍만 뚫으면
暴發(폭발)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남들이 모르는 가운데
이러한 거룩한 祭祀(제사)를 드리는 祭司長(제사장),
祭官(제관)으로서의 責任(책임)을 지고서
祭物(제물)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1964.6.14) p.1019
한 사람의 그릇된 行動(행동)으로 因(인)해
참아버지로 오신 예수님을 이 地上(지상)에서
몰아낸 立場(입장)이 되어
하나님의 섭리는 四方八方(사방팔방)으로
完全(완전)히 막혀 버렸습니다.
이것을 蕩減(탕감)하는 條件(조건)으로
4年間(사년간) 3數(삼수)에 該當(해당)하는
金額(금액)을 예수님을 팔아먹은 그 失體(실체)
값으로 하나님께 되돌려 드려야 합니다.
4年間(사년간)이라는 것은 東西南北
(동서남북)에 맞먹으며, 韓國(한국)에서는
1年(년)에 3千(삼천)원씩 4年間(사년간)에 걸쳐
낸다는 條件(조건)으로 1만2千(일마이천)원을 獻金(헌금)합니다.
(1966.東京敎會)
우리는 하늘과 땅의 怨恨(원한)을 풀고
이 땅에 막혀 있는 城(성)을 허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只今(지금)까지 자리를 닦아 나오며
犧牲(희생)한 道人(도인)들을 中心(중심)한
本部(본부)를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이 蕩減基金(탕감기금)은 世界的(세계적)인
蕩減(탕감)을 하는 것입니다.
城(성)
敵(적)의 攻擊(공격)을 막기 위해 흙이나 돌을 길게 이어 쌓아올린 큰 담 形態(형태)의 構造物(구조물)
허물다
헐어서 무너뜨리다
蕩減基金(탕감기금)은 피와 땀을 흘리며
精誠(정성)을 모은 것으로 내야 합니다.
銀行(은행)에 貯金(저금)했던 것을
찾아서 내면 안 됩니다.
(1964.6.14) p.1019
主(주)님은 歷史(역사)의 蕩減條件(탕감조건)을
세우고 피흘리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하늘 땅의 怨恨(원한)을 풀었습니다.
그러나 子女(자녀)들이 恨(한)을 못 풀었으니
이것을 풀도록 하기 爲(위)한 條件(조건)이 蕩減基金(탕감기금)입니다.
父母(부모)는 勝利(승리)하였으나
子女(자녀)들이 侵犯(침범)을 當(당)하게
되었으므로 勝利(승리)하신 父母(부모)의
基盤(기반) 위에 父母(부모)를 팔았던 恨(한)을
解怨成事(해원성사)해야 합니다.
蕩減基金(탕감기금)을 納入(납입)해야
飛躍的(비약적) 發展(발전)이 옵니다.
子女(자녀)가 아무리 父母(부모)를 맞이했고
하늘 땅을 가졌다 하더라도 참父母(부모)가
흘린 피의 恨(한)을 풀지 않으면 안 됩니다.
(1964.6.14. 大邱敎會) p.1019
食口(식구)들은 蕩減基金(탕감기금)을
率先(솔선)해서 納付(납부)해야 합니다.
눈물과 땀과 피의 恨(한)을 蕩減(탕감)할
條件(조건)을 세워 勝利(승리)해야 또
새로운 攝理(섭리)가 있게 됩니다.
民族的(민족적)인 基盤(기반) 위에
國家的(국가적)인 逆境(역경)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先生(선생)님은 韓國民族(한국민족)이
가장 불쌍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 民族(민족)이
가장 悲慘(비참)한 位置(위치)에 있어야
주지 않고 蕩減(탕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只今(지금) 民族的(민족적)인
蕩減條件(탕감조건)을 세워 나가고 있습니다.
(1964.5.23) p.1019
蕩減基金(탕감기금)은 돈 中(중)에서
第一(제일) 貴(귀)한 돈입니다.
이 基金(기금)에 逸話(일화)가 많아야 합니다.
悲慘(비참)한 일이 많아야 합니다.
(1964.5.12) p.1019
6) 하나님은 公的(공적) 祈禱(기도)를 받으신다
① 人事(인사)하는 데도 人事法(인사법)이 있지 않느냐?
信仰者(신앙자)는 보다 큰 것을 爲(위)해
公的(공적)인 祈禱(기도)를 해야 합니다.
(28-271, 1970.2.8) p.1020
先生(선생)님은 興南監獄(흥남감옥)에서
3年(삼년) 가까운 歲月(세월)을 보냈지만,
그 가운데에 몇몇 食口(식구)들을 爲(위)한
祈禱(기도)는 밥먹을 때부터 잠잘 때까지
안 해준 적이 없었습니다.
設令(설령) 떨어져 나간 사람일지라도
그를 爲(위)해 계속 祈禱(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靈的(영적)으로 先生(선생)님을 찾아와
凄凉(처량)하게 눈물을 흘리며
報告(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설령
設令
어떤 狀況(상황)을 假定(가정)하고, 그러한 假定(가정)으로부터 一般的(일반적)으로 떠올리는 狀況(상황)과 反對(반대)되는 이야기를 할 때 쓰는 말
even if
凄凉(처량)하다
마음이 구슬퍼질 정도로 쓸쓸하다
desolate
肉身(육신)이 弱(약)해 어쩔 수 없이
先生(선생)님을 떠나게 되었다고
人事(인사)를 하며 떠나는 悲慘(비참)한
情景(정경)은 同情(동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떠나갔어도 그 사람 爲(위)해 祈禱(기도)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
그 사람이 責任(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繼承者(계승자)가 나올 때까지
祈禱(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精誠(정성)의 土臺(토대)만 남아 있으면
아무리 食口(식구)가 떨어져 나갔다 해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뜻있는 사람을 보내 주십니다.
(1971.3.4) p.1020
내가 拷問(고문)을 當(당)해 피를 吐(토)하며
쓰러지더라도「하늘이여, 이 피를 보고
나 때문에 눈물 흘리지 마시옵소서.
이것은 부끄러운 피가 될 것이고,
歎息(탄식)에 젖은 怨恨(원한)의 눈물이
될 것이어늘 여기에 하늘이 同情(동정)하는 것을
願(원)치 않사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監獄(감옥)에 가게 되더라도
祈禱(기도)를 안 하는 것입니다.
心情世界(심정세계)에 있어서는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969.10.14) p.1020
世上(세상)에서 人事(인사)를 하는 데는
法(법)이 있지 않느냐?
祈禱(기도)하는데도 硏究(연구)를 해서 하라.
(뜻길) p.1020
神靈(신령)한 世界(세계)에 들어가 祈禱(기도)하게
되면 먼저 하나님을 爲(위)해 祈禱(기도)합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을 爲(위)해 祈禱(기도)할 줄
알아야 歷史的(역사적)인 心情(심정)을 압니다.
그 다음에 天地創造以後(천지창조이후)
只今(지금)까지 基督敎界(기독교계)의 훌륭한 뜻을
代身(대신)해 싸워 나온 數(수)많은 사람들을
代身(대신)하여 祈禱(기도)해 줘야 합니다.
墮落以後(타락이후) 아담 해와로부터 只今(지금)까지
數(수)많은 先知者(선지자)들이 걸음걸음을 나가면서
「그들에 맺혀진 恨(한)을 解怨(해원)하는
祭物(제물)이 되게 하시옵소서!」
하고 이것이 다 끝난 後(후)에 사랑하는
아들딸을 爲(위)해 祈禱(기도)하고
그 다음 自己(자기)를 爲(위)해 祈禱(기도)하는 겁니다.
天法(천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1959.10.8) p.1020
눈물을 흘리며 뼛골이 녹아나는
深刻(심각)한 境地(경지)에 들어가서
一對一(일대일)로 판가름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눈물지을 때 하나님이 눈물짓고,
하나님이 눈물지을 때 내가 눈물짓는
그런 자리에서 順從(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주고받을 수 있는 境地(경지)에
들어가야 됩니다.
무슨 일이든 그래 가지고 해야 합니다.
그러기 爲(위)해 祈禱(기도)를 해야 합니다.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 뿌리가 祈禱(기도)입니다.
(1970.6.4) p.1021
精誠(정성)을 들이는데는「絶對(절대) 믿습니다」
하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絶對(절대) 믿습니다」
뜻이면 뜻을 對(대)해 「絶對(절대) 믿습니다」
하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만
하나님이 協助(협조)하시는 것입니다.
祈禱(기도)하면서도 시시하게 祈禱(기도)가
이루어질지 안 이루어질지
疑心(의심)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아버지여! 나만 남았나이다.
내가 아니면 이 나라가 없어지고
이 世界(세계)가 없어질 것이온데,
아버지여, 當身(당신)이 6千年(육천년) 동안
受苦(수고)해 오신 이 한 境地(경지)에,
이 境界線(경계선)에 나 혼자 남았나이다.
당신이 成就(성취)시킬 뜻 가까이 있는 者(자)가
나밖에 없잖습니까? 나라는 存在(존재)가
이렇게 重要(중요)하지만 저는 아직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그러한 저에게 命令(명령)하셨으니
제가 그럴 수 있는 條件(조건),
그럴 수 있는 基盤(기반)을 갖추어
全體(전체) 이 民族(민족)을 代身(대신)하겠습니다.
이것이 復歸攝理(복귀섭리)가 아니옵니까?」
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祈禱(기도)는 目的完成(목적완성)을 爲(위)해서도
必要(필요)한 것입니다. (1970.6.4) p.1021
祈禱(기도)할 때는 맨 처음
나라를 爲(위)해 祈禱(기도)해야 합니다.
그 다음은 世界(세계)를 爲(위)해 祈禱(기도)하고,
다음에는 하나님의 解放(해방)을 爲(위)해
祈禱(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便安(편안)한 자리에 계신 줄 알아요?
自己(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世上(세상)의 運勢(운세)가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면서
「오 主(주)님, 나 天國(천국) 보내 주소서」
하고 있습니다. (1964.5.3) p.1021
責任者(책임자)로서 本質的(본질적)인
原理的(원리적) 軌度(궤도)를
어떻게 가야 되느냐 하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기도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關係(관계),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느냐?
또, 食口(식구)를 爲(위)해
精誠(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내가 食口(식구)와 더불어
얼마나 關係(관계)를 맺느냐?
이것이 둥그래지게끔….
그걸 爲(위)해서 祈禱(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利益(이익)을 爲(위)해 宗敎(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福(복)받으면 하나님을 버립니다.
福(복)받는 것이 目的(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좀 살게 되면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願(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찾아드리겠다는
觀點(관점)에서 祈禱(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世界(세계)에 福(복)을 내려 달라고
祈禱(기도)해야 합니다. (1983.5.1) p.1021
스승을 스승으로 만들기 爲(위)해서는
여러분이 責任(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아버지 앞에 祈禱(기도)를 하더라도 떳떳하게
「아버지여, 當身(당신)의 아들딸이 왔사옵니다.
當身(당신)이 만나고 싶어하시던
아들딸이 왔사옵니다」할 수 있는 環境(환경)을
만들어 놓고 祈禱(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11-132, 1961.3.26) p.1021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내 할 일은 내가 해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約束(약속)을 잘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全體(전체)를 爲(위)해 祈禱(기도)해야
그것이 산 祈禱(기도)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自己(자기)가 願(원)하는 祈禱(기도)가 달라지고
題目(제목)이 달라지면서 發展(발전)하는 겁니다.
只今(지금) 때가 어떤 때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裏面(이면)의 生活(생활)을
祈禱生活(기도생활)을 通(통)해 갖춰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04-111, 1979.4.15) p.1022
裏面(이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內部(내부)의 속事情(사정)
先生(선생)님도 自然(자연)을 좋아하고
혼자 있는 時間(시간)을 가장 臭味(취미)로 삼고 있습니다. 고요한 밤을 참 좋아해요. 그러나 그런 얘기를 안 하지, 先生(선생)님에게 그런 게 없겠어요?
여러분들에게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그런 生活(생활)의 豊富(풍부)한 低邊基盤(저변기반)을
닦을 수 있는 것도 祈禱以外(기도이외)에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979.4.15) p.1022
福(복)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自己(자기)의 心情的(심정적) 姿勢(자세)에 따라
福(복)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祈禱(기도)하고 精誠(정성)들이는 게 뭐예요? 精誠(정성)들이고「아멘」하고 나와 가지고,
우는 애기 있으면 궁둥이를 발길로 차고 들이 제기고
이런다면 그 집안을 암만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祈禱(기도), 懇切(간절)한 祈禱(기도)를 했으면, 간곡한 마음과 아름다운 마음으로 環境(환경)을 처리해 가지고 기도하는 기준의 상대적인 자리에서 그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자세를 준비해야 됩니다.
懇曲(간곡)하다
懇切(간절)하고 精誠(정성)스럽다
오늘날 旣成敎人(기성교인)들,
讚頌(찬송) 부르고 禮拜(예배) 보면 하늘나라 가요?
千萬(천만)에! 敎會(교회)에 갔다 와 가지고
싸움질하고 주먹질이며 별의별 짓 다 하고는
하늘나라 가겠어요?
(1992.8.1) p.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