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年4月11日月曜日
天聖經訓讀會(천성경 훈독회)
㊗祝福(축복)의 意義(의의)와 價値(가치)
(日語 14分半)
https://youtu.be/SjDz4qyBFt8
Faith and Indemnity
①信仰과 蕩減
(韓國語 4分)
https://youtu.be/mEDjzldiwLI
Section 7. The Way of Indemnity is the Way of Absolute Obedience
7) 蕩減길은 絶對服從, 絶對順從의 길
(韓國語 13分)
https://youtu.be/HT98rTW1nd8
The meaning of the Blessing
㉮祝福의 意義
(韓國語 11分)
https://youtu.be/i02gjrRQVac
6) 信仰은 蕩減法을 지켜나가는 것
① 信仰과 蕩減
蕩減復歸完成(탕감복귀완성)한 사람 손들어 봐요.
이놈의 子息(자식)들, 몽둥이로 후려 맞고, 辱(욕)을 퍼먹고, 그저 홍두깨 벼락을 맞아야 할 妖邪(요사)스러운 패들이야. 보라구요.
이것 안 했다가는 先生(선생)님도 할 수 없습니다.
先生(선생)님이 確實(확실)히 가르쳐 줬습니다. 그것대로 靈界(영계)가 變形(변형)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것 못 하고 가게 되면 저나라에 가서 딱 걸리는 겁니다. 아무리 夫妻(부처)끼리 아들딸을 사랑했다고 하더라도 全部(전부) 다 가 가지고는 스톱입니다.
靈界(영계)에 낙원이 생긴 것과 마찬가지로 統一敎會(통일교회)에 있어서 天國(천국) 들어가기 前(전)의 가정 樂園(낙원)이 생기는 겁니다. 거기서는 사랑도 못 해요.
어떻게 사랑하겠어요? 子息(자식)이라고 사랑하려야 사랑 못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할 거예요? 男便(남편)에게 「當身(당신)이 날 사랑하더니 여기 와서는 왜 그렇게 해요?」라고 하더라도 사랑 못하게 돼 있습니다. 사랑 못 합니다.
自己(자기) 서 있는 자리에서는 사랑하게 돼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148-168, 1986.10.8) p.1200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蕩減復歸(탕감복귀)의 길을 걸어왔어요? 그렇게 살았어요? 長子復歸(장자복귀)를 해야 할 運命(운명)으로서 내 앞에 長子復歸(장자복귀)의 길이 가로막혀 있는데 이것을 必死的(필사적)인 努力(노력)을 通(통)해, 무슨 代價(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고개를 넘어야 된다고 하며 몸부림쳐 봤어요? 안 했다는 것입니다. 안 했습니다.
그저 先生(선생)님 따라온 거지. 先生(선생)님이 어떠해서? 先生(선생)님이 좋아서.
왜 따라왔느냐?
그 따라온 動機(동기)도 原理(원리)보다도 先生(선생)님이 좋아서 따라온 것입니다.
(138-134, 1986.1.19) p.1200
統一敎會(통일교회)에 들어와 全部(전부) 다 걸터앉아서 天國(천국) 간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心情圈(심정권)을 이어받아야 됩니다. 임자네들 언제 蕩減復歸(탕감복귀)한다고 생각했어요? 언제 蕩減復歸(탕감복귀)하겠어요? 蕩減復歸(탕감복귀)하기 爲(위)해 가라는데 언제 갔어요?
(140-197, 1986.2.9) p.1200
人間(인간)에게 第一(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 사탄의 三大門(삼대문)이 있는데 첫째는 먹는 겁니다.
이놈의 입은 먹고 먹고 먹으면 더 좋은 것 달라 그렇습니다.
자꾸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는 쉬는 겁니다.
잠만 자면 자꾸 쉬고파요. 그렇지요?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는 뭐예요? 情慾(정욕)입니다.
바람 피우려고 합니다.
統一敎會(통일교회)에서 바람 피우고 男女問題(남녀문제)가 있으면 한 군데 데려다가 휘발유 뿌려서 불살라 버릴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옵니다.
내가 그런 指示(지시)를 안해서 그런 겁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의 아담과 해와를 쫓아냈지요?
그 새끼들을 處理(처리)할 道理(도리)가 없었습니다.
둘밖에 없었기 때문에 處理(처리)할 道理(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只今(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두룩하게 많습니다.
先生(선생)님 時代(시대)에 그런 꼴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深刻(심각)하다는 것입니다.
(199-107, 1990.2.16) p.1200
7)蕩減(탕감)길은 絶對服從(절대복종), 絶對順從(절대순종)의 길
宗敎人(종교인)들은 왜 絶對服從(절대복종)을 해야 하느냐? 絶對的(절대적)인 主體(주체) 앞에 絶對的(절대적)인 相對(상대)가 되려니 絶對服從(절대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惡(악)을 對(대)해서는 죽더라도 絶對(절대) 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惡(악)하고 絶對(절대) 짝하지 말라는 겁니다. 사랑하라고 하면서…. 人間(인간)을 사랑하되, 人間(인간)과 하나되어 있는 罪(죄)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57-57, 1972.5.28) p.1201
하나님이 絶對的(절대적)이라면 나도 絶對的(절대적)인 자리를 願(원)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不變(불변)이라면 나도 不變(불변)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唯一(유일)이라면 나도 唯一(유일)이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영원이라면 나도 永遠(영원)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人間(인간)의 永生(영생)은 不可避的(불가피적)이요, 그것은 結果的(결과적)인 歸一點(귀일점)이 아닐 수 없다는 結論(결론)을 堂堂(당당)히 내릴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사랑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사랑이 없고, 아무리 하나님에게 生命(생명)이 있다 하더라도 내게 生命(생명)이 없고, 아무리 하나님에게 理想(이상)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人間(인간)에게 理想(이상)이 없다면 모두 虛事(허사)라는 것입니다.
(69-74, 1973.10.20) p.1201
自己(자기) 慾心(욕심)을 가지면 안 됩니다. 先生(선생)님을 中心(중심)삼고 完全(완전)히 絶對的(절대적)으로 하나돼야 됩니다.
한 뿌리입니다.
뿌리를 잡아당기면 끌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줄기나 가지는 自己(자기) 存在意識(존재의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主張(주장)할 수 없습니다.
두 方向(방향)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입니다. 이것이 勝利的(승리적) 基盤(기반)을 닦고 자리를 잡아야 東西南北(동서남북)으로 自由(자유)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自由(자유)가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 自由行動(자유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169-199, 1987.10.31) p.1201
지금까지의 도인들은 무엇을 中心(중심)삼고 生活(생활)해 왔느냐? 예수도 불쌍한 사람입니다. 人間的(인간적)으로 보면 아무 主張(주장)이 없는 사람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하나님의 뜻만 가지고 自己(자기)의 뜻은 없습니다.
하나님 뜻 앞에 絶對服從(절대복종)이었습니다. 絶對服從(절대복종)! 왜 絶對服從(절대복종)했느냐? 絶對的(절대적)인 主體(주체), 原型的(원형적)인 主體(주체)가 있는 데도 不拘(불구)하고 또 다른 三角形的(삼각형적) 主體(주체)의 圈(권)을 이룬 것이 사탄이기 때문에, 그 사탄을 除去(제거)시키기 爲(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오늘날 人間(인간)은 사탄圈內(권내)에 隸屬(예속)되어 있습니다.
사탄圈內(권내)에 隸屬(예속)되어 있는 人間(인간)을 脫出(탈출)시키기 爲(위)해서는 사탄이 第一(제일) 싫어하는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宗敎(종교)는 良心(양심)을 中心(중심)삼고 絶對服從(절대복종)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良心(양심)과 마음이 本來(본래)는, 하나님이 絶對的(절대적)이니 絶對的(절대적)인 하나님을 中心(중심)삼고 絶對的(절대적)으로 하나되게 만들려니 宗敎世界(종교세계)에서는 마이너스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57-114, 1972.5.29) p.1201
絶對的(절대적)으로 服從(복종)하라, 絶對的(절대적)으로 服從(복종)하는 것이 亡(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服從(복종)하고 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됩니다.
하나되고 나면 어떻게 되느냐?
惡(악)은 反撥(반발)하는 것입니다.
完全(완전)히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惡(악)은 反撥(반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惡(악)이 除去(제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原則(원칙)입니다.
(57-114, 1972.5.29) p.1201
하나님의 뜻에는 하나님의 理想的(이상적)인 뜻과 人間(인간)이 墮落(타락)했기 때문에 蕩減復歸(탕감복귀)해야 할 뜻이 있습니다.
둘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어떤 뜻길을 가야 돼요?
둘째번입니다.
그러면 그 둘째번의 뜻길에는 하늘을 따라가고, 信仰生活(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自由(자유)로 할 수 있는 內容(내용)이 요만큼이라도 있느냐 이겁니다. 요만큼도 없습니다.
(134-117, 1985.2.25) p.1202
絶對的(절대적)인 信仰(신앙)을 해야 합니다.
統一敎會(통일교회)를 믿느냐 할 때 絶對的(절대적)으로 믿고 간다고 해야 됩니다.
(46-99, 1971.7.25) p.1202
絶對(절대)信仰(신앙)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自己(자기)가 믿고 있는 한 宗敎(종교)의 指導者(지도자)가 있다면, 그 指導者(지도자)와 나는 歷史的(역사적)으로 數千年(수천년)이라는 먼 距離(거리)를 두고 있지만 믿는 마음을 中心(중심)삼고는 그와 平面的(평면적)으로 對等(대등)한 時代圈內(시대권내)에 들어 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絶對的(절대적)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絶對的(절대적)으로 믿을 때 그 사람과 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람과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새롭게 認識(인식)시키고 刺戟(자극)시키기 爲(위)한 것이 信仰(신앙)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32-162, 1970.7.12) p.1202
남는 것은, 絶對信仰(절대신앙)도 가고 絶對服從(절대복종)도 가지만 最後(최후)에는 絶對(절대)사랑이 남는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素望(소망), 이 세 가지는 恒常(항상) 있는데 그 中(중)의 第一(제일)은 뭐라구요? 「사랑」믿음도 가고 素望(소망)도 가지만 最後(최후)에는 사랑이 남는다는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絶對信仰(절대신앙)도 다 갑니다. (169-130, 1987.10.29) p.1202
죽는 자리에서도 大膽(대담)해야 됩니다.
죽는다고 떡 눈 감고「난 죽었다」하고 있으면 벌써 딴世界(세계)에 옮겨 놓더라 이겁니다.
飛躍(비약)이 벌어지더라는 겁니다.
統一敎會(통일교회)는 그렇게 發展(발전)해온 겁니다.
氣(기)가 차고 氣(기)가 막히고 四方(사방)이 꽉 죄이고 땅에 들어갈 수도 하늘로 솟구쳐 올라갈 수 도 없는 그 자리를 죽음을 覺悟(각오)하고 밟고 넘어서면 살아계신 하나님은 틀림없이 顯現(현현)하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하나님이 있나 없나 하는 것은 문제도 안 되는 겁니다.
그리고 怨讐(원수)를 消化(소화)해야 됩니다.
怨讐(원수)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 길이 쉽지 않습니다.
自體否定(자체부정)을 몇십 번, 몇백 번 할 뿐만이 아니라 怨讐(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편에 설 수 없습니다. (126-44, 1983.4.10) p.1202
宗敎(종교)는 肯定槪念(긍정개념)에서 始作(시작)할 수 없습니다.
先祖(선조)가 그랬기 때문에.
그것을 否定(부정)하는 第一條件(제일조건)이 뭐냐 하면 絶對信仰(절대신앙)입니다. 알겠어요? 그래, 임자네들 絶對信仰(절대신앙) 가졌어요? 그렇기 때문에 苦行(고행)의 길을 왜 가는지 그 原因(원인)을 파헤쳐 봐야 됩니다.
오늘날 文(문)아무개가 와서 宗敎(종교)의 秘密世界(비밀세계)를 다 파헤치길 바라지요? 「왜 苦行(고행)의 길을 가야 되고, 犧牲(희생)해야 되느냐?
왜, 왜 絶對(절대) 믿어야 돼요?」하고 牧師(목사)들을 불러 가지고 세 마디만 해도 對答(대답) 못하고, 「거, 거 믿음으로써 모든 구원을….」하는 겁니다.
그러한 妄想的(망상적)인 사탄의 煙幕戰術(연막전술)에 넘어가지 말라는 겁니다.
(126-36, 1983.4.10) p.1202
統一敎會(통일교회) 敎人(교인)들 蕩減復歸(탕감복귀)하기 爲(위)해서는 反對(반대)의 行路(행로)를 通(통)해 가야 하느니만큼 自己認定(자기인정), 自己肯定(자기긍정)에서부터 始作(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完全否定(완전부정)입니다. 完全(완전)한 宗敎(종교)는 自己否定(자기부정)에서부터, 墮落(타락)한 世界(세계)의 完全否定(완전부정)에서부터 始作(시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世界(세계)를 否定(부정)하고 나라를 否定(부정)하고 宗族(종족)을 否定(부정)하고 家庭(가정)을 否定(부정)하고 女便(여편)네 男便(남편), 男性(남성) 女性(여성) 自體(자체)를 否定(부정)하고 내 몸과 마음 自體(자체)를 否定(부정)해야 됩니다.
否定(부정)의 版圖(판도)가 얼마나 큰지 알아야 됩니다. 내 마음을 中心(중심)삼고 몸까지 否定(부정)해야 된다 이겁니다.
(126-34, 1983.4.10) p.1203
統一敎會(통일교회)를 믿고 福(복)받겠다는 생각 하지 말라는 겁니다.
福(복)을 주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統一敎會(통일교회) 自體內(자체내)의 福(복)을 나라와 世界(세계)를 爲(위)해, 더 큰 것을 爲(위)해 주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렇게 가게 될 때 레버런 文(문)이 여러분의 進路(진로)를 責任(책임)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발을 내가 잡아당기지 않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됩니다.
(130-61, 1983.12.11) p.1203
겉으로는 좋아하지만 속으로 머리를 흔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性稟(성품)을 잘 타고나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信仰(신앙)길에 있어 自己(자기)와 싸워 이긴다는 것은 世界(세계)를 克服(극복)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입니다.
이런 觀點(관점)에서 볼 때 第一次(제일차) 十字架(십자가)는 自我(자아)를 克服(극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46-95, 1971.7.25) p.1203
자, 只今(지금)까지 責任分擔(책임분담)의 蕩減歷史(탕감역사)를 누가 다 했어요? 그것을 돈으로 갚을 수 있어요? 여러분의 집을 팔고 나라를 팔아서 갚을 수 있어요? 그럼 뭘해야 돼요? 할 게 없습니다. 그저 絶對服從(절대복종)입니다.
여러분 20代(이십대)까지는 絶對服從(절대복종)입니다. 20代(이십대)가 되기 前(전)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해와가 그렇게 꽁무니를 흔들다가 墮落(타락)한 것입니다. 自己主張(자기주장)하다가.
20代(이십대)까지는 絶對服從(절대복종)입니다.
20代(이십대) 前(전)에는 服從(복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絶對服從(절대복종)입니다.
絶對服從(절대복종)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服從(복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도 萬若(만약)에 父母(부모)하고 하나 안 되었다간 亡(망)한다는 걸 아는 겁니다.
하나님과 하나 안 되면 亡(망)한다는 겁니다.
(133-136, 1984.7.10) p.1203
四大心情圈(사대심정권)과 三代王權(삼대왕권)을 잃어버렸으니, 이것을 찾아야 됩니다.
그것을 이루기 爲(위)해서는 絶對服從(절대복종)과 絶對順從(절대순종)과 絶對犧牲(절대희생)을 中心(중심)삼고 順應(순응)하고, 무슨 일을 시켜도 다 하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고 난 後(후)에야 父母(부모)가 사탄世界(세계)에서부터 여기로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世界(세계)의 男子(남자)는 天使長(천사장)이니 잘라버려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올라가는 겁니다. (235-293, 1992.10.25) p.1203
가나안 復歸路程(복귀노정)에서는 先生(선생)님을 따라가야 됩니다. 기러기가 大洋(대양)을 건널 때 王(왕)초 기러기 앞에 絶對服從(절대복종)입니다.
異議(이의)가 없습니다.
「날아가!」 하면 날아가는 겁니다.
힘들더라도 죽도록 그냥 따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只今(지금)까지 그 놀음을 해 왔습니다.
이제는 目的地(목적지)에 와서 새끼 치고 다 이렇게 돼 있으니, 自己(자기) 끼리끼리 서로서로 爲(위)하고 사랑해서 한 族屬(족속)을 이루어 가지고 그 族屬自體(족속자체)를 자랑할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이때 해야 할 일이다 하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只今(지금)까지는 가나안 福地(복지)를 向(향)해 가는 때요, 이제는 定着時代(정착시대)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115-107, 1981.11.4) p.1204
진짜 孝子(효자)는 服從(복종)하는 者(자)입니다. 진짜 忠臣(충신)은 奸臣(간신)으로 몰려서 죽더라도 나랏님에 對(대)해 無能(무능)한 君王(군왕)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奸臣(간신)으로 몰려 죽으면서라도, 忠臣(충신)의 節介(절개)로 불쌍한 마음을 품고 눈물을 흘리면서 君王(군왕)의 萬壽無疆(만수무강)을 비는 사람이 진짜 忠臣(충신)입니다. 絶對服從(절대복종)입니다. 絶對服從(절대복종)으로 成功(성공)을 가져올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참사랑의 길밖에 없습니다.
(164-48, 1987.5.3) p.1204
先生(선생)님은 只今(지금)까지「아, 너희들, 先生(선생)님의 말을 絶對服從(절대복종)하라」 그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歷史的(역사적)인 路程(노정)을 順應(순응)해 나가야 됩니다.
歷史的(역사적)인 路程(노정)이 뭐냐 하면 하나님을 爲(위)한 攝理的(섭리적)인 歷史路程(역사노정)입니다.
只今(지금)까지 여러분들에게 復歸攝理路程(복귀섭리노정)을 가르쳐준 것은 그런 意味(의미)에서입니다. 統一敎會(통일교회) 文先生(문선생)을 爲(위)해 가르쳐 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先生(선생)님도 가는 겁니다. 人類(인류)의 目的(목적)을 해가는 것입니다. 그 目的(목적)을 한 點(점)으로 結末(결말) 못 지었기 때문에 이것을 결말지어 주자는 것이 오늘날 이 時代(시대) 統一敎會(통일교회)가 主張(주장)하는 統一原理(통일원리)요, 統一思想(통일사상)이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71-66, 1974.4.28) p.1204
第9卷(제구권)祝福家庭(축복가정)
第1章(제일장)
참父母(부모)와 祝福(축복)
1)祝福(축복)의 意義(의의)와 價値(가치)
①祝福(축복)이란 무엇인가
㉮祝福(축복)의 意義(의의)
祝福(축복)은 참父母(부모)와 참子女(자녀)가 相逢(상봉)하여 創造目的(창조목적)을 이루는 것을 意味(의미)합니다.
(19-73, 1967.12.27) p.1209
하나님은 二性性相(이성성상)으로 계십니다. 이것을 플러스로 分立(분립)시킨 것이 男子(남자)인 아담이요, 마이너스로 分立(분립)시킨 것이 女子(여자)인 해와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해와를 다시 合(합)한 模樣(모양)과 같은 것이 子女(자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中心(중심)삼고 一代(일대), 二代(이대), 三代(삼대)가 形成(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三代中(삼대중)에서 問題(문제)가 벌어진 것이 몇 대냐 하면, 二代(이대)인 아담과 해와의 代(대)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中心(중심)삼고 하나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萬若(만약)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中心(중심)삼고 하나되었더라면, 하나님이 臨(임)하실 수 있는 因緣(인연)이 決定(결정)됨으로 말미암아 子女(자녀)에게도 하나님과 關係(관계) 맺을 수 있는 사랑의 基準(기준)이 連結(연결)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祝福(축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32-239, 1970.7.19) p.1209
統一敎會(통일교회)에서 行(행)하는 祝福結婚式(축복결혼식)은 單純(단순)히 男女(남녀)가 만나서 한 家庭(가정)을 이루는 婚禮式(혼례식)이 아닙니다. 只今(지금)까지의 結婚式(결혼식)은 自己(자기)를 中心(중심)한 것이었지만, 우리의 結婚式(결혼식)은 하나님께 기쁨을 되돌릴 만한 內容(내용)을 가지고 歷史(역사)를 蕩減(탕감)하는 貴(귀)한 條件(조건)으로, 聖(성)스럽고 盛大(성대)하게 擧行(거행)합니다. 우리들의 結婚式(결혼식)이란, 아담과 해와의 墮落(타락)으로 비롯된 하나님의 한(恨)을 解怨(해원)해 드리고, 예수님께서 이루지 못한 新郞新婦(신랑신부)의 基準(기준)을 通過(통과)하는 것임을 原理(원리)는 分明(분명)하게 說明(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世界-37) p.1209
祝福(축복)이라는 말은 統一敎會(통일교회)로부터 始作(시작)된 것이 아니라, 創世(창세)로부터 墮落(타락)한 以後(이후)인 只今(지금)까지 歷史過程(역사과정)을 通(통)하여 하나님의 내심 가운데 하나의 素願(소원)으로서 하나님이 언제나 이것을 追求(추구)하고 바라고 나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素願(소원)의 한날을 찾기 爲(위)해서 하나님이 只今(지금)까지 受難(수난)의 길을 걸어오셨지만, 아직까지 이 날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이 한날을 찾는다면, 이 날은 歷史的(역사적)인 解怨成事(해원성사)를 할 수 있는 날이요, 하나님의 歷史的(역사적)인 素願(소원)을 成就(성취)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이 祝福(축복)의 자리가 이만큼 엄청나다는 事實(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0-164, 1970.3.22) p.1210
人間(인간) 祖上(조상)인 아담과 해와가 墮落(타락)한 그날부터 人間(인간)은 하나님께서 祝福(축복)해주시는 한 날을 苦待(고대)하여 왔습니다.
(19-23, 1965.1.31) p.1210
祝福(축복)의 자리는 過去(과거)로부터 只今(지금)까지 엮어 온 歷史過程(역사과정)에서의 모든 슬픔을 淸算(청산)지을 수 있는 자리요, 只今(지금)까지 成就(성취)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素願(소원)이 새로이 出發(출발)을 할 수 있는 자리요, 새로운 人間(인간)의 未來(미래)가 出發(출발)하는 契機(계기)로 삼을 수 있는 한 起點(기점)입니다.
(30-166, 1987.6.5) p.1210
지금 時代(시대)는 蘇生(소생), 長成(장성)의 段階(단계)를 넘어 完成段階(완성단계)로 나아가는 時代(시대)인 것입니다. 縱(종)으로 된 歷史가 橫(횡)으로 넘어가야 하는 時代(시대)인 것입니다. 卽(즉) 6千年(육천년)의 歷史(역사)를 全部(전부) 한꺼번에 넘어가는 時代(시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의 侵犯圈內(침범권내)를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祝福(축복)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只今(지금)까지의 歷史的(역사적)인 사탄圈(권)을 完全(완전)히 넘어서게 하는 關門(관문)인 것입니다.
(18-209, 1967.6.8) p.1210
祝福(축복)은 참父母(부모)의 因緣(인연)을 繼承(계승)받는 것입니다. 이 날을 爲(위)해 先生(선생)님은 精誠(정성)들이며 鬪爭(투쟁)을 해왔습니다. 그러므로 참父母(부모)가 사탄世界(세계)와 싸우던 그 看板(간판)을 걸고 祝福(축복)하는 것입니다.
(19-23, 1967.11.14) p.1210
先生(선생)님이 生涯(생애)에서 가장 貴(귀)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무엇이었느냐? 祝福(축복)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도 人類歷史以來(인류역사이래) 最高(최고)의 膳物(선물)은 祝福(축복)입니다.
(23-317, 1969.6.8) p.1210
오늘날 여러분은 아직까지 참父母(부모)와 完全(완전)한 因緣(인연)을 맺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因緣(인연)을 맺어 주기 爲(위)해 해주는 것이 統一敎會(통일교회)의 祝福(축복)입니다.
(23-333, 1969.6.15) p.1210
祝福(축복) 받은 사람은 靈界(영계)에 가서도 先生(선생)님이 永遠(영원)히 責任(책임)을 집니다. 先生(선생)님이 主管(주관)하고 指導(지도)합니다. 祝福(축복)이란 이와같이 先生(선생)님과 永遠(영원)한 因緣(인연)을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世界-538) p.1210
祝福(축복)을 해준다는 것은 하늘의 全權(전권)을 옮겨 준다는 것을 意味(의미)합니다.
(17-328, 1967.4.16) p.1210
祝福(축복)은 天國門(천국문)을 여는 것이며, 天國(천국)은 子女(자녀)를 갖추어 가지고 家庭(가정)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12-266, 1963.5.25) p.1210
祝福(축복)이란 永遠(영원)의 寶物(보물)입니다. 子孫(자손) 萬代(만대)를 只今(지금)부터 出發(출발)한다는 하나의 契約(계약)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더럽힐 때에는 一族(일족)이 關係(관계)됩니다. 예수님을 十字架(십자가)에 매달게 되어 한 國家(국가)가 聯關(연관)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一族(일족)이 連結(연결)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世界-550) p.1210
祝福(축복)은 歷史(역사)가 追求(추구)해 온 萬民解放(만민해방)의 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世界-32) p.1210
祝福(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事實(사실)입니다. 祝福(축복)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代身(대신)하여 「내가 定(정)하면 天宙(천주)도 定(정)한다」는 마음으로 主人(주인)으로서 行使(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條件(조건)이 具備(구비)되어야 하늘이 우리를 中心(중심)삼고 生活理念(생활이념)을 세우실 수 있는 것입니다.
(13-14, 1963.10.1) p.1211
하나님의 祝福(축복)은 絶對的(절대적)으로 公的(공적)인 것입니다. 그 祝福(축복)은 어느 個人(개인)만을 爲(위)한 것이 아니요, 또한 어느 家庭(가정)만을, 어느 國家(국가)만을, 어느 世界(세계)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祝福(축복)은 宇宙全體(우주전체)를 爲(위)한 것입니다.
(15-67, 1965.2.13) p.1211
祝福(축복)이란 말은 뭐냐하면 福(복)을 비는 겁니다. 빌 祝字(축자)입니다. 福(복)을 비는데 무슨 福(복)이 第一(제일) 貴(귀)한 것이냐? 사랑의 福(복)이 第一(제일) 貴(귀)한 것입니다. 統一敎會(통일교회)는 그런 意味(의미)에서 祝福(축복)이란 말을 쓰는 것입니다. 第一(제일) 貴(귀)한 것이, 宇宙(우주)의 公約(공약)을 代表(대표)한 第一(제일) 核心的(핵심적)인 이러한 起源(기원)이 男子(남자) 女子(여자)가 結合(결합)하는 데서부터 始作(시작)됨으로 말미암아 그 祝福(축복)이 第一(제일) 偉大(위대)하다는 것입니다. 그 偉大(위대)한 것이 福(복)을 비는 데에 있어서 最高(최고)의 福(복)이기 때문에 統一敎會(통일교회)는 結婚式(결혼식)을 祝福(축복)이라고 합니다.
처음 온 사람들은 이런 걸 알아야 됩니다. 統一敎會(통일교회)에서 祝福(축복) 받았다 하게 된다면 오늘날 世上(세상)에서 말하는 복 받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立會下(입회하)에 참父母(부모)를 通(통)해 가지고 結婚式(결혼식)을 해 받았다 하는 말입니다.
(83-226, 1976.2.8) p.1211
只今(지금) 저 英國(영국) 宮中(궁중)에 있는 5百18(오백십팔)캐럿 짜리 다이아몬드가 옛날 아프리카에서는 돌멩이 取扱(취급)을 받았습니다. 다이아몬드가 世界(세계)에서 가장 貴(귀)한 寶石(보석)이 될 줄 누가 알았나 말이에요? 반짝반짝하는 걸보고, 가라스(ガラス)덩이인 줄 알았다는 겁니다. 琉璃(유리)
딱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다가 이 貴(귀)한 祝福(축복)을 받기는 받았는데, 이게 바로 다이아몬드인데도 不拘(불구)하고 가라스라고 全部(전부) 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다가 모두들 先生(선생)님한테 말을 들은 後(후)에야 「아!貴(귀)하구나!」한다는 것입니다.
(83-240, 1976.2.8) p.1211
祝福(축복) 가운데 第一重要(제일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돈이 아닙니다. 名譽(명예)도 아닙니다. 무슨 權力(권력)도 아닙니다. 아들딸이 잘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祝福(축복) 가운데 第一(제일) 좋은 福(복)이 무엇이라구요? 아들딸이 하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끔 태어나는 겁니다. 그건 잘 태어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그 아들이 나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면 惠澤(혜택)받게 됩니다. 그렇잖아요? 산골짜기의 저쪽에서 이렇게 내려온 電線(전선)줄 같은 것, 이 送電線(송전선) 같은 것을 보게 되면 늘어져 있지만, 여기에서 꽉 잡아당기면 팽팽해진다 이겁니다. 마찬가지로 子息(자식)이 하늘의 사랑을 많이 받게 되면, 내가 저만큼 떨어졌더라도 쑥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惠澤(혜택)받는다는 것입니다.
(78-42, 1975.5.1) p.1211
祝福(축복)의 자리에 參席(참석)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냥 하나의 男性(남성), 혹은 하나의 女性(여성)이란 立場(입장)에서 參席(참석)을 하면 안 됩니다. 그 자리는 只今(지금)까지 6千年(육천년) 동안 왔다 갔던 많은 男性(남성), 或(혹)은 많은 女性(여성)들을 代表(대표)한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여러분이 招請(초청) 받았다는 認識(인식)을 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事實(사실)을 內情的(내정적)인 心情(심정)으로 體恤(체휼)해야 됩니다. (30-169, 1970.3.22) p.1212
祝福(축복)이 이루어지는 只今(지금)의 때는 어떤 때이겠습니까? 只今(지금)은 하나님의 素願(소원)이 이루어지는 最高(최고)의 때요, 6千年間(육천년간) 受苦(수고)해 온 하나님의 恨(한)이 그치는 때요, 이 땅에 오시어 受苦(수고)하셨던 하나님의 아들, 卽(즉) 예수님의 素願(소원)이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뿐만 아니라 人間(인간)이 創世以後(창세이후) 처음으로 사랑이 始作(시작)되는 때요, 萬物(만물)의 歡喜(환희)와 尊貴(존귀)와 榮光(영광)을 받을 수 있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날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罪惡(죄악)이 다 사라지고 光明(광명)의 太陽(태양)이 솟아오른 明朗(명랑)한 天地(천지)를 맞이하는 날, 모든 自然(자연)이 和同(화동)하고 모든 萬象(만상)이 춤을 추고 和暢(화창)한 아침, 勝利(승리)의 아침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和暢(화창)하다:맑고 따뜻하다
(19-106, 1967.12.31) p.1212
先生(선생)님은 지금 現實(현실)이 이렇지만 後日(후일) 先生(선생)님이 祝福(축복)한 者(자) 中(중)에서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 世界的(세계적)인 人間財(인간재)로 남아 榮光(영광)을 받을 것을 素望(소망)으로 삼고 삽니다.
(21-79) p.1212
㉯ 祝福(축복)의 價値(가치)